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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草霧 2013. 4. 20. 00:11

 

 

 
 
 
 
 
 
 
 
 
불교
 
한민족의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쳐온 호국 종교

   

 

불교의 도입과 의의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1600 여년 전이다.그 장구한 역사속에서 불교는 한민족의 문화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현재까지 그 문화의 유산을 남겨오고 있다. 불교가 전래된 국가중에서 한민족의 정신과 가장 잘 융화되고 있는 불교유적지를 찾는 것은 또 다른 우리문화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불교는 삼국 시대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고구려가 소수림왕 2년(372)에 받아들이고, 백제가 침류왕 즉위년(384)에, 신라가 법흥왕 14년(527)에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삼국에 불교가 처음 도입된 것은 훨씬 이전으로, 고구려는 372 이전, 백제는 384년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불교의 도입 시기에 비해 공인이 늦어진 것은 토착 종교와의 갈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토착 종교는 자연주의적 신(神)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지배 세력층의 선민(先民)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 주었으며,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왕과 최고 귀족들은 같은 천강지응족으로 대등한 입장인 셈이다.

 
그런데 왕권이 강화됨으로써 왕은 다른 귀족들을 초월하는 절대 권위를 확립하고자 고등 종교인 불교를 도입해 왕즉불(王卽佛), 왕이 곧 부처라는 정치 이념을 내세웠다. 결국 왕과 귀족들의 정치적, 종교적 입장이 대립함으로써 불교 공인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국왕 주도로 불교가 공인된 이후 왕의 권위는 급상승했으며, 신라는 토착 종교로 신성시하던 신성 구역에 절을 짓거나 불상을 조성하는 등 불교가 토착 종교를 빠르게 대체해갔다.

 
이후 불교는 국왕의 정치 이념에만 머무르지 않고 귀족 불교로, 서민들의 신앙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하여 불교는 교학(敎學)과 신앙이라는 종교 본래의 정신을 발휘하여, 신정(神政)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고대 사상의 틀을 깨뜨리고 중세 사상을 마련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고려 시대로 들어오면 정치 이념이었던 유교와 함께 불교는 가장 강력한 통치 이념이었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는 불교가 권문세족과 결탁해 세속화됨으로써 타락하였으며, 고려 왕조 몰락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당시 사찰은 막대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고리대업과 상업에도 손을 대어 부패가 심했다. 이로 인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초기에는 강력한 배불 숭유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불교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나 문정왕후 시기에 몇 차례 부흥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등 국난이 있었을 때 불교는 호국 종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불교의 사상과 이념
원효대사 | 대각국사 의천 | 보조국사 지눌

일심과 화쟁

삼국시대에 불교가 도입되어 국왕의 주도로 공인된 이후, 불교는 점차 귀족 불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를 서민들의 종교로까지 확대시킨 것은 원효로, 불교 대중화를 일으키게 된다. 원효가 내세운 사상은 일심 사상(一心思想)으로서, 모든 인간은 일심, 곧 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이었다. 또한 마음먹기에 따라 예토(穢土), 즉 속세도 정토가 될 수 있으며, 예토와 정토는 본래 본래 한 마음이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성불이나 극락왕생을 바라는 서민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다.
화쟁사상은 통불교라는 한국 고유의 사상으로, 종파를 초월하여 불교를 통합해야 한다는 요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후 고려의 승려 의천의 천태종에서도 명맥이 이어졌다.

화엄종

 

원효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 의상은 화엄 사상을 내세워 화엄종을 개창하였다. 이는 하나 속에 우주 만물을 아우르려는 사상으로, 전제 정치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천태종

문별 귀족 사회가 무르익던 11세기 전후 보수적이고 귀족적이고 귀족적인 법상종이 화엄종과 더불어 발달하면서 선종이 위축되었다. 이 때 당에 유학하던 의천이 돌아와 교종 불교의 사상을 융합하고자 했으며, 원효의 화쟁 사상을 바탕으로 불교 사상을 통합하려 했다. 그리하여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강조하는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제창하였다.

선종

 

선종은 삼국 통일 전후에 전래되었으나, 교종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다 신라 말기에 교종의 전통과 권위에 대항하면서 크게 유행하였다. 교종은 부처의 교설 및 그것을 문자로 나타낸 경전을 바탕으로 우선시하며, 화엄종과 의천의 천태종을 가리킨다. 선종은 이에 비해 스스로 사색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개인적인 정신 세계를 찾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선종은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려는 호족의 취향에 어울렸으며, 새로운 시대의 정시전 기반이 되었다. 이후 선종은 호족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각 지방에 본거지를 두고 여러 종파를 이루었는데, 그 중 유력한 것이 9산이었다. 선종은 중국 당에 유학중이된 학자들의 반신라적 움직임과, 호족들과 결부되어 고려 왕조 개창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조계종

무신 정변 이후, 불교계에서는 선종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최씨 정권이 왕실과 문신 귀족의 비호 아래 성장해온 교종 대신 선종을 지원하면서, 선종은 발전의 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 지눌은 불교계를 정화하려는 신앙 결사 운동을 일으키면서, 조계종을 개창하였다. 또한 조계종을 중심으로 선종과 교종의 통합 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눌은 참선과 지혜를 아울러 닦자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내세웠으며,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수행방법으로 제시해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꾀했다.

