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이 세상을 훔쳐본다./남겨둔 떡

논골신용협동조합

草霧 2013. 7. 29. 11:25

 

협동조합, 철거민들에게 희망을 주다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 ⑮ 논골신용협동조합

 

시민기자 이현정 | 2013.07.26

 

[서울톡톡] 신용협동조합을 두고 서민금융의 파수꾼,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돕는 경제공동체라 한다. 건강한 협동조합의 든든한 맏형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또 한편으로 제2금융권이란 용어에 발이 묶인 채 서민금융으로서의 위상조차 흔들리고 있다. 협동조합의 시대, 논골신용협동조합을 통해 신용협동조합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보았다.

 

협동조합, 철거민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다

1993년부터 금호동과 행당동 지역에 본격적으로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주민들이 세입자 대책위원회를 만들면서 철거 투쟁이 시작되었다.

 

"산동네 살면 집주인이든, 세입자이든 모두 가난해요. 그런데 재개발이 시작되면 집값이 막 오르거든요, 갑자기 100원 하던 게 1,000원하고 2,000원하니까 집주인들이 붕 떠가지고 재개발을 찬성하는 거죠. 하지만 재개발이 돼도 아파트에 들어가기 힘듭니다. 토지나 건물의 감정평가가 분양가에 훨씬 못 미치거든요. 나머지 차액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걸 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사실 없어요. 대부분 소득이 일정치 않은 건설 노동자들이기 때문이죠. 원주민이 재정착하는 경우가 10퍼센트도 안 되는 이유가 그거예요. 그래서 그런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을 시작한 거죠."

 

 

논골신용협동조합의 유영우 이사장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당시 이들에겐 철거 문제와 함께 그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도 컸다. '어찌어찌해서 주거 문제가 잘 해결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남을 텐데,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깊어만 갔다.

 

"1993년에 누가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라는 책을 줬어요. 그 책을 읽고 나서 깜짝 놀랐죠. '이런 세상도 있구나'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이런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마침 또 그걸 벤치마킹할 곳이 있었어요. 경기도 시흥의 보금자리요. 철거민들이 이주해 가서 협동공동체 운동을 한 것이니까, 그곳이 선배인거죠. 그래서 낮에는 철거 투쟁, 밤에는 주민들과 공부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스스로 우리 삶을 바꾸자, 삶의 질을 높이자, 외부의 그 어떤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테니 우리끼리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보자'하는 마음으로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해를 준비한 끝에 1995년에 '금호, 행당, 하왕 지역 주민협동공동체 실현을 위한 기획단'을 꾸렸다. 경제협동공동체, 생산자협동공동체, 소비자생활협동공동체, 사회복지공동체까지 네 개의 분과를 두고 본격적인 협동조합 준비에 들어갔다. 이때 꾸려진 경제협동공동체 분과에서 나온 것이 바로 논골신협이다.

 

당시 담보로 내세울 부동산이나 재산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행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급하게 목돈이 필요할 땐 고리사채를 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었다.

 

"고리대금 쓰고 소득이 적으니 목돈 필요할 때마다 곤란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럼 차라리 '우리가 스스로 돈을 모아서 필요할 때 서로 꿔주자'라고 생각한 것이, 마침 신협이라는 것이 있으니 설립해보자 했던 거죠."

 

 

다행히 철거투쟁도 1995년 10월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임시 거주시설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거주시설 안에는 주민회관, 공부방, 독서실, 탁아방, 어린이 놀이터, 공동작업장이 만들어져 어려움 없이 협동공동체를 꾸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협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최소 3억 원의 출자금을 모아야 했다. 각 마을마다 출자위원을 뽑아 주민들 스스로 1,000원, 2,000원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철거민들은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듯 각자 수기 통장에 출자금을 차곡차곡 적어나갔다. 3년 동안 모아 조합원 300명, 3억의 출자금으로 신용협동조합법상 인가 조건을 갖추고, 마침내 1997년 11월 28일에 정식 인가를 받아 신협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신협

"이건 우리 것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의 것이고, 주민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늘 갖고 있었어요.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함께하자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역사회와 함께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자'하는 그런 목표가 있었습니다."

 

지역 내에 열다섯 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본격적인 신협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논골신협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인가를 받자마자 곧바로 IMF가 터진 것이다.

