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옷감 생산이 국정 과제?
누에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터
[서울톡톡]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베 · 모시 · 명주 · 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과정을 일컫는 길쌈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적으로 장려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길쌈의 행위 중 양잠을 하여 비단 옷감을 짜는 것은 국정의 중요한 과제였기에 궁중에서는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고 잠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親蠶禮)가 행해졌다. 조선시대에는 농업과 잠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농업을 주관하는 신은 동대문구 제기동의 선농단(先農壇)에서, 잠업을 주관하는 신은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先蠶壇)에서 국가 주도로 매년 제사를 지냈다. 선잠(先蠶)은 최초로 누에치는 법과 실 잣는 법을 인간에게 알리고, 의복에 비단실을 사용하도록 가르쳤다는 중국 고대 3황 5제의 한 사람인 황제의 황후 서릉(西陵)씨를 지칭하며, 선잠단은 서릉씨를 누에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선잠의 의례는 중국의 옛 제도를 본받아 고려 초에 시작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이어져 선잠단은 성종 4년(1473) 혜화문 밖 현재 성북구 성북동에 처음 쌓았다. 단은 사직단과 같은 방법으로 쌓아 서릉씨의 신위를 모셨으며, 단의 남쪽에는 한 단 낮은 댓돌을 두었으며, 그 앞쪽 끝에 상징적으로 뽕나무를 심었다. 제사 일자는 절기의 이름과 늦음에 따라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매년 늦은 봄(음력 3월) 길한 사일(巳日 : 뱀날)에 선잠단에서 풍악을 올리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비고>에 소개되어 있다. 국가적인 행사이기에 이날만큼은 조정에서 대신을 보내 제반 준비와 절차를 감독하였다.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은 5일 전부터 몸을 깨끗이 하고 술을 삼가며 음식을 가려서 먹고, 사람들이 꺼리는 곳을 피하고 더럽고 악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 등 신변 관리를 엄격히 하였다. 선잠단 제사는 나라에서 지내는 보통 제사인 중사(中祀)에 속하며 조선 500년간 유지되다가 대한제국 융희 2년(1908) 7월 선잠단의 신위가 선농단과 함께 사직단으로 옮겨 배향되면서 제사가 중지되었고, 금세 터는 폐허화되었으며, 지금은 큰 길과 집들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터전에 '선잠단지'라 새긴 표석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모든 나라의 통치와 제도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의 주례(周禮 : 주나라의 예법)를 보면 상고(上古) 때부터 누에치기, 즉 양잠(養蠶)은 왕후가 주관하는 국가적 제사에 의해 장려되었다. 맹자도 양잠의 중요성을 일찍이 강조하였는데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서 잠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세종은 양잠을 크게 장려하여 각 도마다 적당한 곳을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강력하게 지시하였고,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누에실이 생산되면 국가에서 엄밀하게 심사하는 것을 제도로 삼았다. 성종 8년(1477)에는 창덕궁 후원에 채상단(採桑壇)을 신축하여 왕비의 친잠례를 거행하였고, 매년 3월 선잠단에 관리를 보내 제향의식을 행하여 왔다. 중종 원년(1506)에는 각 도의 잠실을 서울 근교로 집결하도록 하였다. 대한제국 말까지 이 지역에는 수령 3~400년 된 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지만 도시개발로 거의 다 베어 없어지고 현존하는 것으로는 서초구 잠원동에 서울시 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된 잠실리 뽕나무가 있다(현재 이곳에는 대한잠사회에서 주변에 뽕나무 3주를 심어 함께 관리하고 있다). 서울 남산의 서쪽 끝이 누에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잠두봉(蠶頭峰)이라 이름하고 뽕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이는 국가적으로 양잠을 장려하기 위한 시책의 일환이었다. 누에를 키우고 종자를 나누어 주던 곳을 잠실(蠶室)이라 하였는데, 항상 신성하고 정숙한 곳으로 유지가 되었다. 방아를 찧어서 소리를 낸다거나 큰 소리로 웃고 우는 행위를 일절 못하게 하였고, 음탕한 대화나 풍기문란은 철저히 차단하였으며, 심지어는 산모의 출입도 금지되는 등 특별한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현재 서초구 잠원동과 송파구 잠실동이 그런 잠실이 있었던 지역이다. 잠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민간에서도 행해졌다. 마을에 따라서는 풍년제나 동제 때에 부제(副祭)로서 선잠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사제(司祭)는 제삿날이 정해지면 보름동안 외출을 금했으며, 마을에서 가장 누에를 잘 치는 할머니가 맡기도 하였다. 경조사의 행렬이 사제의 집 앞을 지나면 안 될 정도로 제사를 신성시했다. 성북구 선잠로 1(성북동 64-1)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 8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신성한 곳임을 상징하는 홍살문이 있고, 문을 지나면 요새 도심에서 보기 힘든 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성북문화원 버스 정류장에서 1111, 2112번(지선) 버스와 성북 03번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초등학교 앞에서 하차하여 도보 2분 거리이다.
■ 선잠단지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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