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취떡 먹고 창포물에 머리 감고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17) 단오
[서울톡톡] "빠빠앙~ 삐리리~ 덩덩 쿵따쿵, 쿵따쿵따 쿵따쿵" 구성진 태평소 가락과 어우러진 농악대의 신나는 장단에 어깨춤이 절로 나오고 여기저기서 "잘 한다", "어얼수", "좋다" 추임새가 터져 나온다. 농악대가 중심이 된 마당놀이는 어느새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가 된다. 바로 단오날, 세시풍속 중 하나인 마당놀이 풍경이다.
올해 6월 13일(음력 5월 5일)은 여름을 대표하는 명절 단오날이다. 단오는 여름철 우리전통 세시풍속의 중심을 이루는 명절이다.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는 '창포물에 머리감기', 여성들의 놀이인 '그네뛰기', 남성들의 경기인 '씨름', 그리고 마을공동체 놀이인 '마당놀이'를 들 수 있다.
지방마다 특별한 단오풍속놀이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강원도 강릉의 '단오 굿', 경남 창녕의 '문호장 굿', 경북 경산의 '한장군 놀이', 함경북도 종성의 '방천놀이' 등이 유명하다. 대표적인 시절음식은 수리취떡이다. 수리취떡은 취나물이나 쑥을 짓이겨 멥쌀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가마솥에 쪄서 절구에 넣고 걸쭉하게 친다. 친 떡을 굵은 가래떡으로 비벼서 수레바퀴 모양의 떡살로 눌러 문양을 낸 절편이다. 떡 문양이 수레바퀴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 수리취떡이다.
또 다른 시절음식으로는 '제호탕', '준치만두와 준치국', '앵두편과 앵두화채'를 들 수 있다. 제호탕은 약이면서 청량음료로서 단오절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시원한 냉수에 타서 마시면 더위를 타지 않고 갈증을 없앤다고 하였다. 각종 한약재를 가루로 만들어 꿀에 섞어 만든 제호탕은 흰색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였는데, 냉수에 몇 숟가락씩 타서 마시면 가슴이 시원하고 그 향기가 오래도록 남았다. 옛날엔 고급 청량음료로 궁중과 재력 있는 양반가에서 애용하였으며 서민들에게는 귀한 음식이었다.
대표적인 풍속놀이는 농악대가 중심이 된 마당놀이였다. 마당놀이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마당은 농악연주마당이다. 농악대는 꽹과리와 북, 장구, 징, 태평소, 그리고 춤꾼들로 구성된다. 태평소를 선두로 농악대 장단이 울리기 시작하면 춤판이 본격적으로 벌어진다. 춤판이 한창 무르익으면 구경꾼들도 흥에 겨워 춤판에 뛰어들어 함께 어우러진다. 두 번째 마당은 칼춤이다. 춤꾼이 어깨 위에 무동을 올려 세우고 춤판에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무동춤을 한바탕 춘 다음 칼춤으로 넘어 가는데 이것을 원률춤이라고 했다. 세 번째 마당은 춤이 빠지고 퉁소를 연주하는 음악으로만 구성되는 마당이다. 연주곡으로는 함경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인 '애원성'과 '시나위'로 연주자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다. 마당놀이는 해질 무렵에 끝이 나곤 했다.
여성들의 대표적인 놀이는 그네뛰기로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그네뛰기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풍속이다. 고려시대의 그네뛰기는 왕궁과 귀족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즐겼던 놀이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상류층 여인들에게는 금지된 놀이가 되었다. 유교사상에 바탕을 둔 봉건적 윤리규범 때문으로 보이며 그네뛰기는 주로 서민층의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성행한 놀이였다
남성들은 씨름을 즐겼다. 지금도 운동 경기의 하나로 계승되고 있는 씨름은 다른 이름으로는 각희, 각력, 각저라고도 불렸다. 경기는 넓은 모래마당에서 허리와 다리에 샅바를 두른 두 장정이 마주 끓어 앉아 각기 상대방의 허리와 다리의 띠를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심판의 호령에 따라 동시에 일어나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림으로서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다. 씨름은 옛 고구려 땅인 만주지역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도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고려에서도 행해졌던 경기였다. 조선시대와 근대에도 전국 각지에서 남성들의 놀이로 각광을 받았다. 단오와 백중날, 한가위 등 명절에 행해졌으며 단오절에는 여성들의 그네뛰기와 함께 연중행사로 빠지지 않는 놀이가 되었다. 특별히 어느 지역에서는 우승한 장사에게 황소 한 마리가 상금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단오는 다른 이름으로 '수릿날', '천중절', '중오절', '단양'이라고도 불렸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자'는 다섯을 나타내는 것으로 '초닷새'를 뜻한다. '중오'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 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로 풀이된다.
