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기원
간접기원설
결승
줄을 매듭을 지어 정보를 전단했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건의 규모에 따라 매듭의 크기를 달리 하고, 또 매듭의 수량으로 물건의 수량을 표시하였다. 결승이 초기 인류가 언어로써만 의사를 소통하던 단계에서 실물을 사용하는 시각적인 방법을 이용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과 이를 통하여 문자의 가능성을 열어 둔 점이 넓은 의미에서 문자 발명의 밑거름 역할을 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팔괘(八卦)
팔괘는 《易·繫辭下》에 결승과 함께 보이는데, 출현 시기는 결승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괘효의 출현 시기만 보더라도 한자가 팔괘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성립할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계각(契刻)
계각은 나무와 같은 재료에 간단하게 숫자를 새기는 것을 가리킨다. 계각의 계와 각은 모두 새긴다는 뜻이다. 갑골문을 보면 한자의 ‘一’부터 ‘四’까지 숫자의 표기가 계각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전체 한자체계로 볼 때 한자가 계각에서 기원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문자가 결승이나 계각과 다른 점은 사회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문자는 대중적인 언어 기초 위에서 생성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승이나 계각은 개인의 기억 보조 도구 역할만을 하는 것이어서 문자와 구별되며 문자로 발전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한자의 직접적인 기원이 될 수는 없다.
직접기원설
창힐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말이 전국시대에 널리 유행한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은 전국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생겨났을 것이다. 창힐이 문자를 처음 만들었다는《說文解字·叙》의 기록은 당시 전설의 정리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창힐은 한자체계 형성기에 정리를 담담하였던 인물이거나 단지 한자를 만든 다수의 민중을 대표하는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고고학 발굴 자료에 보이는 한자 기원의 흔적
암각화
암각화는 녕하(寧夏)·청해(靑海)·내몽고(內蒙古)·서장(西藏)·황서(廣西) 등 중국 각지에서 널리 발견되고 있는 바위나 동굴에 그려진 표의(表意) 기능이 있는 그림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계의 대부분의 고대 문자들은 직접적인 기원이 그림인데, 이 암각화들은 바로 문자가 그림에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암각화 자체는 결승이나 계각처럼 실물을 사용하여 의미를 표현하는 것보다 편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어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나타내는 문자와는 거리가 있고 불편한 방법이다. 암각화의 각 요소들이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문자화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청동기(靑銅器) 족휘(族徽)
상대(商代) 말부터 서주(西周)시기의 청동기 명문(銘文) 가운데는 한 글자씩 나누어 발음을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 적지 않다. 이 글자들은 같은 시기의 금문과는 다른 원시적 그림 형태로서 원시 토템 부호에서 발전한 것이다. 종족의 명칭을 나타내는 부호이므로 이 글자들을 족명금문(族名金文) 또는 족휘(族徽)라고 부른다. 이 족휘는 하나의 단위로 표현되는 것이므로 언어의 음절과 일대일 대응하는 관계를 찾을 수는 없지만, 의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도기(陶器) 부호(符號)
고고학 발굴이 활발해짐에 따라 1950년 이래로 도기 부호가 꾸준히 발굴되었고, 이 자료들은 한자의 기원 문제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한자체계의 형성과정
이상의 문헌과 고고학 발굴 자료의 고찰을 통하여 우리가 추정하는 한자체계의 형성과정은 다음과 같다.
1) 실물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방법
2) 실물과 그림을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기록하던 방식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던 언어를 대응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냄: 이 과정에서 결승이나 계각에서 사용되었던 소위 기호자[記號字 : 자형이 그가 나타내는 단어와 관련성이 없는 고문자에서의 (五)·(六)·(七) 같은 글자]들이 한자체계에 들어왔고, 이런 글자들과 섞이면서 그림에서 상형자들이 독립함.
3) 그림으로 표현하기 힘든 숫자나 허사 그리고 사물의 속성을 표시하는 단어의 출현
기하형 도부, 암각화, 족휘 등에 근거하여 추정해 보면, 신석기시대 농업이 발달한 이후인 기원전 3000년경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한자체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한자의 변화
구조의 변화는 크게 형성자의 증가․形符 위주에서 義符 위주로의 意符의 성격 변화․기호자의 증가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화
(1) 도형형식의 부호를 선형으로 바꾼다.
(2) 비필(肥筆)을 쌍구(雙鉤)나 수필(瘦筆)로 바꾼다.
(3) 중복된 부분을 생략한다.
(4)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생략한다.
(5) 구조가 복잡한 자 대신 동음자(同音字)를 차용(借用)한다.
(6) 새 글자를 만든다. 이 방법은 이체자가 생기는 원인 가운데 하나인데, 다시 7 가지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중첩된 회의자를 형성자로 바꾼다.
② 필획이 복잡한 義符를 교체한다.
