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백범김구기념관과 애국선열의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

草霧 2013. 12. 30. 11:18

 

 

 

 

효창공원은 공원이 아니다

백범김구기념관과 애국선열의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

 

시민기자 이한설 | 2013.12.27

 

 

 

 

[서울톡톡] 효창공원에는 백범김구기념관이 자리 잡은 것은 2002년 10월의 일이다. 1949년 7월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유해가, 1948년 9월에는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선생의 유해가, 1946년 7월에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었다. 모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찾아간 효창공원에서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굳은 심지를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백범김구기념관 내 김구 선생 동상

백범김구기념관은 오후 5시에 폐관하며 오후 4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기념관에는 김구 선생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그리고 사후의 역사까지 총망라 되어있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자료가 수준 높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진촬영이 금지인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시간 내에 모두 둘러볼 수 있었으니 만족스러웠다.

김구 선생의 묘

기념관을 둘러보고 김구 선생의 묘를 찾아갔다. 선생의 묘는 기념관 바로 뒤에 있다. 마른 잔디에, 푸른 소나무에, 엷게 쌓인 눈이 김구 선생의 한스러운 죽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겨울과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실례일까? 우리 역사 가운데 가장 추운 시절을 관통하신 분의 묘역이기에 한여름에 갔어도 아마 가슴이 시렸을 것이다.

효창공원의 역사는 멀리 정조 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가 5살에 요절했고, 그를 묻은 곳이 효창공원의 시초였다. 당시 이름은 효창묘. 이후 의빈 성씨(문효세자의 생모)의 묘가 이곳에 조성되었고, 숙의 박씨(순조의 후궁)의 묘와 그녀의 소생인 영온옹주의 묘가 또 이곳에 조성되었다. 1870년에 이곳의 이름이 효창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1894년 5월, 일본군이 청일전쟁을 빌미로 효창원 내 만리창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1924년 6월에는 일부가 공원으로 개방되었고, 1940년에는 전체가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45년 3월에는 급기야 효창원 내에 있던 모든 묘가 서삼릉으로 이장되었다. 아,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효창운동장

해방 후 김구 선생께서 이곳을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려고 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효창원이 다시 훼손되기 시작했다. 1960년 10월에는 효창운동장, 1969년 8월에는 원효대사 동상, 그해 10월에는 북한반공투사위령탑, 1972년 7월에는 대한노인회 노인회관이 들어섰다.

효창공원이 효창원으로 돌아가기에는 이제 너무 먼 길을 온 것 같다. 뿌리가 되는 묘는 모두 이장되었고, 구석구석 너무 심하게 훼손되었다. 지금이라도 효창원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또렷해졌으면, 효창원을 효창운동장의 부속공원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