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제4코스, 부암동 생태 문화길 -1

草霧 2013. 1. 9. 12:05

 

600년 옛 도시 종로의 코스를 걷다.

 

종로, 동네 골목길 탐방코스

 

 

문화양념통

4코스, 부암동 생태 문화길

    

 

 광화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종로구 깊숙이 평창동으로 이동하면 세검정이 우리를 맞이한다. 안으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인왕산 기퉁이에 한적한 옛 동네 부암동 나온다. 그곳 주민들은 도롱뇽, 맹꽁이 등 도심 속 생태공원에서 아이들과 생태탐방을 '백사실 계곡'에서 한답니다.

 

 

다시, 길을 재촉하며 내려오다 보면 근대문화의 큰별을 만날 수 있답니다. 현진건, 윤동주, 김환기 등 문학과 호흡을 하다, 조선시대 안평대군, 대원군, 윤웅렬 별장, 석파장 등 일명, '별장'마을이 나옵니다. 골목골목 이쁜 집이 오목조목 있는 집사이로, '찬란한 유산', '커피프린스 1호점' 등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있답니다. 그 중 한집에서 커피한잔, 예술이죠. 다시, 길을 가다보면, 조선의 성곽, 창의문이 나옵니다. 그곳 끝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서울 시내정취와 북악산이 멀리보이는 이곳은 인왕산 신선의 세계입니다

 

 

 

 

    

 역사 체험 코스 4  

 

4코스, 부암동 생태 문화

 

세검정길 이광수 별장 터 홍지문 및 탕춘대성 석파정 별당 석파정

 

안평대군 이용 집터 현진건 집터 반계 윤웅렬 별장 '찬란한 유산' 촬영지

 

윤동주 시인의 언덕 최규식 경무관 동상 창의문 환기미술관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 백사실 계곡 세검정 터 세검정길

 

 

서울 도심서 10`비밀의 정원` 부암동  

 

애칭까지 `비밀의 정원`입니다. 길 하나 꺾어 들어갔을 뿐인데 눈앞엔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깊은 계곡과 좁은 골목길, 다소 거칠게 남아 있는 문화유적지, 매력 만점 서울 성곽길, 이어지는 순례길. 도심 속에서 아이로니컬하게 심산유곡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서울의 시크릿가든 부암동 풍경을 전해드립니다. 부암동은 귀한 도보 여행지다. 그 길을 따라 시대의 비밀이 묻히고 또 쌓인다. 서울 도심에서 10분 거리. 이런 시골 풍경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참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여행지다. 비밀의 정원 그 속 은밀한 공간 몇 곳을 소개한다.

   

 

  

  

 

 

세검정길

 

 

 

상명대

평창동국민대

 

이광수

 

별장 터

 

    

 

 

 

소설가 춘원 이광수(1879-1944)1934년부터 1939년까지 별장을 지어 머물렀던 곳이다. 이광수는 이곳에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불교에 심취하였다. 그는 1937년 독립운동 단체 수양동우회와 관련되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 이곳에서 휴양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일보 부사장이었던 이광수는 세검정 일대의 풍경이 좋은 이곳에 한옥 별장을 지었다. 원래의 가옥은 자 형태의 개량한옥으로 당시 유명했던 건축업자 정세권이 지었다. 지금 남아 있는 한옥은 1970년경 새로 지은 집이다.

 

 

홍지문

 

탕춘대성

 

    

 

 

탕춘대성의 출입문숭례문이나 흥인지문처럼 도성의 중심에 있는 성문과 달리 홍지문은 서울의 북쪽, 지금의 상명대학교 부근에 자리해 있다. 조선 숙종 41년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해 설립한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이다. 홍지문은 한성의 북쪽에 있는 문이란 뜻으로 한북문이라고도 한다. 숙종이 친필로 홍지문이라는 편액을 써 문루에 달면서 공식 명칭이 되었다.

 

1921년 홍수로 인해 붕괴되었던 홍지문을 1977년 도성복원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이때 홍지문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로 새겨졌다. 홍지문은 홍예(무지개) 형태의 육축 위에 정면 3, 측면 2칸의 우진 각지붕을 한 단층 문루가 있다. 문루의 좌우에는 옆문을 만들고 전돌로 담장을 둘렀다.

