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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의 자취가 있는 탐방지

草霧 2013. 4. 21. 11:47

 

 

 
삼국통일의 자취
 

 

 

 

신라,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이룩하다
 
668년 신라는 고구려를 백제에 이어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였다.이전까지 삼국은 주도권 쟁탈전을 벌였다. 때로는 치열한 전쟁의 모습을, 때로는 화목한 형제처럼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강 유역을 비롯한 중부 지방 일대에는 아직까지도 당시의 그러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중원 고구려비 | 삼년산성(보은) | 단양 신라적성비7세기에,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돌궐-고구려-백제-왜로 이어지는 남북세력과 수(당)-신라의 동서세력이 충돌하는 형세를 이루게 된다. 7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삼국 간의 전쟁은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백제는 성왕때의 원한을 갚고자 끊임없이 신라와 전쟁을 벌였으며 의자왕 시기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였다.

 

642년 신라의 요충지였던 대야성과 서부지역 40여성이 함락되면서 신라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았다. 이에 김춘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담판을 지어 화친을 도모하려 했으나 오히려 인질로 사로잡혔다 간신히 탈출하였다. 이후 신라는 수나라에 이어 들어선 당과 제휴하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하여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해 함락하였으며, 뒤이어 의자왕이 피신한 웅진성까지 함락해 항복을 받아냈다.

 
다음해 661년 당나라군은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구려의 거센 저항에 7개월만에 후퇴하였다. 그러나 665년 연개소문이 사망한 뒤 지배 계층에서 분열이 일어나 결국 668년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백제, 고구려 유민들은 망국을 부흥시키려는 운동을 일으켰다. 복신, 도치, 흑치상치는 백제 왕족 부여풍을 옹립하고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으며, 고구려는 검모잠, 안승, 고연무 등이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부흥 운동 역시 나당연합군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 고구려 부흥 운동은 요동지방에서도 끊임없이 시도되어 발해 건국과도 연결되게 된다.

 
당은 백제에 웅진도독부를, 고구려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신라를 계림도독부로 지정해 한반도를 장악하려 했다. 이에 신라가 항쟁하여 당의 침입을 물리치면서 비로소 삼국통일을 완성하게 되었다. 나당간의 전쟁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 고구려, 백제 유민들도 참여하여 동족간의 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의의가 있다.

 
신라에 의해 이룩된 삼국통일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고 삼국이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외세를 끌어들인 점이나 고구려의 영토를 상실한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탐방

 

호로고루(연천)

호로고루(연천)

임진강 북안의 넓은 벌판에 자리잡고 있는 성이다.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하여 쌓은 이 성에는 고구려의 축성기술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보축성벽의 기원을 고구려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적 제467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467호) 경기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1257-1
 

당성(화성)

당성(화성)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황성이라 하고,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활을 하던 곳이다. 사적 제217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17호) 경기 화성시 서산면 성안리	산 32
 
 

 
파사성(여주)

파사성(여주)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둘레가 약 1800m이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이 성은 성의 일부가 한강변에 나와있어 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 매우 좋은 요새이다. 사적 제251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51호) 경기 여주군 대산면 천서리 산8-10
 

중원 고구려비

중원 고구려비

중원고구려비는 오랜 세월의 풍화로 비문이 심하게 마멸되어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으나 장수왕 때에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고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서 5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제205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205호) 충북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280-11
 

단양 신라적성비

단양 신라적성비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렴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비의 건립은 진흥왕6~11년(545~550) 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국보 제198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198호)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단양 온달산성

단양 온달산성

남한강이 보이는 성산의 정상부근을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적 제264호 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 264호)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 67
 

삼년산성(보은)

삼년산성(보은)

5세기 후반 신라의 성 쌓는 기술을 대표하는 산성으로 주변에는 수 천기의 무덤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돌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사적 제235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35호)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1-1
 

상당산성(청주)

상당산성(청주)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12호)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산28-1
 

대덕 계족산성

대덕 계족산성

대덕계족산성은 계족산 능선을 따라 1,083m의 둘레로 길게 형성 되어있다. 성은 수도 방어를 위해 백제가 쌓았다고 보는 견해와 성의 축조방식을 볼 때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지금은 인근 주민들이 등산로로 이용하는 등 사람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사적 제355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355호) 대전 대덕구 장동 산85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

빛벌가야(지금의 창녕)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수(두루 돌아다니며 순사함)하며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33호)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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