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는 이광수뿐?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분석해 공개적으로 밝힌 오류 건수는 298건이다. 이 중 40% 이상을 차지하는 124건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Ⅴ단원에 집중되어 있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교학사에는 임시정부 역사가 제대로 서술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봉길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257쪽)'와 '미국과 중국은 임시 정부를 끝내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았다(277쪽)'라는 정반대 서술이 함께 있는데, 사실 '중국은 윤봉길 의거 이후 임시정부를 지원했지만 승인하지는 않았다. 중국이 임시정부를 승인하려고 한 것은 1940년대 이후였다. 이마저도 미국의 반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이와 비슷한 오류가 Ⅴ단원에 넘쳐난다. 하지만 이 오류는 교육부 수정지시 사항에 들어 있지 않다. 부분 수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이 교과서로 공부한 수험생은 수능 문제를 맞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교묘한 서술로 부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교과서 집필기준에 따르려면 독립운동사를 중심으로 써야 한다. 교학사는 독립운동사를 왜곡 폄하했다. 이승만을 부각하려고 임시정부 역사를 변조했고, 본문에 안창호라는 인물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교학사 역사교과에서는 식민통치 미화도 눈에 띈다.'일제강점기의 사회·경제적 변화'라는 제목이 붙은 6장에는 '신시가지인 남촌 거리는 가로등과 같은 기반 시설과 함께 백화점, 상점가, 은행 빌딩 근대적 도시 모습이었다. 반면 북촌 거리는 가로등조차 없는 상태였다(280쪽)'와 '경성의 경우 한국인들은 청계천 이북의 북촌과 마포 등을 중심으로 거주하였던 반면 일본인들은 청계전 이남의 남촌과 용산 등에 거주하였다.
즉 한국인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신시가지를 조성하였다(280쪽)'고 서술되어 있다. 특히 '민족 지사들은 조선교육회를 설립하여 교육의 기회 균등을 위한 학교 증설, 교육 차별 폐지, 한국어 교육 용어 사용, 한국사 교육 등을 주장하였다. 이를 수용하여 일제도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였다(260쪽)'라고 쓰였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일제강점기 역사상을 완전히 바꾸는 서술이라고 꼬집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친일 역사를 거의 서술하지 않고 있다. 7장 1절 '일제의 침략 전쟁에 대한 민족의 대응'에서 채 10줄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친일파 문제를 다루며 본문에서 직접 이름이 거론된 친일파는 이광수뿐이다.
또 수행평가란에 '최남선은 공과 과가 있는데, 공과 과를 함께 논한다면 어느 쪽이 클까? 주요 공적에 대해서 현재 우리나라 상훈법에 비추어 포상을 한다면 어떤 상을 수여하면 적절할까?(297쪽)'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 위원장은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반 헌법적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에 명시되었듯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임시정부의 법통에는 다른 독립운동도 포함된다고 일반적으로 해석된다. 임시정부는 친일청산을 주장했다. 친일청산은 독립운동 진영에서 거의 공통으로 주장되던 바였다. 그러니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를 극복하고 친일청산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제 식민통치와 친일파를 미화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육 현장 "어쩌나?"
지난 25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교학사를 제외한 나머지 7종 교과서에서 65건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 시정이 되지 않으면 더욱 강력한 행정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달 교학사를 제외한 7개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들은 교육부가 수정 권고한 65건에 대해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들은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검정을 취소하지 않고 다른 7종의 검정통과 교과서와 한데 묶어 수정지시를 내리면서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21일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심사에 합격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수정·보완 하도록 통보했지만 교학사에 대한 수정 권고 사항은 용어 등에 집중되어 있다.
오는 2017학년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부터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이 되면서 2014학년도 고교 신입생부터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는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해야 하는 학교 현장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경남역사교사모임 회원인 안병갑 교사는 "아직도 교과서들이 수정 중이다. 당장 내년부터 다루어야 할 교과서를 현재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논쟁들이 교사가 역사수업을 하며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국정화 추진 “기억하라 1973”
현 교학사 교과서 옹호 원로학자들 당시 잡지에 국정교과서 채택 비판
‘사학자의 폭넓은 참여에 의한 국사교과서의 단일화로 복잡다기한 주관적 학설을 지향하여 해방 이후 사학계가 쌓아온 역사 연구의 업적과 성과를 보다 체계화하고, 신빙도 높은 풍부한 사료에 입각한 민족사관의 통일과 객관화를 기함.…(중략)…현행 11종의 국사교과서 발행자, 저자들도 지난 3월 유사한 이유로 문교부에 중학교 국사교과서의 단일본 발행을 건의하여 문교부가 동 건의를 수리함으로써 현재 공동 집필의 단일 교과서 발행을 위한 편찬작업이 진행 중임.’
‘대통령 각하’라는 말로 시작되는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방안 보고’라는 16쪽 분량의 청와대 보고 문건이다. 최근 생산된 문서가 아니다. 1973년 6월 19일 한기욱 청와대 보고관이 작성한 문건이다.
이 문서에는 ‘검인정 국사교과서 필자들의 단일본 제작 건의에 따라’, ‘문교부가 동 건의를 수리함으로써’ 국정교과서가 추진되었다고 하면서도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필자들의 반발을 꼽는 모순을 드러냈다.