 

또한 문의 앞뒤에도 홍예 모양의 쇠붙이 장식을 씌운 문을 마련했으며 안쪽으로 성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을 두었다.수도 방위를 위해 설립한 도성 홍지문과 연결된 나지막한 성곽을 시작으로 탕춘대성이 시작된다. 세월은 흘렀지만 산으로 오르는 도성의 모습은 흘러간 시간의 무게를 아스라이 간직하고 있다. 탕춘대성은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수도 방위를 위해 건립했다. 인왕산 정상의 서울 성곽에서 홍지문을 거쳐 북한산 비봉 아래 수리봉까지 4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이 산성의 명칭은 세검정 부근에 있던 연산군의 놀이터였던 탕춘대에서 따왔다고 전해진다. 탕춘대성은 홍지문과 오간대수문을 경계로 두 지형으로 나뉜다. 홍제천을 중심으로 남서쪽은 인왕산의 서울 성곽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를 따라 축조되었다. 북동쪽은 북한산 국립공원 탕춘대 능선을 따라 비봉을 향해 뻗어 있다.

능선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쉽게 오를 수 있는 오솔길로 가벼운 산책 겸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더불어 역사 탐방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세검정 상명대학교와 구기터널, 홍은동에서 시작하는 것이 성곽에 접근하기 수월하다.

 

 

석파정

 

별당

 

    

 

 

창의문 밖 부암동 고개에 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석파정의 부속 사랑채이다. 큰방은 홍선대원군이 사용하였고, 건넌방은 손님 접대공간이었으며, 대청 방은 흥선대원군이 사군자의 난초를 그릴때만 사용하였다고 한다.

 

대원군 별장은 33의 작은 집 한채 뿐으로 맞배지붕에 ''형으로 되어 있다. 대청마루 앞쪽을 제외한 양쪽에 난간이 설치되었으며, 중앙대청 양편과 ''로 꺾인 부분에 방이 있다. 집안의 구조는 큰방·건넌방·대청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청으로 흐르는 정면은 전통한옥 형식을 갖추었고, 마루 안쪽으로 난간을 설치하여 상류사회계급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처마가 없이 마무리된 벽돌 외벽면에 원형·반원형의 창을 설치한 것 등에서는 근대건축이나 중국건축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정희의 세한도를 일본으로부터 가져온 것으로 유명한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 1958년 이곳에 집을 지으면서 뒷뜰 바위 위에 옮겨 놓았다.

 

 

석파정

 

    

 

 

원래 조선시대 말기의 중신 김흉근의 별장이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집권 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하였다. 경내 안양각 건물 뒤 바위 앞면에 '삼계동'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삼계동정자'라 불렀는데 흥선대원군이 소유하면서 앞삼이 모두 바위인 것을 고려하여 그의 아호를 '석파'라 하고 건물의 이름도 '석파정'이라 하였다.

 

정문을 통과하여 정원에 들어서면 인왕산의 자연암석을 이용한 수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인왕산의 계곡 물이 흘러들어 연못을 이룬 곳에 '소순운렴암(물 속에 깃들어 있으면서 구름으로 발을 친 암자)'이란 권상하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마당 끝에 수백년 된 소나무가 차일을 친 듯 드리워져 있으며, 그 아래 그늘 넓이만도 67나 된다.

 

이곳은 19506·25전쟁 후 천주교의 콜롬바고아원이 되기도 하였으며 사랑채로 사용하던 별채 한 동은 1958년 손재형에 의해 홍지동 125번지로 이전되어 별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평대군

 

이용 집터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이 정치상황의 혼잡함을 피해 풍류를 즐기며 살던 별장으로, 일명 무이정사라고도 한다. 무계정사가 있던 암벽에 '무계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안평대군의 별장이 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세종 29(1447) 420일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박팽년 등과 함께 노닐었던 도원의 풍경을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에게 그리게 하여 완성한 작품이 <몽유도원도>이다. 그림에 나타난 장소를 찾아 이곳에 당도하여, 여기가 곧 꿈속에서 본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라 하고, 정자를 세워 글을 읽고 활을 쏘며 심신을 단련하였다 한다.

