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서양미술사

로마네스크 양식은 중세의 요세였는가?

草霧 2013. 4. 6. 00:00

 

로마네스크 양식은 중세의 요세였는가?

 

10세기 말에서 12세기(지역에 따라서는 13세기)에 걸쳐 고딕 예술에 앞서 중세 유럽 전역에 발달했던 미술 양식.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19세기에 처음 쓰여진 말로, 로마네스크 건축이 로마 건축에서 파생한 것이라는 뜻에서 프랑스어로 '로망(roman)'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당시의 예술 양식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서로마를 계승한 서유럽의 미술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로마네스크 미술은 형성되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게르만 민족의 향토적 전통 위에 고대 로마 양식을 받아들여 이루어진 미술로 서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미술이다.

 

터운 벽과 아아치형 천장, 작은 창문, 수평적 장중함을 가진 건축 양식이 대표적이며 프레스코 벽화형식의 회화가 그려졌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크기뿐만 아니라, 교회의 구조 자체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물론 로마네스크 양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확고하게 공통적인 양식적 특성들을 갖고 있다.


먼저 초기까지 목조로 덮었던 바실리카 식 설계로 된 네이브의 천장을 석조 궁륭으로 바꾼 점이다. 한편 화재에 강하고 건물 수명도 영구적이며 내부의 웅장함과 탁월한 음향 효과를 얻기위해 돌로 궁륭을 만들었으며 돌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거대한돌벽을 쌓는 한편 측랑위에 계량을 세워 이를 보강했다.

 

하나의 건축양식을 설명하자면 그 양식의 특징 하나하나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특징들만으로는 양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 모두에 작요하는 하나의 중신 개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따라서 초기 로마네스크 특유의 몇몇 모티프들의 연원을 개별적으로는 카톨링 시대 건축에서 찾을 수 있지만, 그들간의 조합은 새로운 것으로 그들이 가진 의미를 확실히 전해 준다.

 

10세기 말의 가장 혁신적인 변화는 평면에서이다. 특히 세가지로서 이들 모두가 공간을 분절하고 면확하게 하려는 새로운 의지의 소산이다. 서구 문명은 이제 막 윤곽이 잡혀가는 중이었으나, 초기 단계에서의 그 건축적 표현이 이미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적 정신에 대비되는 공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예술의 환상적인 공간 유동에 대비되는 공간적 구성.조합.계획 방식이었다.

 

로마네스크 교회의 동쪽 단부의 주된 평면 두가지가 프랑스에서 생겨났다. 방사형 평면과 파상형 평면이 그것으로 방상형 평면의 최초의 예들은 뚜르뉘와 노트르담에 있는데 둘다 11세기의 것이다.

 

그 원형은 뚜르의 셍 마르뗑 교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파상형 평면의 예는 끌뤼니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것들의 기능상의 이유로는 성자들에 대한 예배가 늘어났고 또 모든 성직자들이 일일 미사를 올리는 관례가 늘었기 때문에 더 많은 제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동쪽 부분에 예배실들을 두게 되었다.

 

그 예배실들을 하나의 응집된 통합체로 초리하였는데 앱스 주위에 앰뷸러토리를 두고 방사형 예배실을 덧붙이는 방법을 쓰거나, 트랜셉쓰 너머로 아일을 연장시켜, 주 앱스와 거의 평행한 작은 앱스에서 끝을 맺고 아울로 각 트랜셉트의 벽을 따라서 한 개, 두 개 도는 세 개의 앱스를 두기도 했다.


성 미카엘 성당은 1000년 이후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두 개의 트랜셉트, 두 개의 챈슬, 두 개의 앱스등을 갖고 있는데 초기 기독교식 배열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단순하지 않고 더 흥미로워진 리듬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네이브를 3개의 정방형(정확하지는 않지만 거의 확실시 됨)으로 분할하였고 지주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 즉 정방형들의 모서리를 강조한 피어들과 그 사이에 기중이 들어가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네이브와 트렌셉트 사이의 교차부는 사방에 있는 챈슬 아치로써 명확히 분리되어 있다. 이후의 건물에서는 각 트랜셉트 역시 정방형이었고, 아일은 연속된 정방형들로 구성되었다. 할데스하임의 동쪽의 교차부와 앱스 사이에는 정방형 챈슬이 삽입되었다. 예배실들은 주 앱스들에 평행한 랜셉트에서 떨어져 나왔다.


새 평행면에서 나타났던 기본적 분절과 동일한 경향이 11세기 교회의 입면에서도 나타났다. 힐 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수도원에서는 교대 지주 시스템이 길게 뻗은 벽면을 분활함으로써,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궁극적으로는 독립단위로 만들어 준다. 이 시스템은 중앙 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관례가 된다.


11세기 초 노르망디 지방에서 발생한 새로운 효과적인 방식에 의한 성당의 제작이 영국에서 있었다. 건축에서의 노르망디 양식은 서구의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장 일관성있게 변화시킨 것으로서 11세기의 프랑스에 크게 영향을 끼쳤고 영국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지대하였다.


새 원칙은 바닥에서 천정까지 이르는 커다란 샤프트 들로서 베이와 베이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천장이 모두 평면인 것은 네이브 폭만큼을 볼팅하는 기술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실성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공간 분절이 다시 이루어졌다.


11세기 말경 모든 것이 새로운 분화를 지향하는 쪽으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더 복잡하고, 더 다양하고, 더 생동적인 형태를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아마도 형태에 대해 크게 강요하지 않고 훨씬 개성있는 표현을 허용했을 것이다. 더럼 대성당의 시기부터 초기 로마네스크에서 성기 로마네스크의 시대로 옯겨갔다고 할 수 있는데 1093년 착공하여 동쪽 부분은 1104년에 네이브는 1130년에 완성되었다.

 

네이브는 실재보다 더 높게 느껴지는데, 이는 이 때까지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영국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평천장 대신에 리브볼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더럼 대성당의 성가대석의 볼트들은 아마 유럽 최초의 리브 볼트일 것이다. 더럼 대성당의 볼트에서 주목할 점을 리브가 없는 궁륭볼트에 대응하여 리브 볼트가 고딕 양식의 주제중의 하나로서 맏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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