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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4

草霧 2013. 12. 18. 13:56

 

 

 

정치인의 연예인화, 좋은 일일까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4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12.17

 

 

SBS 정치인 리얼 다큐 [최후의 권력-7인의 빅맨](사진:sbs)

[서울톡톡] 정치인들이 연예인처럼 방송에서 활약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 최근 SBS 특집 방송 <최후의 권력-7인의 빅맨>에선 금태섭 변호사, 박형준 전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 손수조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 정봉주 전 의원, 정은혜 민주당 전 부대변인, 차명진 전 의원, 천호선 정의당 대표 등이 나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 같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시청자의 반응이 좋아 내년 정규편성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tvN <쿨까당>에선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이 진행자로 나섰고 여러 정치권 인물들이 패널로 참여했다. JTBC <적과의 동침>에선 유정현 전 의원이 MC를 맡았으며 수많은 현역 국회의원들이 집단토크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TV조선 <강적들>엔 강용석 전 의원과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이 출연하고 있다. 강용석 전 의원은 이밖에도 JTBC <썰전>, <유자식 상팔자>,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명시적인 정치인 말고도, 정치평론가인지 정치인 지망생인지 그 경계가 애매한 인사들까지 많은 정치권 인물들이 연예인처럼 방송에서 활동하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들이 대거 방송 진출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도 안철수 효과를 통해 방송의 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 중견 기업인이었던 안철수는 토크쇼 출연으로 일약 차세대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이 사태 이후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정봉주 전 의원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한때 네티즌의 공적이었던 강용석 전 의원도 다양한 방송 출연을 통해 이젠 인기 스타가 됐다. 비호감이었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져 '이미지 세탁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다. 정책자료집 내고 TV토론 나가서 열변 토하는 것보다, 예능이나 연성화된 교양프로그램에서 인간적인 모습 한 번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가 큰 시대다.

새로운 출연진이 절실했던 그때 나타난...

방송사 입장에선 마침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했다. 최근에 연예인들의 토크쇼가 점점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출연진들이 절실해진 것이다. 인지도는 있지만 일반 방송에선 아직 그 이미지가 소모되지 않은 정치인이야말로 방송사가 찾던 최적의 새 얼굴이었다. 또 최근 들어 정치가 중년 이상 시청자들의 엔터테인먼트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정치인들의 가치가 커졌다. 예능과 시사, 교양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도 정치인의 영역이 넓어진 원인이다.

그래서 이젠 정치인을 토론이나 뉴스가 아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들이 방송에서 하는 말의 내용도 국가정책에서 사적인 토크로 바뀌어가고 있다. 심지어 개인기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근엄할 거라고만 여겨졌던 정치인들이 이렇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과 정치가 더 친숙해진다. 정치인의 소탈한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보인다는 게 문제다. 토론이나 뉴스에서 정치인들은 논리적으로 정견을 설명하거나, 여야의 입장을 대변하며 각을 세운다. 이런 게 정치의 본 모습이다. 반면에 요즘 유행하는 예능이나 연성화된 교양프로그램에서 정치인은 오로지 인간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은 스스로의 정치적인 실체하고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런 방송이 부각되면 시청자는 인간적인 이미지만을 통해 정치인을 판단하게 된다. 꼭 정치적 좋고싫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해도. 방송을 통해 인간적인 친밀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친밀감은 결국에 정치적 영향력, 지지도, 선거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치가 이미지에 휘둘릴 우려가 있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 형식의 예능에서 몇몇이 과제에 도전하는 설정으로 정치인의 리더십을 검증한다는 방송도 위험하다. 실제 국가운영능력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규모 집단에서의 친화력을 기준으로 정치인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미지와 방송 인기에 좌우되는 정치를 성숙한 정치라고 하기 힘들다. 정치인이 연예인이 되는 시대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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