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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0

草霧 2013. 11. 20. 11:55

 

임성한 작가, 왜 비난 여론 들끓을까?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0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11.19

 

 

드라마 [오로라 공주] 출연진. '황당한 설정'에 의해 한 명씩 극에서 하차해 현재는 이들 중 몇 명 남지않은 상태

 

 

[서울톡톡] 최근 임성한 작가의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는 것은 물론, <오로라 공주>의 종영을 요구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진다. 이미 한번 연장됐던 <오로라 공주>가 또다시 50회 연장될 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연장 반대, 조기 종영, 작가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이 폭발한 것이다. 한 드라마와 작가에 대해서 서명운동까지 벌어지는 건 초유의 사태다.

 

임성한 작가는 그 전부터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데뷔작인 <보고 또 보고>에서 당시로서는 희귀했던 겹사돈 설정을 선보였을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이후 <하늘이시여>에선 가사도우미가 갑자기 연탄가스로 사망하더니, 다른 인물은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던 중 웃다가 심장마비로 숨지기까지 했다. 가히 전무후무할 정도로 황당한 설정이어서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아현동 마님>에선 등장인물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암에 걸려 죽고, 그 친모는 죄책감에 자살했다. <왕꽃 선녀님>에선 이미 죽은 등장인물을 다시 살리려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보석 비빔밥>에선 등장인물이 선녀 같다는 말을 듣더니, '선녀면 하늘로 올라가야지'하고는 조금 후에 죽었다. 이외에도 황당하고 자극적인 설정이 연이어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신기생뎐>에선 등장인물의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장면도 있었다.

 

그랬던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오로라 공주>는 시작할 때부터 주목 받았다. '과연 이번엔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를 선보일 것인가?' 이런 기대아닌 기대(?)였는데 역시 임성한 작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희대의 설정' 그 끝을 보여주다

<오로라 공주>는 초반에 4중 겹사돈이란 희대의 설정을 향해 나아갔다. 여주인공의 세 오빠와 남주인공의 세 누나가 모두 커플로 엮일 듯한 조짐이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황당했는데, 작가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여주인공의 세 오빠를 모조리 하차시켜버린 것이다. 오빠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전개였다. 이때부터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등장인물이 황당하게 죽는 전통도 계속 이어졌다.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유체이탈을 하더니 사망했다. 최근엔 여자 악역의 어머니가, 너무나 건강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유체이탈을 하더니 심장마비로 즉사했다. 스트레스로 암에 걸리는 설정도 여전해서, 그렇게 건강하던 두 번째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그리워하다 갑자기 혈액암에 걸렸다.

 

'두 번째 남주인공'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도 <오로라 공주>의 황당한 전개 때문이다. 보통 통상적인 드라마는 남녀주인공이 맺어질 때까지 치밀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잘 구성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필력이다. 그런데 <오로라 공주>는 원래의 남주인공이 드라마 내용 때문에 시청자의 외면을 받자, 새롭게 다른 남자를 주인공처럼 부각시키고 있다. 말 그대로 막 나가는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이야기 전개에 개연성도 없다. 툭하면 꿈이나 예지, 점 등이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극을 진행시킨다. 또, 중요한 국면마다 한 등장인물이 '사이코'가 되어 극의 자극성을 높인다. 처음엔 드라마 PD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오로라를 괴롭히더니, 다음엔 여자 악역이 히스테리를 부리고, 그 다음엔 남주인공의 누나들이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식의 '막무가내 작법'이 지상파 방송국에서 연장 방영까지 되며 대접 받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인물들을 대충 등장시켜놓고 극의 진행이 여의치 않으면 갑자기 멀리 보내거나 숨을 거두게 하고, 인물의 위상이나 성격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비과학적이고 괴상한 설정으로 자극성을 높이는 관행이 정착된다면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 큰 우려는 임성한 작가가 시청률로는 승승장구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상황으로 인한 답답함이 네티즌 서명운동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만들어낸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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