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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24)나무이야기5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

草霧 2013. 8. 29. 10:37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24)나무이야기5

시민기자 이승철 | 2013.08.28

[서울톡톡] "저 예쁜 꽃나무는 지난달부터 꽃을 피웠는데 아직도 피어 있네."
"참 곱구먼, 이름이 아마 목백일홍일 걸, 100일 동안이나 꽃을 피운다는 꽃나무 말이야"

공원길을 걷던 50대 부부가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다. 지난 주말 강북구에 있는 북서울 꿈의 숲 안에 있는 '창녕위궁재사' 앞이었다. 담장 밖에는 몇 그루의 그리 크지 않은 나무들이 곱고 예쁜 빨간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줄기가 유난히 매끄러워 보이는 나무들이다.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창녕위궁재사는 조선 제23대 순조임금의 둘째 딸 복온공주(1818~1832)와 부마 창녕위 김병주(1819~1853)의 재사(齋舍)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전통 한식 건축 양식의 단층 목조 기와집으로 높은 장대석 기단으로 둘러싸여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한 한일강제합병 후 김병주의 손자 김석진(1847~1910)이 일본의 남작작위를 거절하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순국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사랑채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왼쪽의 재사는 1800년대에 지은 건물이다, 정면의 안채는 8·15광복 후 개축하였다가 6·25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이후 재건축한 것이다. 담장 밖에서 피어난 꽃들도 순국의 핏빛처럼 붉었다.

고운 꽃을 피워낸 나무들은 7월부터 9월까지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다. 줄기를 덮은 나무껍질은 연한 갈색이지만 매우 얇아서 조각으로 떨어져 버리고 매끄러운 줄기만 남는 특성이 있다. 작은 가지는 네모지고 털이 없다. 잎은 타원형으로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모습으로 마주난다. 겉면은 윤이 나고 뒷면은 잎맥에 털이 나며 가장자리는 밋밋한 형태다.

꽃은 암수 양성화로 붉은 색이나 분홍색이지만 흰색 꽃도 피워낸다. 하얀색 꽃나무는 흰배롱나무라고 불린다. 꽃은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길이는 10~20센티미터 정도, 지름은 3~4센티미터로 꽃잎은 꽃받침과 함께 6개로 갈라지고 주름이 많다. 수술은 30~40개로 가장자리의 6개는 길고 암술은 1개다.

배롱나무는 옛날에 양반집 안뜰에는 심을 수 없는 나무였다. 줄기가 껍질이 없어 매끄러운 모습이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찰의 경내나 선비들이 기거하는 사랑채의 앞마당에는 많이 심었다. 배롱나무가 껍질을 다 벗어 버린 매끄러운 모습이듯 승려들 또한 세속을 벗어버리고, 선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덕목인 청렴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붉은 배롱나무꽃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바닷가 어촌에 머리가 세 개나 달린 이무기가 자주 출몰했다. 이무기는 신통력이 있어 바람이나 풍랑을 일으켜 어선을 침몰시키는 등 행패를 부렸다. 어부들은 이무기의 노여움을 달래주기 위해 매년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어느 해에 한 장사가 나타나 이무기를 없애겠다고 나섰다. 장사는 제물로 바쳐진 처녀를 대신하여 그녀의 옷을 갈아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를 기다렸다. 장사는 깊은 밤 이무기가 나타나자 숨겨가지고 있던 칼로 이무기의 머리 두개를 베어버렸다. 놀란 이무기는 머리 한 개를 달고 달아났다.

죽음에서 살아난 처녀는 기뻐하며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죽을 때까지 당신을 모시겠습니다."하고 장사에게 감사했다. 그러자 장사는 "아직은 이르오. 아직 이무기의 남아 있는 머리 한 개를 마저 더 베어야 하오. 내가 성공하면 흰 깃발을 달고, 내가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달고 돌아올 것이니 그리 아시오."하고 배를 타고 이무기를 뒤쫓아 갔다.

처녀는 장사가 이무기의 남은 목을 베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백일동안 정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백일 후 저 멀리 장사가 타고 갔던 배가 돌아오는 것을 보니 붉은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크게 낙심하여 그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붉은 깃발은 이무기의 남은 머리를 벨 때 붉은 피가 튀어 깃발을 물들인 것이었다. 장사는 죽은 처녀를 정성스레 장사지내 주었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 붉은 꽃이 피는 나무가 자라났는데 그 나무가 바로 배롱나무라고 한다.

낙엽소교목인 배롱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곧게 자라기보다 구불구불 자라는 편이다. 키는 5~6미터 정도까지 자란다. 꽃말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 함이고 목백일홍, 자미화, 간지럼 나무, 백일홍낭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재질이 강하고 튼튼하여 공예용 목재로 귀하게 쓰이며, 꽃과 뿌리를 생리불순 등 여성 질환에 약용으로도 사용한다.

이승철 시민기자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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