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국민의 의무는 재미다.

‘위장 악행(惡行)’과 ‘위장 선행(善行)’

草霧 2013. 12. 4. 11:49

 

 

 

 

위장 악행(惡行)’위장 선행(善行)’

   

 

지암 이종욱 위장 친일론의 허구성(虛構性)’

 

文史哲(lestofilos@naver.com)

 

조계종 산파지암 스님 (1884~1969) 친일은 위장’?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510194.html

 

친일과 항일에 위장이란 없었다

    

위장 친일(親日)

2007418일자 불교신문에 어현경 기자가 쓴 <이종욱스님 친일은 위장전술>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그리 길지 않은 이 기사가 내 눈길을 끈 것은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난 13일 재단법인 지암불교문화재단이 주최하여 지암 이종욱의 독립운동과 조선불교 조계종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성신여대 이현희 명예교수는 이종욱스님의 친일은 불교계의 책임자로써 교계사업을 달성하기 위함이자 자신의 독립운동을 은폐하려는 위장 전술이라고 피력했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지암스님은 3.1운동 동참을 계기로 항일운동에 나섰으며,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에까지 참여하면서 군자금을 은밀히 모아 송금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내외에서 지암의 지속적인 항일활동은 분명히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평가되어 폄하되지 않아야 한다. 스님의 불가피한 선택적인 친일문제는 맹목적이고 지탄성토를 위한 친일논란이 아닌 불교계를 살리려는 고차원에서 재인식되어야 하는 고민과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현희 교수의 발표논문을 구해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 교수가 지암 이종욱의 행위는 위장 친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대부분 지암 이종욱과 관계가 있던 사람들의 회고 등에 근거한 것이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내용은 거의 없다. 혹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친일 행적에 비해 그야말로 새 발의 피[鳥足之血]’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이해를 위하여 이 교수 논문의 결론 부분을 인용한다.

 

지암은 19372월 총본산 건설운동이 시작되면서 일제 정책에 타율적으로 협력함으로 친일행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지암의 일제 협력은 총본산건설과 관련된 불교계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공공의 현실적인 현명한 선택이었다. 지암의 친일관련 행적은 개인적인 친일이 아니라 교단을 보호하고 교단에서 맡은 직책과 관련된 내용일 뿐이었다. 따라서 지암을 잘 아는 인사들에 의해 그의 친일은 불교계의 책임자로써 교계사업을 달성하기 위함이자 자신의 독립운동을 은폐하려는 위장 전술이었음이 김구 조경한 등 임정을 지키던 독립운동가에 의하여 확인되었다. 지암은 적극 친일을 하는 한편으로도 임정과 계속 연계하면서 군자금을 은밀히 모아 송금하였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러므로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국내외에서 지암의 지속적인 항일운동은 분명히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평가되어 폄하되지 않아야 한다. 그의 불가피한 선택적인 친일문제는 맹목적이고 지탄성토를 위한 친일논란이 아닌 불교계를 살리려는 고차원에서 재인식되어야 하는 고민과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는 90평생 중 30여 년 간 민족독립운동에 심혈을 기울인 뛰어난 애국지사로 우리 사학계는 평가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마치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 16명 중 청오 정춘수(鄭春洙)목사가 친일하였다고 성토하고 있는데 실은 일제 강점 하 감리교 총감독으로 기독교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와도 유사하다고 본다. 그는 국민들에게 공출이나 신사참배는 요구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정부나 사회단체의 책임자 같은 호화로운 벼슬은 하지 않고 오로지 교계를 위하여 목자로서 80 평생을 지낸 경우를 보는 것과도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근대사, 그 중에서도 민족 운동사를 전공했다는 원로 학자가 펼치는 주장치고는 너무 근거가 빈약하고 논리 전개가 유치하다. 이 교수의 주장을 거꾸로 들여다보자. 그의 말대로 혹 지암 이종욱이 군자금을 은밀히 모아 송금했다고 하자. 이것이 언젠가 해방이 되어 독립국가가 서게 될 때에 대비해, 임시정부에 든 보험 성격은 아니었을까? 이 경우는 위장 친일이 아니라 오히려 임시정부에 대한 위장 지원, 위장 선행(善行)’일 수도 있다.

 

잘 알지 않는가? 독재정권 시절, 재벌들이 주로 집권 여당 쪽에 정치 자금을 댔지만 7:3이나 8:2 비율로 야당에도 은밀히정치 자금을 건네 왔다는 것을. 우리가 이런 경우를 보고, “당시의 재벌들이 독재정권에 거액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은 야당에 대한 지원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 전술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혹 그런 주장을 펴는 이들이 있던가?

 

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총본산 건설과 관련된 불교계 과제를 성취하기 위한 공공의 현실적인 현명한 선택이었다고까지 하고, 심지어 친일 행위 때문에 동상 철거 논란이 있는 정춘수 목사를 예로 들며 기독교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와도 유사하다고 한다.

 

이 교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힘들여 역사 연구를 할 필요가 없고 세상에 역사 연구가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그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해주는 만담가나 이야기꾼(story teller)으로 족할 것이다.

