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서양미술사

고딕 미술

草霧 2013. 4. 5. 12:39

 

 

 

 

 

고딕 미술
 

 

 

노트르담대성당 서쪽 정면, 1163∼1250년, 파리 시테섬
12세기 중엽에 파리를 중심으로 일드프랑스지방에서 일어나, 영국·독일·에스파냐·이탈리아로 급속히 퍼져간 미술. 그에 앞선 로마네스크미술과 나란히 유럽 중세미술을 대표한다.
 
생드니 대수도원장 슈제르가 이 수도원 재건에 즈음하여, 전유럽에서 건축가·조각가·공예가를불러 모아 고딕양식의 종합적 완성을 이루었다(1144년 성당 祭室部 완성). 건축에 중점을 두었으며 로마네스크의 반원아치에 대하여 첨두(尖頭)아치, 복잡한 교차궁륭, 밖에서 건물을 지탱시켜 주는 버팀벽 등을 짜맞추어 벽체를 극도로 줄이고, 가볍게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독특한 성당양식을 완성하였다. 두터운 벽 대신 찬란한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건물을 둘러싸 성당 안을 빛으로 채웠다.
 
처음에는 건축에 종속되어 있던 조각도 차츰 벽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운 3차원의 표현을 하게 되었다. 랭스대성당(1211년 기공)처럼 성 토머스의 신학체계와도 닮은, 정밀하고 광대한 도상학적(圖像學的)·시각적 체계 가운데 새로운 인간주의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건축의 스콜라적 복잡성이 쇠퇴하고 대신에 벽면을 중심으로 한 회화가 1270년 무렵부터 급속히 발전하면서, 14세기 전반에는 플롯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근세미술로의 선구적 비약을 성취하였다. 조토 디 본도네가 그린 스크로배니가(家)의 예배당 벽화(1310년경) 등이 그것이다.

 

15세기에 들어서면 프랑스의 화염(火炎)양식과 영국의 수직양식 등 화려한 장식적 경향이 나타나, 조각·회화에도 말기로 갈수록 섬세한 정서적 요소가 강해졌다.
 
건축
 
시에나대성당, 12세기 무렵
고딕양식이 그 돌파구를 여는 것은 성당건축에서인데, 건축가들에게 최대의 난제가 된 것은 점차로 높이를 더해가는 석조궁륭(볼트)의 가구법(架構法)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상의 안정을 확보하면서 상승성(上昇性)을 유지하는 형태를 나타낸 것은 리브(늑골상아치)궁륭과 첨단(尖端)아치이다. 리브궁륭은 밀라노의 성암브로지오성당과 잉글랜드 북부 다람대성당의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최초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북프랑스로 전해져서 12세기 전반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교차궁륭의 양선(梁線)에 이어서 대각선을 이루는 리브는 궁륭의 중량을 분산시켜 이것을 지주로 유도함으로써, 벽체에 가해지는 횡압(橫壓)을 줄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 리브의 채택으로 건축규모의 확대뿐만 아니라, 궁륭에서의 복잡한 역선(力線)을 명확하게 시각화하며, 합리적인 질서를 갖춘 건축구성을 실현시켜 갔다.
 
첨두아치를 사용한 건축디자인은 이슬람건축에서 그 원류(源流)를 찾을 수 있는데, 이슬람의 영향 아래 조영(造營)된 시칠리아섬과 남이탈리아의 성당건축이 매개가 된 것인지, 혹은 십자군이 가져온 것인지, 그 경로는 명확하지 않다. 리브궁륭이 발전결합된 첨두아치의 주제는 궁륭의 교차부는 물론, 입구·창 기타 모든 아치구조에 적용되었다. 첨두아치의 각도는 역학상의 해결법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이것에 의해서 성당의 구조변경도 자유롭게 되었다.
 
샤르트르 대성당

플라잉 버트레스라고 하는 정교한 버팀 구조가 벽을 밖에서 지탱해 준다.

한편,  벽체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외벽에 이어서 만들어진 버팀벽[控壁]과 버팀도리는 스테인드글라스에 의한 채광면의 확대에 유익한 동시에 고딕건축상 외관구성면의 한 특징이 되었다. 이 여러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채택하여, 12세기 중기에 생드니수도원이 개축되었고 이어서 상스·랑·파리 등에 대규모의 성당이 잇따라 기공되면서 초기 고딕양식이 확립되었다.

 
랭스대성당 내부, 1211∼41년, 프랑스 랭스
이 12세기의 고딕성당에는 아직 로마네스크적 성격이 남아 있었는데, 고딕적 요소를 거의 완전히 구비한 것은 13세기 초기에 착공한 샤르트르·랭스·아미앵의 대성당이다. 프랑스 북부에서 발생한 고딕양식은 인접한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는데, 각 지역에 따라 각각 독자적 양상을 보이면서 발달하였다. 영국에서는 13세기 초기부터 링컨·졸즈베리·요크 등의 대성당이 조영되었는데, 프랑스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명쾌한 비례와 단순한 비례로 얼리 잉글리시(초기 영국식)라는 독자적 양식을 확립하였다.

