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마구 나눠드려 `많이 놀라셨죠?`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7
[서울톡톡] 방송사에서 연말에 하는 시상식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결산하는 행사라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방송사 연말 시상식을 TV중계로 시청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방송사의 시상식은 우리 대중문화계 결산 행사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해마다 비난이 쏟아졌는데 이번에도 역시나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MBC 연기대상은 하지원에게 대상을 안겼다. 하지원은 지금 한창 방영중인 <기황후>에 출연하고 있다. 1년 내내 방영됐던 작품들을 다 뒤로 하고, 아직 끝나지도 않은 작품에 대상을 준 것이다. 이것은 방영중인 작품의 홍보를 위한 선택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MBC는 2012년에도 반년 이상이나 MBC 드라마를 이끌었던 안재욱을 외면하고 당시 방영중이었던 <마의>의 조승우에게 대상을 돌려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러니 대중문화 결산하고는 상관이 없는 방송사 홍보 이벤트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MBC에서 올해의 드라마상을 받은 것은 <백년의 유산>이고, KBS에선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가 작가상을 받았다. 문제는 이 작품들이 모두 막장드라마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점이다. 막장이건 아니건 시청률만 좋으면, 즉 방송사의 이익만 올려주면 상을 주는 것이냐는 비난은 그래서 나온다. 방송사의 이익에 휘둘리는 시상식이라면 한국 대중문화계 결산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면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동원해 국민에게 보라고 방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시상식이 우스꽝스러워진 이유
우스꽝스럽게 남발되는 상도 문제다. 연기대상은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신인상, 작품상 정도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일일, 미니, 중편, 장편, 특별기획 등으로 부문을 잘게 나눈 다음 특별연기상, 황금연기상, 베스트커플상 등 기상천외한 명목으로 상을 뿌리고 있다. 이미 도를 넘어설 정도로 잘게 나뉘어진 부문에 공동수상까지 가세해 수상자가 더 늘어난다. 심지어 SBS 연기대상에선 10대스타상과 뉴스타상 등 두 부문에서 무려 20명이 공동수상하기도 했다. 대상 직전에 방송사 사장이 특별상을 발표하는 전대미문의 사태도 있었다. 그야말로 온갖 구실로 상을 마구 나눠준다는 느낌이다. 이러니 시상식의 권위가 추락하고 점점 우스꽝스러운 행사가 돼간다.
연예대상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KBS 연예대상은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신인상 등 본상 외에 베스트팀워크상, 실험정신상, 최고 엔터테이너상 등 황당한 부문을 추가해 시상했다. MBC 연예대상은 MC인기상, 가수인기상, 특별상, 올해의스타상, 우정상 등 정체불명의 부문에서 상을 '난사'했다. 심지어 MC인기상을 받은 서경석이 '올해 MBC에서 MC를 본 게 없었는데'라며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이상한 시상이었다. SBS에선 베스트챌린지, 베스트엔터테이너, 베스트페밀리 등 황당한 부문이 추가된 것은 물론, 인기상 조작 논란까지 터져 시상식의 권위가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문제는 이것이 몇몇 방송사의 망신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게는 공공의 재산인 전파낭비, 시청자의 시간 낭비라는 문제가 있고, 크게는 방송사의 '황당' 시상식이 나라망신, 한국 대중문화계의 경쟁력 저하로까지 이어진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또, 시상식이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치러지며 좋은 작품에 힘을 실어줘야 더 좋은 작품들이 나타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순전히 시청률과 방송사의 이익 위주로 상을 뿌리기 때문에 그 많은 상들 속에서도 좋은 작품은 오히려 소외당한다. 그리하여 대중문화계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의지가 점점 퇴색할 수밖에 없다.
상의 가치가 떨어지고 시상식이 우스꽝스러워져, 상을 챙겨주지 않으면 아예 참석하지 않는 흐름까지 생겨 시상식이 더욱 '참석상' 정도로 격하되고 있다. 지금처럼 황당 시상식이 계속 되다가는 결국 시상식 무용론이 일어나 방송사를 압박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방송사가 시상식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상식이 방송관계자들의 상나눔 연말 파티가 되면 곤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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