‘가. 현행 검정교과서 저자 및 발행업자의 반발 예상.(이유는 연간 총계 750만원에 달하는 저자들의 저작 인세 및 출판사의 수입 때문임) 나. 집필진의 선정 및 확보 문제.’
문서에 첨부된 문교부 편수국의 ‘중·고교 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군사작전계획처럼 국정화 발표일(1973년 6월 23일)을 D-day로 설정해놓고 시행일정 계획을 내놓고 있다. D데이 4일 전, 국정화 기획이 결정됨과 동시에 저자 및 발행자 설득작업에 들어간다.
D데이 3일 전인 6월 20일에 집필자를 위촉하며, 이후 9월 30일까지 세 달간 집필한다. 10월 1일부터 5일간 국사편찬위원회가 검토하고, 편찬 심의회(4일간), 원고 수정(19일간) 윤문 감수(15일간)… 등의 절차를 거쳐 바로 다음해부터 국정 국사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당시 저자들 자발적 국정화 건의했나
문교부의 문서에는 당시 11종의 검인정 교과서에 참여한 학계 인사들의 명단과 1년 인세수입 추정 목록이 나와 있다. 저자들은 정말로 자발적으로 단일본, 즉 국정교과서 제작을 건의했을까. 문서에 이름이 언급된 인사들은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부분 타계했다. <주간경향>이 명단을 근거로 추적해보니 생존한 학계 인사는 몇 명 안 되었다.
“국정화 방침이 정해졌다면서, 우리가 갖고 있던 저작권을 뺏어간 것이 아니겠어요.” 문건에 당시 중학교 검인정 국사 저자로 연간 32만원의 인세를 받았던 것으로 되어 있는 박성봉 경북대 초빙교수(84)는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마지막 회의 때 저자들을 문교부 장관실에 불러 ‘국정화하기로 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니 많은 반발이 있었다”며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병도 교수(1989년 타계)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있었는데, 새까만 후배들에게 욕을 먹고 곤혹스러워 하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4~5년 공을 들여 열심히 만들었다. (국정교과서화는)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썩 옳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문교부 입장에서는 일괄해서 하면 잘 될 것 같았을지 모르지만 자유경쟁이 더 바람직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세철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때는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홍익대에서 처음으로 교편을 잡기 1년 전이었는데, 단일본 교과서를 만들자는 건의문에 서명한 기억이 없다”며 “당시 학계 인사들 중 국정으로 하자고 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지금 벌어지는 논란도 자꾸 역사를 가지고 정치화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며 “역사가 자연과학처럼 확정적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데 다양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큰 문제”라고 말했다.
다양성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큰 문제”
지난 1973년 대통령 비서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낸 보고서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 보고’. | 국가기록원
1973년의 국정교과서화 과정에서 벌어진 좌충우돌은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최근 펴낸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책을 읽다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계에서 “국사를 국정교과서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학사 교과서 대표 집필진이 주도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 논쟁과정에서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교학사 교과서 퇴출 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성명에 서명한 학계 원로교수들 중 일부는 1974년 국정교과서 채택 후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는 기고를 당시 계간 <창작과비평> 및 역사교육 잡지에 실었었다.
책에 따르면 창작과비평 1974년 여름호에 실린 국정교과서 비판 특집기획에서 김정배 문화재위원장(전 고려대 총장)이 교과서의 고대사를,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이성무 역사문화연구원 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이 조선 전기 부분을 맡아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글을 썼다. 두 학계 원로 모두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서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현재의 국정교과서 논란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말할까.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이성무 원장은 “국정으로 만든다고 해서 지금의 논란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원래 논란이 되었던 것이 쏙 빠지고 엉뚱한 주제로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서명에 참여했던 것도 전화로 설명을 듣고 이름을 올리는 데 동의한 것이지, 그것과 관련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정배 위원장도 “나 역시 이인호 선생이 나이든 분들이 한 번 더 이야기해주라고 부탁해서 한 것이지, 너무 한쪽으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명에 참여한 한 학계 원로는 “사실 대표주자를 잘못 내세운 것 아니냐”며 “사람들이 안 나서니까 권희영 교수가 대표처럼 되어버렸는데, 논란이 격화되다보니 공안당국이 단죄하는 것처럼 과격하게 발언하니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의 국정교과서화 논란은 1973~74년의 판박이가 될까. 일단 국정교과서화를 주장하는 교학사 측 대표집필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7종 교과서 저자들이 국정교과서화에 동의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전무하다. 앞의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책을 쓴 김한종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밀어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것도 일종의 ‘정치’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렇게 학계에서 반대의견을 내놨어도 유영익 교수를 마치 허를 찌르는 것처럼 기습적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면 이 정권의 성격이 굉장히 직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역사학계가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희 역사학계 이야기이고, 이런 식으로 무시하고 강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김 교수는 현재 교과서 논란과 관련한 ‘도발’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던 금성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대표저자였다. 그는 되물었다. “저쪽의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친북, 반기업, 반미와 같은 이미지를 씌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현대사학회의 심포지엄에서 나온 발표문을 보면 제목에 ‘마르크스 레닌 사관’, ‘김일성주의 사관’ 식의 프레임이 설정되어 있다. 전체를 어느 이념으로 규정하고 몰고 가는 것이 과연 학문적 토론의 자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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