꼴로뉴, 퀼른 대성당
독일에서는 국경에 접한 프랑스 각지로부터 고딕양식을 받아 들였는데, 특히 퀼른과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 프랑스양식이 두드러진다. 한편, 독일의 건축가들은 프라이부르크와 울름의 대성당에서 나타나듯이, 쌍탑형식을 배제하고 접면 중앙에 1기의 대탑을 두었고 또한 성당 안에 단일공간을 만드는 <할렌키르헤(Hallenkirche)>의 형식을 개발하였다. 이탈리아의 건축가는 프랑스 고딕양식이 달성한 수직성을 강조하는 구조체계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바실리카식에 가까운 양식을 고집하였다.

팔라초 푸블리코(시청사, 1289∼1342년)와 만저탑(1349년), 시에나
13세기 중기 이후 시에나·피렌체·오르비에토 등의 대성당이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리브궁륭은 도립에서는 구조적인 의도보다도 장식적 효과가 중시되었다.
 
밀라노대성당 파사드, 1386년
밀라노대성당에는 알프스를 경계로 한 남북유럽의 양식관(樣式觀)이 절충되었으며, 외관은 강한 인상을 준다.
 
조각
 
내부엔 성서의 내용으로 보이는 부조 작품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샤르트르대성당 정면의 원주인상군(圓柱人像群)은 원기둥 모양의 형태와 의복주름의 장식적인 선각(線刻)에서 로마네스크의 흔적을 남기고 있으나, 얼굴에는 인간적인 감정과 고딕양식의 흐름이 나타난다.
 
샤르트르 대성당: 서쪽 정면에 있는 ‘왕의 문’.
 
샤르트르 대성당: ‘왕의 문’을 장식하고 있는 인물상 원주.
 
샤르트르 대성당 :서쪽 정면에 있는 ‘왕의 문’ 남쪽 입구 위를 장식하고 있는 문설주 조각.
전형적인 고딕조각은 13세기 북프랑스에서 나타나며, 파리·샤르트르(남부정면)·랭스·아미앵 등의 대성당에는 여러 개의 입상,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과 동식물의 표현은 로마네스크의 추상적인 경향에서 벗어나서, 자연주의 내지 인간주의로 진전하였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조각
이 세기에는 또 신학이 융성하여, 성당을 장식하는 조상군(彫像群)은 <돌의 성서>라고 표현되듯이 명확한 종교적 질서에 의하여 통일되었다. 정면의 중앙입구에는 중심기둥을 뒤로 그리스도상을 놓고, 좌우의 벽면에 6명씩의 사도상을 둔 입구 양쪽에는 성모자와 여러 성자가 배치되며, 입구의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띠 모양의 아치에는 천사와 예언자의 상이 늘어서고, 그 주위의 벽면에는 미덕과 악덕을 표시하는 우의상(愚意像)과 <12개월의 행사>에 연유한 인간상이 끼워진다. 신으로부터 일반서민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상이 다양하게 표현되었으며, 중세적 인간주의를 반영하는 새로운 미술영역이 개척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조각에서도 독자적 양상을 보였는데, 선구자는 N. 피사노와 그 아들 지오반니다. 피사노가 1260년에 피사에서 최초로 제작한 설교단의 부조와 그 건축세부에는 남이탈리아에서 체득한 것으로 여겨지는 2양식이 명료하게 식별된다. 지오반니는 건축가로서 시에나대성당의 정면(하부), 기타 설계를 하였으며, 조각으로서는 피스토이아의 성안드레아성당의 설교단이 고딕양식에 정통했음을 보여준다.
 
회화
 
노트르담 대성당 장미의 창
 

 

노트르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대표적인 것으로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들 수 있다. 초기 작품은 생드니대성당의 방사상제실군(放射狀祭室群)의 창문장식인데, 빨강·파랑·주황·녹색을 주조로 하는 그 수법은 파리(현재는 없음)·샤르트르(서쪽 정면)의 대성당에 전해지고, 또 서부 프랑스에서는 앙제·푸아티에의 대성당 등에 우수한 작품이 탄생되었다.
 
13세기가 되자 도상체계(圖像體系)도 풍부해지고 기술상으로도 자색을 주로 하는 배색이 세분화되어, 샤르트르대성당과 같이 넓은 공간이 천상적 분위기로 충만하게 되었다. 순수한 고딕건축의 도입이 적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 대신에 벽화가 발달하였다. 고딕풍의 줄무늬와 색채에 의하여 독자적 화풍을 확립한 시에나출신인 S. 마르티니는 시에나의 화풍과 파리의 고딕회화와의 매개자(媒介者)가 되어 이른바 <국제적 고딕양식>의 형성에 관여하였다.
 
또한 고딕의 전통에서 출발하여 유채화의 연구를 거듭하고 근세회화로의 길을 확립시킨 것은 플랑드르출신의 반 아이크형제이다. 유명한 《헨트제단화》로 대표되는 여러 작품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는 근세회화의 탄생을 뚜렷이 보여주는 동시에 중세적인 상징주의에 대한 집착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