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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극복의 현장 관련 탐방

草霧 2013. 4. 22. 11:00

 

 

 
국난극복의 현장
 
반만년의 역경을 이겨낸 한민족의 역사 현장

소개

 

유구한 역사를 가졌지만 많은 외침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민족. 그러나 그러한 외침에 언제나 당당히 맞섰던 선조의 의지는 아직도 살아있다.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선조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유적지를 찾아 역사의 현장으로 인식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문경관문 |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 효창공원한반도는 지리의 특성상 대륙과 해상 침입을 받을 수 있는 요건에 처해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북방의 중국 세력에 맞서는 수문장 역할을 해왔으며 삼국통일 후 신라 역시 당의 외침을 물리쳐 자주권을 지키게 된다.

 
고려는 중국 요의 침입을 2번에 걸쳐 모두 물리쳤는데 서희와 강감찬이 유명한 주역이다. 이후 고려는 세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 전쟁을 벌인 몽고의 침입에 맞서게 된다.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항쟁했으나,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삼별초가 이에 반대하여 끝까지 결사 항전을 하는데 이것이 삼별초의 난이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조선의 역사를 전기와 후기로 구분짓는 한 축이 될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때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항쟁하였다. 사명대사, 곽재우, 이순신 등이 유명한 인물들이며, 홍주의사총, 칠백의총, 만인의총 등은 끝까지 항전하다 순국한 의병들의 의기를 보여주는 유적지라 하겠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은 세계 전쟁사에 손꼽히는 해전이기도 하다.

 
이후 조선은 산업혁명을 한 서구 열강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이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조선 병사들의 항전으로 서구 열강의 침입을 막아냈으나, 결국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하게 된다.


이후 조선은 일본에 국권을 침탈당하고 이에 분개한 의병들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일체강점기 시기에는 많은 의병들과 열사들이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이러한 노력은 광복때까지 지속하게 된다.

 

탐방

 

 

문무대왕릉

문무대왕릉

신라 30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이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무왕은 아바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58호)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26
 

용장산성

용장산성

배중손이 이끌던 삼초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였던 곳이다. 용장산 기슭에 약간의 성멱이 부분적으로 남아있으며, 성안에는 용장사가 있는 절터와 궁궐 터가 남아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26호)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06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고려 원종 14년(1273) 김동정 장군과 삼별초 대원들이 여몽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운 곳이다. 오늘날에는 유적 정화사업을 벌여 순의비, 순의문 항몽유적기록화 7폭, 관리사무소를 두고 역사교육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396호)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1126-1
 

 
행주산성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임진왜란(1592)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흙을 이용하여 쌓은 토축산성이다. 1970년 대대적인 정화공사를 하면서 권율장군의 사당인 충장사를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워 경역을 규모있게 조성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6호)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 12
 

 
아산 이충무공 유허

아산 이충무공 유허

충무공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곳으로, 지금의 현충사터이다. 주요시설로 이순신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보전을 비롯하여 이순이 자란 옛 집, 활을 쏘며 무예를 연습하던 활터, 정문인 홍살문, 셋째 아들 이면의 무덤이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55호)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양리 산57
 

 
홍주의사총

홍주의사총

홍주의사총은 조선시대 말기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목숨을 바친 의병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사당인 창의사에 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 구백의총이라 했던 것을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431호) 충남 홍성ㆍ읍 대교리 124-2 외
 

 
칠백의총

칠백의총

칠백의총은 임진왜란(1592) 때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700명의 병사들을 위한 무덤과 사당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의총을 허물고 순의비를 폭파했으나, 금산군 사람들이 비석 조각을 감추어 보존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05호)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52-1
 

 
만인의총

만인의총

조선 선조30년(1597)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임진왜란 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하였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72호) 전북 남원시 향교동 628
 

 
김덕령장군 유품(충장사)

김덕령장군 유품(충장사)

충장사는 1975년 2월 조성되었으며, 경내에는 김덕령장군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세워져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1023
 

 
포충사

포충사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고경명(1533~1592)과 그의 장남 고종후(1554~1593)ㆍ둘째 고인후(1561~1592)등 3부자와 유팽로(1554~1592)ㆍ안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시도기념물 제7호(광주광역시))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775
 

 
해남 표충사

해남 표충사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1520~1604)를 모시는 사당이다. 현재 그의 제자인 유정과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다. 서산대사가 썼던 발우, 가사 등의 유품이 표충사에 보존해 오다가 1996년 건립된 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시도기념물 제19호(전남))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16
 