 

안평대군은 1452년 단종 즉위 후 이징옥 등을 시켜 함경도 경성의 무기를 서울로 옮기고, 창의문 밖 무계정사에서 장사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하며 무력 양성에 힘썼다. 이곳은 당시 사람들이 '홍룡지지'라 말하였던 곳으로 이는 곧 왕이 나올 곳이라는 역모의 땅으로 간주되었다.

 

 

현진건

 

집터

 

    

 

그가 살았던 인왕산 밑의 부암동 자택은 종로구에서 공용주차장을 짓기 위해 2003년에 헐어버려서 지금은 터와 '현진건 집터'라는 표석만이 남아 있다. 당시 그 생가의 철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행정당국은 '민간인 소유자와 부지 매입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2012104일에 안평대군의 사저와 함께 법원경매에 부쳐졌다.

 

 

반계 윤웅렬

 

별장

 

    

 

 

개화파 지식인 윤치호(1865-1945)의 아버지 윤웅렬(1840-1911)이 창의문 밖 경승지에 지은 별장이다. 1906년 건립당시 이 집에는 벽돌로 지은 서양식 2층 건물만 있었으나, 윤웅렬이 죽은 후 셋째 아들 윤치창이 상속받아 안채 등 한옥 건물을 추가로 지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안채, 사랑채 및 광채, 문간채의 세 채다. 안채는 대청을 가운데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좌우에 있으며, 안방 앞으로는 부엌이 두칸, 건넌방 앞으로는 작은 누마루가 달려 있다. 안채 왼쪽에 광채, 사랑채가 나란히 있는데, 자로 꺾인 사랑채의 한쪽 끝 부분에 서양식으로 지어진 2층 벽돌건물이 있다. 사랑채와 2층건물은 모두 경치가 좋은 남쪽의 계곡을 향하고 있으며, 사랑채 위로는 옥상 테라스가 만들어져 있다. 사랑채와 광채는 변형이 심하여 원래의 모습을 알기 힘들다. 반계 윤웅렬 별장은 도성 밖의 인왕산 북쪽 계곡에 세워진 별장으로서 외국으로부터 도입된 근대 건축 양식이 주택에 적용된 흥미로운 사례다. 또 안채는 근대 서울 한옥의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다.

 

 

'찬란한 유산'

 

촬영지

 

    

 

 

은성이네 집 

SBS <찬란한 유산>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큰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찬란한 유산> 시청자들에게 부암동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씩씩하고 당찬 여주인공 고은성(한효주)의 월세방이 있던 동네가 부암동이었기 때문이다. 은성이네 집으로 등장한 촬영지는 사실 일반 가정집이다. 남의 집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은성이와 선우환(이승기)의 가슴 설렌 이야기가 깃든 집 앞 계단과 주변 정경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드라마를 추억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창의문 사거리 stuart’s 카페의 옆 골목으로 진입해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청운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는 2009711,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인왕산 자락 청운공원(부암동)[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이곳에 <序詩> <슬픈 族屬>을 새긴 시비(詩碑)룰 건립하였다. 윤동주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하면서 <서시> <별 헤는 밤> 등 대표작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윤동주 시인은 인사동과 광화문, 인왕산 자락을 거닐며 시상을 구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언덕의 정상에 詩碑'序詩'시비가 세워져있다.

 

 

최규식 경무관

 

동상

 

    

1968121일 북한 김신조 및 31명의 무장 공비의 청와대를 습격해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고 남파사건 당시 총격전으로 사망한다. 사후 그 근처에 동상도 건립되었다.

 

창의문

 

    

 

창의문(彰義門)은 도성의 4소문(四小門) 중의 하나로서 경복궁의 주산인 백악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조 5(1396) 도성을 축조할 때에 함께 건축되었다. 태종 때에 와서는 한때 폐문이 되었는데 폐문의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숙정문 설명에서 기술한 바 있으므로 중복을 피하거니와 태종 13(1413) 최양선의 지리도참설에 의하여 폐문하였다.

 

창의문은 태종 13년부터 항상 닫혀 있었으나 궁장 축조와 같은 국가의 대역이 있을 때에는 역력(役力)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창의문을 열어서 통행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1956년에 창의문을 보수하였는데 이 때에 영조 17년에 창의문의 문루를 건립하면서 기록하여 둔 묵서(墨書)가 장여(長茹)에서 나왔다.