③ 복잡한 성부를 교체한다.
④ 원래 글자의 일부분만을 쓴다.
⑤ 필획이 많은 회의자를 필획이 적은 회의자로 대체한다.
⑥ 형성자를 간단한 회의자로 대체한다.
⑦ 원래 글자의 일부분을 간화한다.
번화
(1) 필획을 첨가한다.
(2) 장식 부분을 첨가한다.
(3) 편방을 첨가한다.
① 義符첨가
② 聲符첨가
자체의 주요 변화
고문자
(1) 갑골문
龜甲獸骨文字의 약칭이다. 殷代 사람들이 갑골 위에 복괘에 관하여 새겨 놓은 문자이다. 따라서, 갑골문을 은허 문자 또는 은허 복사라 부르기도 한다.
갑골문은 문자체계와 형체 구조상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① 갑골문은 후세의 육서에서 제지한 조자 방법이 모두 사용되었다.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 등)
② 갑골문의 형체 구조는 완전히 정형화되지 않아서 자형이 대부분 고정되어 있지 않다.
③ 갑골문에는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글자를 한 글자의 공간에 함께 새기는 合文이라는 특수한 구조가 존재한다.
④ 갑골문에는 異字同形현상이 존재한다.
⑤ 갑골문은 대개 칼로 딱딱한 뼈에 시긴 글자이기 때문에 필획이 대부분 가늘고 길다.
(2) 金文
銅器 위에 주조하거나 새긴 銘文을 가리킨다. 금문의 자체는 갑골문과 유사하지만 금문은 대부분 주조한 것이라서 갑골문보다 필획이 넓고 굵다. 자체의 위치도 비교적 고정적이고 行款도 일반적으로 위에서 아래, 우측에서 좌측이다.
(3) 大篆
大篆은 小篆보다 좀 이른 시기에 사용되었지만 소전과 거의 유사한 古文字體로서,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서쪽의 秦 지역의 籒文과 동쪽 여섯 나라의 六國古文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주문은 ≪史籒篇≫에서 문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漢代 사람들은 ≪史籒篇≫의 문자를 大篆이라 불렀는데 진계 대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石鼓文을 대전의 대표로 본다.
진나라 계통의 문자는 서주 금문의 영향을 받은 ≪史籒篇≫ 문자를 계승하였고, 서주와 지역적으로 일치하여 문자도 다른 육국에 비해 周의 자형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육국은 동쪽에 위치하였고 문화도 비교적 발달하여 자형이 상당히 간화되었다. 그리고 육국 사이에도 문자의 형체가 서로 많이 달랐는데, 이를 ‘六國古文’이라 부른다.
(4) 小篆
소전은 秦의 표준 자체이며 이전의 고문자들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① 문자 형체가 규칙화 되었고, 합체자도 편방 형체와 위치가 대부분 고정되었다.
② 도화성이 점차 약화되고, 자형이 한층 부호화되었다.
③ 글자의 필획을 줄여 간화하였다.
④ 자체의 구조에서 형성의 방법을 많이 사용하여 형성자가 증가하였다.
금문자
(1) 隸書
한자의 자체 변천과정에서 전서에서 예서로의 변화는 가장 중요한 변화이다. 성숙한 예서와 전서를 비교해 볼 때 예서가 전서와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① 형체구조가 완전히 필획화하는 경로로 들어서서 문자는 이미 순수하게 필획으로 구성된 부호가 되었다. 소전에 남아있던 상형적인 의미는 예서에서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② 수많은 글자의 형체나 편방부호는 종종 간략한 구조로 변하였다.
③ 원래 동일하던 편방이 몇 개의 형태가 분화되거나 원래 다른 형태이던 것이 동일하게 되었다. 이것은 두 개의 다른 상황이지만 모두 소전의 원래 있던 형체구조의 계통을 무너뜨렸다.
④ 예서는 쓰기에 편리하도록 전서체의 각종 선들을 점(點)․횡(橫)․수(豎), 별(撇)․날(捺) 등의 필획으로 바꾸어서 전서의 둥글둥글한 선들을 대부분 직선의 짧은 획들로 바꾸었다. 자형도 소전의 장방형에서 편방형으로 바뀌어서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게 되었다.
(2) 楷書
해서는 眞書라고도 하는데 서한 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해서는 완전한 필획으로 이루어진 네모형 부호로서 고한자의 도형 의미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 草書
초서는 漢代 이래로 자체적으로 체계를 갖춘 자체로서 章草라고도 부른다. 장초에서 변하여 한 획으로 이루어진 今草와 여기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당나라 때에 완성된 狂草는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 실용성에 제한을 받게 되었다.
(4) 行書
행서는 금초와 해서의 중간 자체로서 대략 동한 말기에 형성되었다. 행서는 해서와 유사하면서 정연하지 않고 금초와 유사하면서 방종하지 않은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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