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문전박대 당했던 부산국제영화제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5
[서울톡톡] 부산국제영화제가 벌써 18회를 맞이했다. 1996년에 시작했을 때는 31개국 169편의 영화를 선보였지만 올해는 70개국 301편이었다. 양적으로 두 배 정도 성장한 것이다. 개막식 사회의 경우 작년엔 안성기와 중국의 탕웨이, 올해엔 강수연과 홍콩의 곽부성이었다. 국제적으로 구성된 사회자들만 봐도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행사라는 점이 드러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찬사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자화자찬이 아니다. 영국의 BBC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화제'라고 보도한 바 있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산국제영화를 일컬어 '아시아의 칸영화제'라고 한 바 있다. 모리츠 데 하델른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부산영화제는 모든 아시아 영화인들의 축제'라고 말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개막작으로 <바라:축복>이라는 부탄 감독의 작품을 선정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처음에 일본이나 중국의 작품들이 부각됐었다. 그 이후 이란이나 태국 영화들이 주목 받기도 했는데 이번에 생소한 부탄 감독의 작품까지 개막작이 됐다는 것은, 그만큼 아시아를 대표하는 범아시아적 행사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지금이야 이렇게 국제적 행사로 컸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준비할 때는 출품작을 구하지 못해 악전고투해야 했다. 국제적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이 낮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한국을 알아도 88올림픽을 통해서 서울 정도만 알았지 부산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생소한 곳에서 영화제를 하겠다며 해외 영화인들을 접촉하니, 아예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유럽 영화를 취급하는 에이전트 중에 부산국제영화제 측을 만나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온갖 인맥과 각국 문화원, 대사관 등을 통해 겨우 출품작을 구하고 영화인들을 초청했다.
<꽃잎>의 필름은 거꾸로 돌고, 극장에선 쥐가... 그래서 일단 막은 올렸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지금이야 세계적인 시설을 갖췄지만 당시만 해도 지방영화관의 상황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현지 극장 관계자들에게 영화제에 대한 열정도 없었다. 아직 영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지방극장은 에로와 폭력 영화 정도로 장사하던 시절이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사고가 잇따랐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은 필름이 거꾸로 돌아갔고, 자막과 영화가 따로 노는 경우도 있었다.
사고 중에서 압권은 쥐사건이다. 베를린영화제 포럼집행위원장인 울리히 그레고르가 상영관 안에서 쥐한테 물렸다. 극장 내부가 깨끗하지 않다보니 쥐가 상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제 집행부는 고민 끝에 극장 안에 고양이를 풀었다. 그랬더니 쥐는 사라졌는데 이번엔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운영요원들이 고양이를 잡으려 다녀야 했다.
시설이 열악하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야외상영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그게 오히려 부산국제영화제를 상징하는 이벤트로 사랑받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부산에 온 사람들은 그런 열악한 시설과 상관없이 이 영화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여기엔 젊은이들의 열정과 항구도시의 낭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영화제가 없다고 한다. 남포동에 가득 찬 인파는 거대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냈다. 일렬로 늘어선 포장마차를 중심으로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은 이국적인 낭만을 느끼게 했다. 바로 이런 열기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에 매혹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는 막연히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아시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전략적인 접근을 했다. 그렇게 아시아 영화를 망라하자 해외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로 통하는 창구로 인식하게 됐는데, 마침 그때부터 아시아 영화와 한국 영화에 대해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도 함께 성장했던 것이다. 물론 칸영화제 수준까지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그런 날도 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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