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이 세상을 훔쳐본다./남겨둔 떡

시민과 배우가 함께 떠나는 연극여행

草霧 2013. 10. 1. 12:58

 

 

 

시민과 배우가 함께 떠나는 연극여행
서울시 ‘시민문화 연극교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축제에서 비극을 상연했습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고통스러운 주제를 꺼내고, 자기반성을 하며,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한 셈이죠. 고통스럽더라도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그 기억을 공유하지 않으면 진정한 공동체의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본 겁니다. 예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인류의 기억에 대한 공유 아닐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기억을 공유해야 할까요?”

9월의 어느 평일 저녁 시간,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다소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수강생이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비친 고대 그리스 극장에 시선을 고정 중이다. 서울시 ‘시민문화 연극교실’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강좌의 제목은 「시민과 배우가 함께 하는 연극의 탄생」이다. 이날은 고대 그리스의 연극작품들이 소개됐다. <오이디푸스>, <오레스테스 3부작>, <구름> 등이 ‘시민문화 연극교실’ 전체 책임강사인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의 입담과 함께 오늘의 이야기로 풀어진다. 여느 대학의 재미있는 교양수업 같은 분위기다.
시민문화 연극교실
  • 시민문화 연극교실

    올해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시범운영 중인 ‘시민문화 연극교실’은 서울시민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연극 활동 프로그램이다. 전문 연극인들 20명이 강사로 나서 연극 문화교실을 운영하면서 시민에게는 연극을 통한 창조적 예술 활동 기회를, 연극인에게는 일자리 창출 기회를 제공한다. 저녁 수업인 「시민과 배우가 함께 하는 연극의 탄생」 외에 오전 강좌인 「연극 활동가 워크숍」과 오후 강좌인 「나를 찾아가는 연극여행」 등이 ‘시민문화 연극교실’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다. ‘연극 활동가 워크숍’은 윤정환, 장우재, 남동훈, 이동선 연출가가 대표 강사로 참여해 지역문화시설 관계자 30여 명에게 연극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를 찾아가는 연극여행’은 30대 이상 주부 20명을 대상으로 연출가 노지향이 담당한다.

    이날 참관한 「시민과 배우가 함께 하는 연극의 탄생」수업은 강의 말고도 다양한 형식을 빌려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강의가 끝나자 배우 2명이 유명 희곡의 주요 장면을 연기한 후 시민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연말에 있을 시민들의 장면발표를 위해 강사들은 별도로 시간을 내 조별 연기지도도 한다. 김석만 교수는 “노출이 안 돼 그렇지 자기를 발견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시민들의 욕구가 무르익었다고 봤다”면서 “시민들이 내 안의 나, 내 안의 예술을 발견하는 것과 더불어 서울시 차원에서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는 점에 착안해 연극 교실을 준비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열기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전문 연극인이 아닌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하는 수업인 만큼 강사진에게도 특별한 자극이 되는 모양이다. 이날 연출가 이범과 함께 <구름>의 마지막 장면 시연을 맡은 배우 도영희는 “대개 시민이나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연극수업을 하면 교육 중심으로 가거나 작품 중심으로 가는데, 여기는 강의도 하고 장면 시범도 보인 후 시민들이 따로 강사와 만나 12시간 정도 개별지도를 받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베테랑 배우에게도 시연은 적잖은 부담이다. 도영희 씨는 “약식이라도 시범을 보인다는 건 어렵다”면서 “연극에 관심 있어서 오신 분들인데다 현장 연극인들도 있고 하니 신경 쓰인다.”고 토로했다.

    이날 참관한 「시민과 배우가 함께 하는 연극의 탄생」수업은 강의 말고도 다양한 형식을 빌려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강의가 끝나자 배우 2명이 유명 희곡의 주요 장면을 연기한 후 시민들과 함께 토론을 벌이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연말에 있을 시민들의 장면발표를 위해 강사들은 별도로 시간을 내 조별 연기지도도 한다. 김석만 교수는 “노출이 안 돼 그렇지 자기를 발견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시민들의 욕구가 무르익었다고 봤다”면서 “시민들이 내 안의 나, 내 안의 예술을 발견하는 것과 더불어 서울시 차원에서 예술가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는 점에 착안해 연극 교실을 준비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열기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시민문화 연극교실

    시민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50대 강은경 씨는 직장 내 연극 동아리 담당 선생님의 소개로 수업에 참여하게 된 경우라고 했다. 20대에 연극을 많이 봤었다는 강은경 씨에게 자녀도 있고, 직장도 있는데 저녁시간을 내기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제는 하고 싶은 건 하며 자신을 찾아서 살고 싶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강은경씨는 이번에 제비뽑기를 통해 <인형의 집>의 장면 발표에 참여하게 됐다. 주인공인 노라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더니 “제발 됐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식료품 납품을 하는 자영업자 유철수 씨는 평소에도 문화강좌를 많이 검색해 듣는 편이다. 서울시 홈페이지에도 자주 들어간다. “교육 프로그램이 항상 있으니까 기회가 있으면 챙겨보려 하는 편”이라는 유철수 씨는 ‘시민문화 연극교실’ 정보를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됐다고 전했다. “연극은 옛날부터 조금은 관심 있었는데 자주 보지는 못했다. 연극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하고 싶어서 수업을 신청하게 됐다.” 문화강좌 마니아답게 이번 수업에 대한 평도 서슴지 않고 내놨다. “이 수업은 상당히 수준이 높다. 정규 강의 10회를 포함해 적어도 12번 정도는 만나니까. 일단 지역 문화센터에서 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수준 있다.” 유철수 씨는 연말에 <코카서스의 백묵원>에 출연할 예정이다.

    시민문화 연극교실

    이날 수업에서 소개된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처럼 시민들은 ‘나를 찾아나서는 여행’을 오는 11월말까지 지속하게 된다. 현장 예술인인 강사들은 학기말 연기 발표 때까지 계속해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연극 여행의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낼 예정이다. 시민과 배우가 동행하는 연극여행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연극이 ‘탄생’하게끔 하며, 나아가 연극이라는 기초예술에 대한 사회전반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까지 기여하길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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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뉴스토마토 공연예술 담당 기자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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