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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창작스튜디오가 지역 주민과 예술로 소통하는 방법, 창동창작스튜디오

草霧 2013. 10. 25. 11:54

 

 

 

누가 낙원에 나무를 심었나

어느 창작스튜디오가 지역 주민과 예술로 소통하는 방법

 

시민기자 이나미 | 2013.10.24

 

 

[서울톡톡] 오후 6시 한 창작스튜디오 앞마당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마련되었다. 스텝들은 건물 안에서 만든 음식을 들고 나와 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따뜻한 정경이지만 장소를 생각하면 낯선 모습이다. 여기는 분명 미술작가 작업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음식을 매개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이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말을 이어갔다.

"자, 여기서 내가 바로 우리 마을 '달변가'다 하시는 분?"

 

 

조리극 난타다이너 말 걸기 이벤트

 

 

간의 의자에서 음식을 먹던 60대 할머니께서 손을 들었다. 마이크를 내밀자,

"창동에서 40년 산 주민 이현주라고 합니다."
"창동이 좋은 이유가 뭔가요?"
"산이 있고, 공기도 좋고, 물건도 저렴해서 살기 좋아요. 이보다 살기 좋은 곳이 없죠."

이들 덕분에 한밤의 창작스튜디오 분위기가 한껏 올랐다. 이때, 갑자기 마당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테도 먹을 것 좀 갖다 줘야지. 이게 다야?"
"엄마, 알아서 갖다 주겠지. 엄만 꼭 사람들 많은 데서 목소리 크더라?"
"다들, 조용히 좀 해!"

마당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이 세 가족들은 유독 목소리가 컸으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몰랐다. 이 가족들의 다툼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전시장 안으로 입장했다. 내부에 있는 두 개 전시장 중 먼저 들어간 한 전시장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하얀 숲'이었다. 시민들이 평소에 작업했던 드로잉 종이들을 모아 전시장에 '드로잉 숲'을 이룬 것이다.

 

 

창동 주민들이 실제 작업한 드로잉 종이들을 모아 숲처럼 공간을 꾸몄다

 

 

"이것 봐! 미술 배워서 이렇게 전시회도 하는데 넌 여태 미술학원 다니면서 뭐했던 거야?"

밖에서 그렇게 티격태격 하던 모녀는 안에서도 더욱 설전을 벌였다. '가서 말려야 하나' 전시를 보던 사람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 바빴다. 이렇게 사람들이 머뭇거릴 때, 스텝은 다음 전시장으로 안내했다. 장소를 옮긴 다음 전시장은 마치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구조였다. 공간 한 가운데에 TV와 소파가 있었고, 벽에는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이 가족은 이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았다.

"당신, 도련님이 돈 빌려달라고 한 거 지금 우리 집 사정도 어렵다고 거절해!"
"내 가족 일에 나서지마, 내가 장모님 일에 당신한테 뭐라 한 적 있어!"

"저기요. 제가 참다못해 말 하는데요. 전시장 와서 뭐하시는 겁니까?"
"뭔데 당신! 왜 남의 대화에 참견이야?"
"창동 주민입니다."

 

 

왼쪽에 앉은 창동 주민은 싸움을 구경하는 중이고, 오른쪽에 앉은 가족들은 주변은 의식 안하고 계속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 사는 세상, 갈등이 있기 마련이니 신경이 쓰였지만 그냥 모른 척 했다. 그러나 전시장에서 어찌 저럴 수 있나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도무지 작품에 몰입이 안됐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그 때, 창작스튜디오 경비아저씨가 '문제의 가족'에게 다가왔다.

"작품에 앉으시면 안 돼요! 여기는 공공장소입니다.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다른 분들 작품 감상하시게 나가서 싸우세요."

 

 

결국 스튜디오 경비원에 의해 퇴장된 가족들

 

 

그렇게 경비원에 이끌려 결국 이들은 밖으로 퇴장되었다. 바로 이때 옆 전시장인 '드로잉 숲'에선 공연을 알리는 드럼소리가 퍼졌다. 아니 이 절묘한 타이밍은 뭐지?

 

 

가족들이 퇴장하자마자 옆 전시장 드로잉 숲에선 공연이 펼쳐졌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퍼포먼스였다. 음식 나눔도, 연극도, 공연까지도. 주민들과 예술가가 어떻게 하면 경계를 허물고, 친숙하게 작업 내용을 전달하고자 폭넓게 접근을 시도한 자리였다. 창동이라는 '낙원'에 주민과 작가가 함께 '문화 나무'를 심는 창작스튜디오에서 펼쳐진 지역연계 결과보고전이었다. 명칭은 '누가 낙원에 나무를 심었나'.

"실제 미술작가들이 자기 작업실을 갖기 어려운데 이 창작스튜디오 혜택 덕분에, 완성도 높은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연극 퍼포먼스가 그 예죠."

이날 연극 퍼포먼스는 이샘, 전보경, 진나래로 이뤄진 그룹 'ETC'가 작업한 '낙원가족서비스'의 한 부분이었다. 이들은 실제로 지난 4개월 동안 창동 일대를 대상으로 하루 6시간 동안 가족대행서비스를 실험하며,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사연을 수집하였다.

ETC의 이샘 작가는 "이 서비스는 가족이라는 형태를 탐구하는 작업이었어요. 실제 가족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족 일원이 되어주는 서비스를 했어요. 그 예로 결혼 압력을 받는 경우, 동반 모임에 홀로 참석해야 하는 의뢰인들의 주문을 수행했어요. 이 작업을 통해 세상은 다양한 이유로 가족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전시장에서 벌어진 이들 다툼은 ETC가 기획한 연극 퍼포먼스였다. 사진 위는 ETC의 전보경, 진나래, 이샘 작가와 아래는 가족 역할을 한 연극배우들

 

 

이들은 이 작업과 고민을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까 구상한 끝에 시도한 것이 연극 퍼포먼스였다. 대사도 실제 의뢰인들의 의견에서 영감을 받아 연극 대사로 녹여낸 것이다. 또 ETC는 전시에서 이 서비스를 작업하며 남긴 사진과 영상작품 10점도 함께 선보인다. 더불어 '드로잉 숲'과 주민들이 버린 폐목재로 제작한 나무 조형물 'Reverse-Rebirth project(한석현, 유병서, 김누리 작)'도 만나 볼 수 있는 이 보고전은 창동창작스튜디오(www.artstudio.or.kr, 02-995-0995, 무료)에서 오는 11월 1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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