 

이 묵서는 건륭육년신유유월십육일오시상량(乾隆六年辛酉六月十六日午時上樑)’이라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현재에 있는 창의문의 문루는 영조 17(1741) 1월 구성임의 건의에 의하여 그 해 616일에 상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창의문도 그 서쪽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통행로가 되었으므로 항상 닫힌 채 그 모습은 변함없이 49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창의문은 서울 성곽 4소문 중 잔존하고 있는 완형의 유일한 유례이다. 목조문루(木造門樓)는 튼튼하고 정교하며 석문은 아담하다. 문에는 지금도 성벽의 일부가 연속되어 있다.

 

 

환기

 

미술관

 

    

 

수화(樹話) 김환기 선생이 작고한 이듬해 설립된 환기재단에 의해 1992년에 세워졌습니다. 환기미술관은 수화선생의 예술을 보존, 연구, 전시하는 기념적 성격의 미술관으로 김환기 선생의 유화, 과슈, 수채화, 드로잉, 오브제등의 작품과 생활유품, 편지, 사진등의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상설전시 및 기념전시, 특별전시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환기 선생의 예술만에 국한되지 않는 현대미술에 대한 기획과 전시의 공간도 마련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미술의 해외교류를 위한 전시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밖엔 1년에 2-3차에 걸친 음악회와 강연회와 같은 각종 이벤트와 행사도 진행하고 있으며, 개관 이래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미술 포럼과 초,,고등학생을 위한 미술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

 

    

 

 

산모퉁이

MBC <커피 프린스 1호점> 한성이네 집

조용한 동네였던 부암동에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여름부터다.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지로 부암동의 카페 겸 갤러리 산모퉁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은찬(윤은혜)이 우유배달을 하며 오르내리던 능금나무길을 바지런히 올라가면 최한성(이선균)과 한유주(채정안)가 다정한 시간을 보내던 한성이네 집이 나온다.

 

산모퉁이에서 드라마의 모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카페 대문에 최한성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고 드라마 촬영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몽실몽실한 한성이의 개 쓸자대신 노란색 폭스바겐 비틀이 지키고 있는 마당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실내는 주인공들의 초상화, 배우들의 사인 등으로 장식돼 있어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에 온 것을 실감나게 한다. 한류를 타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산모퉁이의 가장 큰 매력은 야외 테라스. 수려한 산자락 아래에 감싸인 부암동의 소박한 전경을 두눈 가득 담을 수 있다. 하지만 주말에 방문할 경우 사람이 너무 많아,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카페 특유의 여유로움이 덜한 것은 아쉽다. 창의문 사거리에서 능금나무길을 따라 약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

 

 

백사실

 

계곡

 

    

 

백석동천

부암동 백석동천은 백사 이항복(1556~1618)의 별서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1800년대에 조성되었다. ‘백석(白石)’은 백악산, 지금의 북한산을 말하며, 동천(洞天)은 신선이 와서 놀 정도로 경치가 좋다는 의미이다. 예전부터 이곳은 백사실로도 불렸는데, 이항복의 호를 따서 백석동천을 바꿔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세검정 터

 

    

 

세검정은 홍제천 일대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여 많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정자를 처음 지은 것은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1748(영조 24)에 고쳐 지으면서 세검정 현판을 달았다. 세검정이라는 이름은 칼을 씻고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의 건물은 194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세검정도>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숙종 대에 북한산성과 서울도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을 건설하는 등 이 일대가 서울의 북방 관문으로서 중요성이 커지면서 무신들의 휴식처로 자주 이용되었다.

 

자하주택  

MBC <내조의 여왕> 천지애의 집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태봉이(윤상현)가 쭈쭈바를 입에 물고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천지애(김남주)를 기다리는 씬이었다. 극중 천지애와 오달수(오지호)의 집으로 등장했던 곳이 부암동 바로 옆 동네인 세검정에 위치한 자하주택이다. <내조의 여왕>의 팬이라면 이곳을 보기만 해도 수많은 명장면들이 스쳐지나갈 듯. 자하주택 앞에 위치한 자하슈퍼에는 지애와 태봉이가 티격태격하고 달수와 함께 소주를 마시던 노란 평상이 아직도 놓여 있다.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해 미라지여관 골목으로 우회전 후 도보 약 5.

 

 

2부에서 역사이야기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