 
여수 진남관

여수 진남관

여수 전남관은 1598년(선조31)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 건물규모가 정면 15칸, 측면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 최대 규모이다. 국보 제304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304호) 전남 여수시 군자동 471
 

 
충렬사

충렬사

임진왜란(1592) 때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부산 지방의 선열을 모신 곳이다. 현재 부산 지방에서 순절한 모든 분들의 위해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5월 25일에는 온 시민이 정성드려 제향을 올린다.
탐방하기지역보기-(시도유형문화재 제7호(부산)) 부산 동래구 안락동 838
 

 
세병관

세병관

세병관은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한다. 국보 제305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국보 제305호)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
 

 
통영 충렬사

통영 충렬사

선조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영 통제사가 창건 하였으며, 현종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다. 경내에는 본전, 정문, 중문, 외삼문,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강한루, 유물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36호) 경남 통영시 명정동 213번지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신정', '수루' 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13호)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875
 

 
진주성

진주성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이다. 성내에는 촉석루ㆍ창열사ㆍ의기사ㆍ북장대ㆍ서장대ㆍ영남포정사ㆍ국립진주박물관ㆍ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ㆍ촉석문ㆍ공북문ㆍ호국사 등이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118호) 경남 진주시 남성동
 

 
곽재우장군 유적(충익사)

곽재우장군 유적(충익사)

임진왜란(1592)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그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장군의 추모 행사는 1972년 이래로 매년 거행되고 있다. 1978년 경남 의령군에 사당을 마련하였다.
탐방하기지역보기-경남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467-2
 

 
밀양 표충사

밀양 표충사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654) 원효대사가 창건한 죽림사 터에 세워진 사당이다. 주위의 뛰어난 경관뿐 아니라 불교와 유교가 통합되어 있는 한국사찰의 유연성을 보여 주는 곳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시도기념물 제17호(경남))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23
 

 
정기룡 장군 유적

정기룡 장군 유적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곤양 정씨의 시조인 정기룡(1562~1622) 장군의 무덤가 있는 유적이다. 이 유적은 1977년 정부의 호국선현유적정화사업계획에 따라 무덤과 그 주변을 깨끗이 하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와 유물관을 지은 것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시도기념물 제13호(경북)) 경북 상주시 사벌면 금혼리 324-1외 52필
 

 
문경관문

문경관문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에 있는 문경은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으로서, 고려 말까지 이용되었다. 현재 문경 새재 도립 공원 안에는 조령산의 오르막길을 따라 주흘, 조곡, 조령의 세 관문이 조영되어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47호)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555
 
 

 
남한산성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57호)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1
 

 
임충민공 충렬사

임충민공 충렬사

충렬사는 조선 인조 때의 명장인 고송 임경업(1594~1646)을 모신 사당이다. 경내에는 사당과 유물 전사관을 비롯하여 어제 달천 충렬사비, 정렬비, 추련검 등이 남아 있다. 사적 제189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189호)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
 

 
제암리 3 · 1운동 순국유적

제암리 3 · 1운동 순국유적

경기도 화성군의 제암리 유적은 독립 운동의 유적지이며 기독교의 성지이다. 3ㆍ1운동때 일제가 독립운동을 잔인한 방법으로 탄압한 학살 현장이다. 사적 제299호 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99호)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제암교회
 

 
유관순 열사 유적

유관순 열사 유적

3ㆍ1운동 때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유적으로, 생가와 매봉교회, 유적비 그리고 봉화를 올렸던 봉화터가 있다. 천안시에서는 유관순의 애국정신을 길이 추모하고 3ㆍ1운동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1972년에  사당을 세우고 열사의 초상을 모셨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30호) 충남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338-1
 

 
매헌 윤봉길 의사 사적지

매헌 윤봉길 의사 사적지

윤봉길 의사 유적은 항일 독립 투쟁에 앞장 섰던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1972년 그의 출생지와 생가, 사당, 기념관 등을 사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사적 제229호이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229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산40-1
 
 

 
효창공원

효창공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시는 곳이다. 원래는 효창원으로, 정조의 큰 아들인 문효세자ㆍ의빈 성씨ㆍ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ㆍ숙의 박씨의 자녀인 영온공주의 무덤이 있었다. 광복 후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무덤을 조성했다.
탐방하기지역보기-(사적 제330호)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청파동2가 및 마포구 신공덕 동ㆍ공덕동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