 

"신협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되었던 신협들이 청산되거나 통폐합되면서 당시에 대략 1,500곳이 500곳으로 줄었죠. 경기도 안 좋은데다가 인가를 받자마자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연일 그런 얘기만 들리니 힘들었죠. 게다가 저희를 더욱 어렵게 했던 건 저희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었어요. '열심히 철거 투쟁을 하던 빨갱이 같은 놈들이 은행 같은 걸 만들어서 사무실을 냈다는데, 조합원으로 가입해야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다니 저걸 믿을 수 있냐'이런 거죠. 이상한 루머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그야말로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더욱 열심히 다가가는 활동을 했다고 한다. 조합원 행사도 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나들이도 하고, 단오한마당 같은 화합의 자리도 만들고, 그렇게 지역과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갔다.

 

 

특히나 경영 전반을 투명하게 공개하다보니, 매년 조합원 총회에 참여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신뢰가 쌓이고 주변으로 확산되어 이젠 제법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 지난 2007년에는 지금의 3층 건물을 구입해 이사도 했다. 논골신협은 현재 조합원 4,000명에 250억 자산의 튼실한 신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신협의 정체성 찾기

신용협동조합은 여느 협동조합과 같이 공동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협동조합이다. 같은 지역 사람들끼리, 혹은 같은 직장 동료들끼리, 같은 종교의 신도들끼리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서로의 은행을 만든 것이다. 목돈이 필요할 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빌려주고, 적정한 이자를 성실하게 갚아나가고, 또 다시 목돈이 필요한 다른 이웃을 도우면서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금융협동조합인 것이다.

 

담보가 없는 조합원들에게 신용으로 금융을 제공하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처럼 사회적경제영역 안에 있는 이들을 지원하는 것은 신협 본연의 임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IMF 이후 부실 신협들이 공적 자금을 지원받게 되고, 그로 인해 금융 규제가 이어지며 현재 신협 본연의 역할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신협이 시스템상 자체적으로 신용대출을 할 수 없어요. 90퍼센트 가까이가 담보대출입니다. 신용 등급이 높은 사람들은 제1금융권으로 가고, 신협에 오는 사람들은 신용 등급이 굉장히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신협은 주로 서민 금융 역할을 해야 하는데,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으면 항상 대출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이죠."

 

문제는 담보로 내세울 자산이 없는 서민들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은 결국 카드론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퍼주기식 정책으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서민 금융을 위한 기금을 만들어서 대출해주되 철저하게 관리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출해주고 계속 모니터링을 하는 거죠. 저희도 자체적으로 가정살림 지원센터를 만들어 경제 교육, 재무 상담, 재무 설계 같은 걸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빚은 많고 갚을 능력은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가정경제의 재무 설계를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정말 슬기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하는 게 신협의 정체성에 맡는 역할입니다."

 

신협 초기에 매일 1,000원, 2,000원씩 모아 출자금을 마련하던 철거민들 중에는 이미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이들도 제법 된다고 한다. 논골신협은 당시의 경험을 살려 서민금융의 파수꾼으로 다시금 우뚝 설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현재 일반법인한테 대출을 못해요. 어떠한 경우든 담보 물건이 없으면 대출은 불가능해요. 협동조합도 같은 협동조합끼리 연대하면서 출자도 하고 금융 지원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여러 규제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최근 신협도 서민금융협동조합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며 본연의 방식에 따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 4월엔 서울시와 사회적 경제조직에 대한 융자·홍보·교육 활성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상호 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도 많은 단위의 신협에서 나서고 있진 않지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서울시와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상호협약도 맺고, 협동조합들과 함께 가야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죠. 신협 중앙회에 전담부서도 만들고, 하지만 아직은 법과 제도적으로 걸리는 것도 많고 당장 협동하고 연대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협동조합의 시대, 신협도 협동조합의 맏형으로 새내기 협동조합을 끌어주고 지원해주는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고 충실히 수행하리라 기대한다.

■ 논골신용협동조합
 설립연도 : 1997년 11월 28일(조합인가일)
 조합원수 : 3,924명(5월 27일 현재)
 총자산 : 254억여원(5월 24일 현재)
 이용방법 : 성동구 내에 거주,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으로서 1구좌 이상(1만 원 이상)의
                출자금을 납입한 주민
 문의 : 2294-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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