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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김재현 기관사의 회중시계 , 전쟁기념관

草霧 2013. 6. 1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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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김재현 기관사의 회중시계

‘호국보훈의 달’ 시리즈 3- 숨 쉬는 유물, 말문을 열다(2)

 

전쟁기념관 | 2013.06.13

 

 

 

[서울톡톡] '호국보훈의 달'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에 이어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유물에 얽힌 사연입니다. 이번엔 '김재현 기관사의 회중시계'에 얽힌 사연입니다. '

 

영동의 사단지휘소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관차를 대전역으로 올려 보내어 그곳에 대기 중인 화물차를 영동으로 회송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전역구내 10여 대의 화물차에 탄약과 보급품이 만재된 채 남아 있었으나, 그것을 끌어갈 기관차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전기관사무소 소속의 기관사들이 잠시 침묵합니다.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이 틀림없었습니다. 대전 시내에는 저격병들이 돌아다니고 철수하는 차량에 기관총을 쏘아댄다 하였습니다. 온통 눈에 보이는 것이 짙은 연기이고, 들리는 것은 총 포성뿐이라 하였던 그곳.

 

째깍째깍. 나 혼자 주책맞은 모양으로 초침을 보내고 또 다시 맞는 모양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28살의 김재현 기관사가 의연하게 손을 들었습니다. '전쟁이 기어이 벌어졌다 해도 그래도 설마 서울이야'했는데, 이제 인민군에게 임시 수도인 대전 또한 내주어야 한다고 하니 군인에게만 이 전쟁을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손수 화물차를 몰겠다합니다. 희미하게 미소마저 보인 그였지만, 그의 가슴 주머니에 있던 나는 그의 요동치는 심장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포와 맞바꾼 사명감을.

 

 

그렇게 대전역을 향해 '미카 3-29호 증기기관차'가 출발하였습니다. 미군 열차호송병 30여 명을 탑승한 채, 기꺼이 현재영 기관조사와 황남호 기관조사가 기관차에 함께 올랐습니다. 16:30:21,22,23... 기관차의 머리가 세천터널을 빠져나오자 터널을 장악하고 있던 북한군 침투부대의 집중사격이 쏟아졌습니다. 5년 전 일제 강점기에서 독립이 된 이래, 민족의 넋을 가위 누르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아픔이 기관차에 박혔습니다.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한 핏줄을 검게 오염시킨 그 시작의 순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도 아니 된다면, 적이 아닌 같은 어버이를 두었던 형제였음을 기억할 수 있게 잠시만 아주 잠시만 시간을 잡아 세웠으면.

 

기관차는 비처럼 쏟아지는 적 화망을 돌파하여 대전역에 도착하였지만, 기관차 급수조가 파열되어 화물차를 견인할 추진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대전을 뚫고 내려오는 적진을 거슬러 오른다는 건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던 계획일는지도 모릅니다. 16:45:11,12,13... 목표를 상실한 채 호송병과 함께 기관차만이 옥천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때 잠복하고 있던 인민군의 매서운 공격이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기관차에 타있던 호송병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치열한 사격전으로 크고 무서운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째깍째깍. 태엽이 휘감기며 내놓는 내 심장 소리가 긴장의 강도를 더하지 싶어 심장을 쥐고 멈추어버리길 바랬습니다.

 

그러다 나를 빗겨 가슴에 박히는 총알을 보았습니다. 냉한 쇳덩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 발의 총알이 다시 와 박혀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8개 총알이 김재현 기관사의 흉부에 박혔습니다. 아, 차라리 나의 심장도 함께 관통시켜 주었으면. 그는 기관조사에게 기관차 운행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더니 제 아이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듯 불렀습니다. 그에게 아이들의 얼굴을 꼭 한 번 더 보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달려와 안기던 4살 난 딸아이와 이제 막 말이 트인 2살 난 아들의 얼굴을. 그리고 아내의 품 냄새를 맡게 해주었더라면 그 또한 얼마나 좋았을까요? 결국 그곳에서 기관조사 2명과 호송병 1명을 빼고 모두 세상과 등을 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김재현 기관사의 회중시계입니다. 누군가는 그날의 작전이 무모한 희생만을 남긴 실패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들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 지키고자 했던 건 승리가 아니라 평화였다는 걸. 나는 지금 제 역할을 상실한 채 멈추어 서있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멈춰 서서 대신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이 땅에 평화가 오는 날 감격과 흥분으로 내 심장이 다시 뛸지는 누구도 모를 일입니다. 째깍째깍... 00:00:00,01,02...

 

글‧사진 제공 : 전쟁기념관(http://www.warmemo.or.kr) 사보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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