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담당관 | 2013.11.15
중랑역 지하철 역사 안에 자리 잡은 '달팽이 마을'. 느리지만 흔적을 남기는 달팽이처럼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뭉친 공간이다. 공동체라는 개념이 없던 마을에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낸 '달팽이 마을'을 찾아가보았다. |
[서울톡톡] '달팽이 마을' 이경진 대표가 친정이었던 중랑구로 돌아온 건 4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 16년 동안은 보습학원을 운영했다. 그것도 안양 평촌 지역에서 잘 나가던 학원이었다. 딸에게는 '공부 장사'하는 엄마 체면이 있으니 남보다 공부를 더 잘 해야 한다며 다그쳤다. 무조건 하루 수학 문제집을 한 권 이상 풀게 했다.
어느 날, 딸이 고열로 쓰러졌다.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막막했다. 며칠 뒤 딸이 입을 떼며 한 첫 말이 "엄마, 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싫어."였다. 생각이 달라졌다. 그동안 아이들을 '힘으로' 가르쳤다는 걸 깨달았다. 학부모들에게도 더이상 이렇게 가르치면 안 되겠다고 말했다. 학원은 점점 운영이 어려워졌고, 더 못 하겠다 싶어 정리를 했다.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자 싶어 꽃집을 열었지만, 그것도 2년 버티다 다시 접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마을 공동체 사업을 알게 되었다. 바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를 찾아 마을 상담원 자격을 취득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2012년, 인근 거주 다섯 엄마들과 공모 지원을 받아 작은 북 카페를 열었다. 하지만 집에서 너무 멀어 운영에 무리가 왔다. 집 가까이 공간을 찾던 중에 중랑역 구내 점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목이 정말 좋았다. 마침 공매로 올라온 것을 낙찰받았다. 판매 사업자가 아니라면 보증금 없이 월세 30만 원.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그래도 텅 빈 공간을 채우려면 최소의 돈이 필요했다. 다섯 명이 조금씩 출자해서 시설 비용을 마련했다. 거의 모든 일을 직접 했다. 그렇게 올 3월 7일, '달팽이 마을'이 문을 열었다.
막상 오픈을 하니, 걱정이 많았다. 사실 녹록한 동네가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동네가 아니어서인지 사건도 많았다. "마음 편하게 드세요" 했더니 믹스 커피를 가방에 한 움큼 담아가는 아주머니, 만취하여 옷을 하나하나 벗는 아저씨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럴 때마다 잘못 시작한 건가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적극적인 홍보를 벌였다. 마을공동체가 무엇인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공간'이 무엇인지, '주민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 무엇인지 빼곡히 쓴 종이를 통유리 두 벽면 가득 붙였다. 앞으로 진행할 프로그램 설명과 어제의 사건사고 등도 매일매일 바꿔 붙였다. 그렇게 눈길을 끌기 시작하자, 하나 둘 호기심에 들렀다 친구가 되고 주인이 되었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 주려 했다. 일단 과자, 사탕, 고구마 등 먹을 것은 끊이질 않았다. "누가 커피를 죄다 집어 갔냐"라며 사다주는 이웃까지. 친구들은 넉넉한 동네도 아니고 힘들 거라 했는데, 주민들은 그럴수록 더 의지하고 같이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친해지니 한 달에 1만원 씩 납부하는 회원들도 차곡차곡 모였다. 모자람 없이 딱 채워 88명이다.
회원은 중고등학생 엄마가 가장 많다. 아이들이 다 자라 웬만한 앞가림 하니 손 갈 일이 거의 없고, 학원 등을 많이 다니니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이 공간에 와서, 같이 점심 지어 먹는 사람만 매일 10명에서 20명 내외다. 해가 지면 다시 저녁 지으러 갔다가 7시쯤 돌아와 뜨개질과 함께 수다를 떤다. 니트 모자, 가방 등 수공예품 판매도 한다. 매출액의 절반은 만든 이 몫이고, 나머지 반은 재료비와 마을 기금으로 적립한다.
전엔 일일 드라마로 소일했던 시간을 이용하여 적은 돈이지만 생활비도 보태니, '만날 놀러 다닌다' 소리 안 들어 체면이 선다. 밤늦게 학원 마친 아이들이 달팽이 마을에 들러 함께 귀가하는 것도 참 좋다.