 

이 교수의 논문만으로도 어이가 없는데, 동국대 명예교수 김창수씨가 한 논평문 마지막 구절은 더 기가 막히다. “그의 친일 문제가 최근에 와서 논란이 된 것은 역사학자가 아닌 일부 호사가에 의하여 학문적 연구가 아닌 악평으로 친일파로 매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역사학의 이론적 객관적 연구를 통해서만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지암 이종욱의 생애의 궤적은 항일독립운동과 불교 발전으로 일관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이현희 교수의 발표 논문은 지암 이종욱의 참모습을 역사적 연구로 밝힌 우수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보면 김 교수야말로 역사학자가 아니라 호사가가 아닐까?” 의심되고,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역사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제발 객관적 연구를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국 천주교회가 일제 강점 시기에 교단을 살리기 위해서 일제 정책에 적극 협력한 사실을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천주교 쪽에서 자료를 공개하지 않거나 사학계의 협조 요청을 거부하여 그 동안 은폐되어 있던 여러 사실이 밝혀지고,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면서 이제는 천주교단 내에서도 사실(史實)을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참회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교수의 주장을 보면 교단을 살리기 위한 비() 개인적 친일이니 여러 종교계가 협조해서 서로 친일 행적을 덮어주자는 제안으로 여겨진다. 이게 지나친 비약일까?

 

위장 악행(惡行)

현재 KBS 1TV에서 토, 일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연속 사극(史劇) <대조영>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고구려가 망하고,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잡혀가 있던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이 조선왕(朝鮮王)’이라는 허울 좋은 벼슬을 받아 요동성에 와 있을 때의 일이다. 극중에서는 보장왕이 겉으로는 당나라에 협조하는 친당(親唐) 부역배(附逆輩) 민족 반역자이지만, 실제로는 항당(抗唐) 조직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서 이것이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는 설정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이 보장왕이 조카딸 - 극중에서는 숙영낭자 - 을 데리고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백성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희망을 보았다. 백성들에게 저런 기백이 살아 있으면 우리 고구려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현희 교수의 위장 친일론식 표현을 따르면, 보장왕은 위장 친당(親唐)’ 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장 친일이나 위장 친당과 같이 위장 악행을 하는 사람은, 사극 <대조영>속에서 보장왕의 말처럼,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돌팔매질을 당하고 비판과 비난을 당하며 설사 죽음에 이르더라고 그것을 섭섭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희망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귀족 출신의 해군 소장 빌헬름 카나리스(Wilhelm Canaris)를 독일 참모부의 비밀 정보 및 방첩 부서군사 정보국책임자로 임명했다. 카나리스를 의심하는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는 히틀러의 전적인 신임을 받으며 10년이 넘도록 그 중요한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그가 은퇴하고 난 뒤, 그가 써온 일기장이 친위대(SS) 손에 들어가서 그가 군사정보국장이 되면서부터 히틀러에 대한 음모를 꾸몄으며, 결국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암살 음모까지 구상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다가 나치 정권 패망 직전에 처형되었다.

 

카나리스에게는 위장 친 나치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그가 히틀러에 충성하는 듯 행동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히틀러가 정확한 정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정보를 왜곡하여 결국 연합국의 승리를 유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가 나치 친위대에 발각되어 결국 처형되었다는 사실(史實)이 그의 행위가 위장 친 나치이었음을 더 분명하게 해준다.

 

그러나 지암 이종욱에게서는 사극 <대조영> 속의 보장왕이나 나치 정권 당시의 카나리스와 같은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만약 그가 위장 친일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민족해방 이후 그는 일체의 공직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해방이 되자마자 곧바로 독립촉성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으며 출가사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그런데 그가 적극적인 친일 행위를 한 것을 두고 불교계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고 한다면 이것은 당시의 불교계 전체를 반민족 친일 집단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이다. 이런 주장은 불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천주교에서는 차라리 일제 강점기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그들은 노기남 주교나 당시 천주교단의 행위가 위장 친일이었다며 강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이제는 참회를 거론하고 있지 않은가?

 

지암 이종욱 위장 친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국내 최대 폭력 조직을 이끌었던 김태촌과 조양은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출옥할 때마다 이제 반성한다. 참회한다. 참된 신앙인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신앙 간증을 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던 김태촌씨가 얼마 전 무슨 일이 터졌을 때, 카메라 기자에게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이 장면을 잘 찍어 달라했다고 한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신앙 간증까지 다니던 조양은도 다시 문제를 일으켜 사법 처리를 받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진실한 신앙인이 맞는데,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폭력배가 되는 위장 악행을 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악행을 감추기 위해 성경을 읽고, 신앙 간증을 하는 위장 선행(善行)’을 했던 것일까?

 

지암 이종욱이 정말로 위장 친일을 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고, 다만 불교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억지 논리를 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은 자칫 잘못하면, “지암 이종욱은 그의 적극적 친일 행위를 감추기 위해 중국의 임시정부에 자금 지원을 해서 혹 민족해방이 될 경우에 대비한 보험을 드는 비열한 짓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악행이 너무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과 후손들이 받게 될 비판을 염려하여 위장 선행을 하였다라는 역() 주장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암 이종욱은 위장 악행을 한 것인가 위장 선행을 한 것일까? 그 답은 그 자신만 알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