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세상 쳐다보기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3) 김종서 집터

草霧 2013. 11. 2. 12:08

 

 

농업박물관 자리에 살았던 그는 누구일까?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3) 김종서 집터

 

시민기자 이승철 | 2013.11.01

 

[서울톡톡] "어머 여기가 김종서 집터네. 가만, 그런데 김종서가 누구였더라?", "김종서라면 세종임금 때 두만강변에 6진을 설치하여 북쪽 국경을 튼튼히 지킨 그 유명한 호랑이 장군이잖아요."

 

 

농업박물관 앞에 위치한 김종성 집터 표지석과 표지석 뒤에 있는 논

 

 

함께 걷던 할머니 두 분이 <조선조 단종 때 좌의정 김종서 집터> 표지석 앞에서 놀란 듯 주고받은 말이다. 햇볕 좋은 가을 어느 날, 노인들 몇 분과 함께 충정로에 있는 '청춘극장'을 찾아가던 길이다. 지하철5호선 서대문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와 앞쪽으로 잠간 걷자 오른편 길가에 농업박물관이 서있다. 그 앞에는 요즘은 시골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목화밭과 함께 누렇게 영글고 있는 벼논, 그리고 허수아비 몇 개가 세워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벼논 옆에는 아담한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고, 연자방아 모형이 눈길을 끈다. 박물관 입구에는 멋진 아치형 조형물과 안쪽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나락뒤주가 지나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었다.

 

 

농업박물관 입구 아치형 조형물(좌)과 나락뒤주(우)

 

 

"김종서는 수양대군이 단종에게서 임금 자리를 빼앗을 때 제일 먼저 제거한 인물이잖아요? 호랑이 같은 장군이라 두려운 인물이었고, 첫 번째 제거 대상이었지요. 훗날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은 성삼문 등 사육신과 함께 단종임금을 섬긴 최고의 충신 중 한 사람이었지요."

 

역시 일행 중의 한 사람인 전직 교사출신의 78세 노인이 자세히 설명을 한다. 김종서는 나이든 노인들도 잘 기억하고 있는 조선 초기 짧고 슬픈 삶을 살다간 단종임금을 지키려다 생을 마친 충신이요, 명재상 중의 한 사람이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수양대군은 어린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을 계략을 세웠다. 그런데 가장 큰 걸림돌로 대두된 인물이 바로 당시 좌의정이던 김종서였다. 수양대군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양정, 유숙을 비롯한 몇 사람의 장사를 거느리고 김종서의 집 앞에서 그를 불러내 급습하여 참살하였다. 계유정난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수양대군에겐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김종서는 1383년(고려 우왕9), 도총제를 지낸 무관 김추의 아들로 태어났다. 23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1433년, 함길도관찰사가 되어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에 출몰하는 여진족들의 침입을 격퇴하고 6진을 개척․설치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확장했다. 1435년,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를 겸직하면서 확장된 영토에 조선인을 정착시켰고, 북방의 경계와 수비를 7년 동안 맡아 국방을 튼튼히 했다.

 

1449년에는 권제 등이 고친 고려사가 잘못되었다하여 세종임금의 명으로 개찬하게 되자 춘추관지사로 총책임자가 되어 1451년에 간행하였다. 그는 문관이었지만 북쪽의 변방을 지키는 장수의 역할은 물론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에도 능력을 발휘했다. 1452년에는 세종실록 편찬의 총재관이 되었으며, 문종 임금 때는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감수하여 간행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젊은 나이로 죽자 영의정 황보인, 우의정 정분과 함께 좌의정으로서 문종의 마지막 유명을 받은 고명대신으로 12세의 어린 단종을 보필하였다. 김종서는 과거시험에서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었지만 대호(大虎)라는 별칭까지 얻은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명신이자 충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1453년 왕위찬탈을 노리던 수양대군(세조)에 의하여 두 아들과 함께 집에서 격살되었다. 더구나 대역모반죄라는 누명까지 쓰고 효시됨으로써 후손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지조와 충성심이 빚은 참으로 억울한 비극이었다. 그의 억울한 누명은 300여년이 지난 1746년(영조 22)에 벗겨져 복관되었다.

 

우리는 흔히 김종서 이름 뒤에 장군이라고 붙여 부른다. 그것은 세종임금의 명으로 북방에서 여진족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한 장군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종서의 삶 전체로 봤을 때 '김종서 장군'이라는 호칭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71세에 수양대군 수하의 철퇴에 맞아 절명할 때까지 50년 가까운 관직생활 중에서 무관직을 맡은 것은 7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종서 집터 표석이 우리 농업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농업박물관과 함께 위치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자료가 될 것이며, 한층 스산해진 가을의 한기와 역사적 쓰라림을 느끼며 잠시 생각에 잠겨봤다.

 

 

이승철 시민기자 이승철 시민기자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