매주 화·목요일이면 '화목한 강좌'가 열린다. 동네 주민이 강사가 되고 학생이 되어 생활의 지혜를 나눈다. 강사비는 없지만, 평생 잘 난 거 하나 없다고 생각하던 아줌마들이 물김치 강사가 되고, 하찮은 줄 알았던 바느질 하나로 존경 받는 강사가 된다. 재료비는 무조건 똑같이 내고 음식도 똑같이 나눈다. 엄마는 잔소리꾼에 밥 짓는 사람인 줄로만 알던 딸이 "우리 엄마 달팽이 강사야!" 자랑스러워하고, "우와, 정말?" 친구들 부러움을 산다.
지난 5월 청소년 힐링 캠프로 코스프레 축제도 열었다. 어른들은 멍석만 펴 주었다. 기획, 진행, 홍보 모두 청소년들의 힘으로 해냈다. 처음엔 이 대표도 코스프레를 이해하지 못 했다. 기괴한 옷과 짙은 화장, 컬러 렌즈까지 착용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대체 무슨 짓인지 모르겠고, 듣자 하니 일본 아이들이 하는 걸 따라하는 것 같아 싫었다. 아이들은 바로 그런 선입견을 떨치기 위하여 축제 제안을 했다고 한다. '생각 없는 오타쿠'로 매도당하는 것이 싫어, 알아서 평소 행동을 더 조심한다는 아이들. 화장의 독성에 대해 공부하고, 훗날 의상디자인 전공을 꿈꾸는 아이들도 있었다. "코스프레는 대사가 없는 연극", "비일상적인 의상과 포즈로 우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아이들은 말했다. "무엇보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말에 달팽이 마을 어른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아이들 나름의 힐링 방법이겠거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우선 아이들이 기쁘게 즐겼고, 부모들도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라고 했다. 코스프레 인원만 80명이 넘는 제법 큰 규모였지만 행사 후 휴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 했지만 코스프레를 통하여, 가족의 대화 시간이 길어지고 깊어졌다. 부모와 아이들 사이 소통과 이해를 돕기 위한 모임 '부모 커뮤니티'는 앞으로 더욱 많은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꼬지'라는 이름의 보드 게임 모임도 갖는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방식 그대로 부모들이 배워보는 '역지사지 공부방'은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처음엔 "그래, 까짓 거 내가 배워 직접 가르치겠다"던 부모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제 애들 못 잡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서로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서로를 배운다.
토요일엔 나눔 장터도 열린다. 달팽이 마을이 가장 붐비는 날이다. 학생부터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며 얼굴을 익힌다. 어르신이 오다가다 스마트폰 사용법 물으러 오시고, 비오는 날엔 우산도 빌려준다. 간혹 반납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되려 2~3개 들고 와 가끔 감당이 안 된다.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준다. 육아 품앗이 '느릿느릿 육아 사랑방'은 서울시 사업으로 선정되었다. 그러자 인근 아파트 노인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중랑마을넷 모금으로 냉난방기도 구입했다.
처음엔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다. 특출한 능력도 없고, 지역에 대한 이해도 낮았다. 하지만 '화목한 강좌'를 6개월 넘게 진행해보니 매일매일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났다. 엄마들이 먼저 "우리 이거 해봐요, 뭐 해봐요" 아이디어가 넘친다. 처음엔 평범한 엄마들이 뭘 알겠냐며 얕잡아 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리 엄마들이 더 뛰어나다. 친화력, 이해와 배려심도.
공동체란 연습의 장이라 생각한다. 요즘처럼 남은 중요하지 않고 경쟁만 하고 협력 않는 세상에서 남을 배려하고 같이 살려 노력하는 협력의 장이 공동체라 생각한다. 그런 면이라면 우리는 성공한 것 같다. 무엇보다 입지가 정말 좋다. 역사(驛舍) 안이야말로 마을 공동체 공간으로 최적이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모두가 다닌다. 중랑구 유일의 영유아플라자도 이 길목을 지나야 한다. 그러니 엄마들이 올 수밖에 없다. 전국의 지하철 역사마다 마을공동체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한다.
숙제가 있다. 하나의 푯대가 필요하다. 신앙 공동체에 신앙이 있듯이 마을 공동체도 그런 푯대가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이런 가난한 지역은 경제공동체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형태로 전환되어야 할 중간 과정이다. 그럴 경우 달팽이 마을은 생활 공동체를 유지하고, 경제공동체는 방향성이 일치하는 사람들과 별도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미래는 더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들 걱정처럼 꿈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