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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30

草霧 2014. 2. 4. 11:59

 

 

 

 

천만 영화가 보여주는 국민정서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30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4.01.28

 

 

천 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들 위부터 (변호인), (7번 방의 선물)(좌), (광해 왕이 된 남자)(우) (사진 뉴시스)

[서울톡톡] 지금까지 모두 10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1위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 <아바타> 1,362만, 2위 봉준호 감독 <괴물> 1,301만, 3위 최동훈 감독 <도둑들> 1,298만, 4위 이환경 감독 <7번방의 선물> 1,281만, 5위 추창민 감독 <광해, 왕이 된 남자> 1,231만, 6위 이준익 감독 <왕의 남자> 1,230만, 7위 강제규 감독 <태극기 휘날리며> 1,174만, 8위 윤제균 감독 <해운대> 1,145만, 9위 강우석 감독 <실미도> 1,108만, 그리고 이번에 <변호인>이 열 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이 영화들이 모두 완성도가 탁월하다거나 특별히 재미있어서 천만 영화가 된 것은 아니다. 인구 오천만 명 수준인 나라에서 무려 천만 명이 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일은 단순히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만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영화가 국민적인 정서나 민족적인 한을 건드릴 때에만 나타나는 사회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할리우드의 <트랜스포머>나 <아이언맨> 같은 영화들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천만 '사태'가 터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로 한국인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는 한국 영화가 주로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천만 관객 이상으로 국가적 신드롬이 나타나는 코드로는 역사적 상처, 민주적 상식, 권력에 대한 반감, 따뜻한 정, 보호자 영웅 등을 꼽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변호인>에 이 코든 코드들이 종합적으로 나타난다. 한 마디로 준비된 천만 영화였던 셈이다.

영화 속에서라도 험한 세상 '보호자'가 있었으면...

먼저, 역사적 상처는 천만 사태를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코드다. 최초의 천만 영화였던 <실미도>가 바로 바로 현대사의 상처를 그린 작품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의 상처, <변호인>은 1980년대 군사독재 시기의 상처를 다뤘다.

민주적 상식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글자 그대로의 상식을 말한다. 현실에서 그런 걸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영화에서 그런 상식이 나올 때 국민적인 열광이 나타났다. <변호인>은 그 상식을 주인공의 대사로 외치는 영화였고, <광해, 왕이 된 남자>도 주인공이 비슷한 대사를 했었다.

권력에 대한 반감은 권력으로부터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 등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기 때문에 대형 흥행 영화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코드다. <괴물>에서 권력은 괴물을 잡지도 못하면서 주인공 가족을 괴롭히기만 하고, <7번방의 선물>에선 무고한 주인공을 살인자로 몰고, <실미도>에선 병사들을 소모품처럼 내버리고, <변호인>에선 고문까지 했다.

따뜻한 정은 요즘 세상이 너무 각박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나마 따뜻함을 느끼려는 대중 정서다. <괴물>에선 변희봉이 가족을 지키는 아버지로 송강호는 딸을 지키려는 딸바보로 나왔다. <7번방의 선물>도 딸바보 아버지의 이야기였고, <변호인>엔 부정과 모정이 모두 등장했다. <아바타>에선 외계인 부족의 끈끈한 우애가 그려졌다.

보호자 영웅은 힘든 세상에 불안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대중이 영화 속에서나마 강력한 힘을 가진 보호자를 찾기 때문에 나타나는 코드다. <변호인>은 글자 그대로 힘없는 서민을 변호해주는 보호자였고,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선 이병헌이 서민의 보호자로 등장하며, <아바타>에선 주인공이 외계인 부족을 지켜주는 전사였다.

대부분의 천만 영화에서 이런 코드들이 나타나는데 그 외 특이사례는 두 편이다. <도둑들>은 순수 오락영화로서 이렇다 할 사회적 메시지가 없었고, <아바타>는 할리우드 영화인데도 천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도둑들>의 흥행은 이제 한국에서 무거운 의미성보다 가벼운 자극성을 추구하는 B급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걸 의미한다. <아바타>는 영화의 내용과 별개로 최초의 본격적인 3D 흥행작으로서 첨단기술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새 시대를 확인하려는 범국민적 관람 열풍이 나타난 경우였다. 한국에선 쏠림현상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작품의 성격이 시대 정서와 맞아떨어졌을 땐, 천만 영화라는 국가적 사태가 또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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