 

 

조계사

조계사

조계사는 서울시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총본산이다. 조계사는 1895년 창건된 절로서 일제강점기에는 태고사로 불리다 1954년 불교정화 이후 조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봉선사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봉선사는 정희왕후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 6.25전쟁 때 사찰 건물이 모두 소실된 이후 다시 세워졌다. 이 절은 보물 제 397호인 대종과 그 밖에 괘불, 하마비 등이 있다. 춘원 이광수가 머물렀던 절로 알려져 있다.
탐방하기지역보지-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 부평리 255
월정사

월정사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동쪽 계곡의 울창한 수림 속에 자리잡고 있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 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자리잡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오대산국립공원내)
신흥사

신흥사

신흥사는 1947년 대웅전을 시작으로 여러 건물들을 차례로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 명부전, 영산전, 보제루 등을 비롯하여 3개의 문(門)과 여러 부속 암자가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문화재자료 제7호 강원)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170 설악산
용주사

용주사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절로 병자호란 때 소실 후 폐사되었다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켰다. 국보 제120호인 범종이 있으며, 사찰 내에 효행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188
법주사

법주사

법주사는 진흥왕 14년(543)에 의신대산에 의해 창건된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대사찰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가 인조2년(1624)에 중칭되었다. 미륵신앙의 대표 사찰로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수덕사

수덕사

수덕사는 백제 불교의 맥을 잇고 있는 사찰로서 첫번째로 꼽힌다. 수덕사의 창건은 6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수덕사에는 고려시대 건물인 대웅전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과 문화재가 남아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
마곡사

마곡사

마곡사는 643년 지장스님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840년 보조 체징 스님이 창건했다고도 전한다. 창건 이후에는 847년 사굴 산문의 개창자인 범일국사, 고려의 도선, 보조 국사 지눌, 조선시대 각순 스님 등에 의해 중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금산사

금산사

백제시대에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고 있는 김제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의 중칭불사 일후 1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법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후백제 견훤의 유배지로도 알려진 사찰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496호)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번지
선운사

선운사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전라북도내 조계종의 2대 본사이다. 선운사에 보존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 당시 한때는 89암자에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고 한다.
탐방하기지역보기-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번지
백양사

백양사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안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632년)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좌우에 맑고 찬 계곡물이 흘러내려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탐방하기지역보기-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
대흥사

대흥사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을 조직해 전쟁에 참가하여 국난 극복에 기여한 서산 대사의 정산을 계승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일제 때는 대흥사라 고쳐 불리다가 1993년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08호)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관음사

관음사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을 조직해 전쟁에 참가하여 국난 극복에 기여한 서산 대사의 정산을 계승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일제 때는 대흥사라 고쳐 불리다가 1993년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탐방하기지역보기-(문화재자료 제24호 전남)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송광사

송광사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우리 나라 3보 사찰중 승보 사찰이다.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알수 없으나 '송광사 사적비'와 '보조국사비명'에 의하면 신라 말 혜린 선사가 길상사란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06호)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
선암사

선암사

선암사는 해발 884m인 조계산 장군봉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라는 이름은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선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절의 하나로 보물7점 외에도 지방 문화재 12점이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07호)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산 802
화엄사

화엄사

화엄사을 선양하던 작은 가람이었으나, 의상 대사가 주석한 후로 화엄의 대도량으로 성장하였다. 화엄사에는 여러 불전과 요사들이 지형과 조화를 이룬다.
탐방하기지역보기-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번지
쌍계사

쌍계사

신라 성덕왕21년(722)에 지어진 쌍계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와 삼법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도를 닦은 곳이다. 지리산 쌍계사는 서부 경남일원의 사찰을 총림하는 조계종 25개 본사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그 가치가 크다.
탐방하기지역보기-(시도기념물 제21호 경남)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범어사

범어사

범어사는 「삼국유사」와 1700년에 동계가 편찬한 「범어사 창건 사적」에 의하면 신라 678년인 문무왕 18년에 의상대사가 화엄 10찰 가운데 하나로 창건했다고 한다.
탐방하기지역보기-부산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
통도사

통도사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국내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인 통도사는 불법을 통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 서 지어진 이름이다. 해발 1,050m의 영취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74
불국사

불국사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이후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02호) 경북 경주시 진형동 15번지
은해사

은해사

은해사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는 고찰로 동화사와 쌍벽을 이룬다. 은해사는 현재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은해사 주변은 팔공산 동쪽산 기슭의 울창한 수림과 계곡이 어우러지며 절경을 이루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경북 영천시 청동면 치일1리 479
고운사

고운사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로 창건 당시는 고운사라 하였으나 200여년 뒤,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후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라 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경북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116
동화사

동화사

동화사는 동화사사적비에 의하면 493년 신라 소지왕 15년 극달 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하며「삼국유사」에 의하면 영신대사가 창건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현재 동화사에는 6개 산내 암자가 자리 잡고 있으며, 4구역의 중심 가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대구 동구 도학동 5번지
해인사

해인사

해인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뛰어난 가야산의 자연경관의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 있는 해인사는 자연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잇는 곳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04호)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직지사

직지사

직지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8교구의 본사로, 418년 아도 화상에 의해 창건하여 진종사라 하였다고 한다. 병인, 신미양요를 치른 뒤 강화도의 방비를 충실히 하기 위해 무기 보관소인 포량고를 두었으며, 왕실에 진상하는 약초를 보관하기 위해 진상약애고와 산성 별장소를 설치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전등사

전등사

전등사는 일찍이 381년에 아도 화상이 창건하여 진종사라 하였다고 한다. 병인, 신미양요를 치른 뒤 강화도의 방비를 충실히 하기 위해 무기 보관소인 포량고를 두었으며, 왕실에 진상하는 약초를 보관하기 위해 진상약애고와 산성 별장소를 설치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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