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뚫음무늬금동장식품(진파리7호무덤출토).jpg
삼족오유물로 고구려의 진파리 7호고분에서 나온 ‘해뚫음무늬 금동장식품(日光透彫金銅裝飾品)’을 들 수 있습니다. 왕의 장식품으로 중앙의 구슬을 박은 두겹의 태양 동그라미 속에 황금빛 ‘세발까마귀’가 불타오르듯 절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북한에서 국보로 보존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삼족오
고구려 벽화에 삼족오가 태양속에 그려져 있고 태양을 상징하는 금오(金烏)와 달의 상징 금와(金蛙)는 제철기술을 가진 집단으로 금오(金烏)는 고온으로 제조하는 제철을 금와(金蛙)는 저온의 제련의 특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삼족오 ( 태양숭배사상과 토테미즘(태양에 대한), 샤머니즘의 산물)
다리가 세개인 까마귀를 지칭하며 금오(金烏) ·준오(烏)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검은색과 3이라는 숫자는 양(陽)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져 왔다. 또한 날아다니는 조류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세가지를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삼족오로, 극양(極陽) 즉 해를 나타낸다. 중국고대신화에 천제의 10명의 아들이 태양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세상이 가물어 못살게 되자 활의 명수인 "예"라는 사람이 산에 올라가 활로 태양9개를 쏘아 맞히고 떨어뜨렸는데 그 안에 있던 새가 세발달린 까마귀였다고 한다. 삼족오는 고대 동북아시아의 태양숭배사상과 토테미즘(태양에 대한), 그리고 샤머니즘의 산물이다.
다리가 세개 달린 까마귀의 모습으로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태양신의 사자이자 신수라 생각했다. 중국의 고서인 《초사(楚辭)》와《산해경(山海經)》에는 태양속에 까마귀가 살며 천계와 인계를 건너다닌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단군세기” 나 “단기고사” 에도 삼족오에 대한 기록이 있다. 『갑인 7년(BC 1987), 세 발 달린 까마귀가 궁전의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의 넓이가 석 자나 되었다. -甲寅七年 三足烏飛入苑中 其翼廣三尺』 고구려의 벽화에 종종 등장한다. 삼족오는 이미 기원전 4000년경의 앙샤오(仰韶)문화 유적지 토기에서부터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삼족오는 옛 고구려 지역을 비롯한 산동 지방과 요녕 지방 일대 고분벽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로 추측건데 세발까마귀는 태양의 신수로 봉황, 주작, 가루다, 가릉빈가, 불새, 피닉스로 나열되는 범세계적인 태양의 새와 동일하게 보고 있다. 불교의 사상을 살펴봐도 가루다의 먹이는 용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가루다는 봉황의 인도식 이름이다. 고대 동북아시아의 삼족오는 크게 세 가지 경로의 변형이 일어난다.
첫째, 실제의 새 모양을 간직한 채로 변형되는 것으로 각종 고분의 삼족오와 우리 나라 민속에서 보이는 삼두매(一足三頭鷹), {조선왕조실록}과 {악학궤범}에 보이는 삼두삼족주작(三頭三足朱雀) 등이 그것이다. 둘째, 삼족오가 지닌 '3수 분화의 세계관'과 '삼신사상'이 구체적인 새 모양을 넘어서서 삼태극(三太極)으로 추상화되는 변형이 일어난다. 삼족오에서 삼태극으로 추상화되는 중간단계의 모습이 보물 635호인 '신라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14호분 출포 장식보검'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런 추상화는 이미 주(周)나라 시대에 확립되었다. 셋째, 전국시대이후 특히 한나라 시기에는 음양오행론이 확립되면서 삼족오는 남방(南方) 화(火)를 상징하는 주작(朱雀)으로 변형된다. 중국에서 발견되는 주작들은 모두 다리가 2개로 변화하여 '3수분화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음양오행론 안에 수용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 {조선왕조실록}이나 {악학궤범}에 보이는 주작은 분명하게 '머리가 셋이고 다리도 셋'인 삼두삼족(三頭三足)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주작이 고대 삼족오의 변형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족오만은 고구려 고유의 상징물"이라는 표현이나, "선조들의 것을 일본에게 빼앗긴 꼴"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 우리의 문화전통에 대해서 무지해서 오랜 역사와 사상적 배경을 지닌 삼족오를 활용하지 못한데 있다. 일본축구협회가 1930년대부터 삼족오를 엠블렘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전통을 나름대로 현대화한 본받을 만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삼족오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유산이고, 일본은 그것을 현대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지 못할 뿐이다. 무당(무속인)들의 집 앞에 솟아있는 솟대에도 종종 삼족오 조각이 쓰여있다. 고대로 갈수록 솟대 위의 조각에는 삼족오를 조각하는 일이 많았는데 현대로 올수록 간결화되어 그저 새를 닮은 형상물이나 새의 조각을 조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일본에는 아직 삼족오를 모시는 사당이 몇군데 남아있고 고서에 까마귀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삼족오= 태양조(太陽鳥)= 양조(陽鳥)= 현조(玄鳥)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활용하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중국 요녕성 심양시는 동북 3성의 중심지이자, 고대로부터 북방문화의 중심지였다. 요녕대학 안에는 5m나 되는 태양조(太陽鳥) 조각이 상징물로 세워져있고, 심양시의 상징물도 태양조다. 시청광장에는 30m는 족히 되는 태양조가 한 가운데 세워져있다. 심양 북역(北驛) 광장에도 50m도 넘어 보이는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태양조가 비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삼족오 벽화가 그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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