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霧의 세상구경을 시작합니다./정리는 청소이다.

감자탕

草霧 2013. 9. 13. 11:41

 

 

 

 

세계 속 서울의 맛




감자탕만큼 푸짐한 음식이 또 있을까? 매콤하고 진한 국물에 부드러운 돼지 등뼈 살을 발라 한입 가득 넣으면 세상을 다가진 듯 행복함이 느껴진다. 소주 한잔과 함께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감자탕은 그렇게 팍팍한 서울살이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달래주던 고마운 음식이었다.
글_박미지(객원기자)
사진_박성일 참고_서울을 먹다(황교익, 정은숙 저 / 따비 2013)
세계 속 서울의 맛
커다란 돼지등뼈로 솥단지를 채우고 모자란 영양은 감자와 시래기, 깻잎 등을 쌓아 올려 깊고 진한 국물을 우려 보충하는 음식, 바로 감자탕이다. 푹 삶아 후루룩 떨어지는 살코기는 기본, 뼈 구석구석 박힌 속살까지 빼먹는 재미가 있다. 감자탕이란 단순한 이름이지만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감자가 있어 감자탕? 감자뼈라 감자탕?
감자탕
음식의 이름은 주요 재료와 조리법에서 따와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감자탕의 유래도 감자를 넣어 만든 데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감자는 감자탕의 주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그도 정답이 아니다. 주재료를 따져 정확하게 말하면 ‘돼지등뼈감자우거지탕’이라고 해야 맞는 것.
다음으로는 감자탕에 들어가는 돼지등뼈를 감자뼈로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정육점에 가면 돼지 등뼈를 ‘감자뼈’로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감자뼈라는 부위는 없으며, 감자탕이 유행하면서 가게 주인들이 ‘감자탕용 돼지뼈’니 ‘돼지 등뼈’니 하는 식으로 표시하는 것보다 ‘감자탕뼈’, 나아가 ‘감자뼈’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다 판단해 그렇게 쓰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감자가 유명해 강원도에서 유래한 음식이라는 설도 있다. 강원도가 감자 생산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돼지를 특별히 많이 키웠다는 자료가 없어 이 역시 신빙성 있는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감자탕’ 어원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지만 서민의 애환을 담은 음식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푸짐하고 진한 한국의 맛
감자탕
사실 감자탕은 노동자를 위한 음식으로서, 전라도의 조리법을 응용하여 인천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자탕을 서울 음식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집단으로 모였던 곳이 서울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농촌을 떠나 서울로 와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이들에게 돼지 등뼈와 감자는 훌륭한 안주가 되었고 끼니가 되었다.
지금은 우후죽순 생겨난 프랜차이즈 감자탕 집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서울 곳곳에는 작고 오래된 감자탕 집들이 모여 있는 감자탕 거리가 몇 군데 있다. 지금은 재개발의 여파로 사라진 영등포 감자탕 골목이 있었고, 동대문 해장국 골목, 응암동 감자국 거리는 지금도 감자탕으로 유명하다.
돈암동에는 무려 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감자탕 집이 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이어온 식당이 있다는 사실이 감자탕이 그만큼 오래된 서울 음식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충분히 핏물을 빼준 돼지 등뼈는 불 위에서 3시간 정도 삶아 충분히 식혀서 사용해야 잡냄새를 없앨 수 있다. 육수는 하루 24시간 따로 끓여 구수함을 더해준다. 식혀둔 돼지 등뼈와 삶은 감자, 향긋한 깻잎을 듬뿍 올려준 뒤, 그 위에 불려둔 당면 넣고 얼큰한 국물 맛의 절대불변 비법 양념장에, 고소함 더해 줄 들깨가루, 떡과 수제비 넣고, 하루 종일 끓인 육수까지 부어주면 진하고 깊은 맛의 감자탕이 완성된다.
감자탕
완성된 감자탕은 입맛에 맞게 불을 조절해가며 직접 끓여 먹고, 국물이 자작하게 남아 있을 때 신김치와 참기름 등을 넣어 볶음밥까지 먹어야 감자탕을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먹을수록 당기는 감칠맛과 푸짐함이 감자탕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오랜 세월 변함없는 정성과 저렴한 가격이 지금껏 많은 이들이 감자탕 집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