음양사상에 따르면 홀수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를 '음(陰)의 수'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전통사회에서는 설(1월 1일),·삼짇날(3월 3일),·칠석(7월 7일)등을 절일로 기렸다. 이런 풍속은 양수(陽數)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풍속 때문이다. 이들 절일 중에서도 단오는 1년 중에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기고 여러가지 풍속이 행해졌던 것이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이번 단오인 6월 13일 '창포물에 머리감기' 등 민속체험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솔로탈출, 시험대박...단오 부적 만들어요6.23, 북촌문화센터 단오 체험 행사 선착순 100가족 모집
[서울시 하이서울뉴스] 오는 6월 23일(토)에 서울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마을 북촌에서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인 단오 맞이 행사가 열린다. 장소는 종로구 계동 전통한옥에 자리잡은 북촌문화센터. 북촌주민, 북촌문화센터 강사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며 단오부채 그리기, 부채장식매듭 만들기, 수리취떡 만들기와 다례체험, 창포주 빚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단오날에는 '단오선'이라 불리는 단오부채를 만들어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 단오 무렵이면 더위가 찾아오기 때문. 이날 만든 부채는 왕에게도 진상하였다고 전한다. 수리취떡은 단오에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떡의 둥그런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서 '수리' 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창포는 향기가 뛰어나 악병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더워지는 여름을 대비하여 건강을 도모하기 위해 단오에 마셨던 우리 술이 바로 창포로 만든 창포주다.
'희망의 단오부적 그리기'도 흥미로울 것이다. 우리 조상이 단오절에 가졌던 액막이 부적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이밖에도 단오를 주제로 한 부채와 민화 작품들이 북촌한옥문화센터의 안방과 사랑방의 툇마루에 전시되어 있어 관람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6월 22일(금)까지 북촌한옥마을 홈페이지(http://bukchon.seoul.go.kr)로 하면 된다. 100가족에 한해 선착순으로 받는다. 재료비 10,000원만 개인 부담. 북촌문화센터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문의: 북촌문화센터 02) 3707-8388, 8270
마을공동체, 담장을 너머 담장(談場)을 펼치다다큐~ 마을공동체 10. 마포구 염리동 마포대안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
주민들, 마을 안에서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것들'에 주목하다
마포구 염리동 주택가 골목을 걷다 만나게 되는 마포 대안 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은 정겨운 이름만큼이나 주민들 누구에게나 격의 없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출입구 바로 옆 벽면에는 나무로 제작된 소박한 마을지도인 <소금꽃 마을지도>가 눈길을 잡는다. 마포아트센터 바로 뒤 골목에 위치한 <우리동네 나무그늘>은 2년 남짓 준비 끝에 2011년 7월에 문을 열었다. 마포구 염리동 인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 오던 10여 개의 시민단체들은 마을 안에서 각자 독자적인 활동을 펼쳐왔었다. 하지만 각자 활동하면서 쌓은 역량들을 마을과 주민들에게 녹여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0여개 단체에 소속된 회원들과 주민 등 30여 명이 공동출자형식으로 2천 4백만 원을 마련해 주민들이 모일 공간을 마련했다. 주민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시작해 볼 공간이 탄생한 것.
<우리동네 나무그늘>이란 근사한 이름은 운영진이 공간 앞 지나가는 골목에 패널을 설치하고 열린 마루, 소금꽃, 나무그늘 등 공간의 이름을 주민들에게 묻는 주민투표로 정해졌다.
"많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서 놀랐습니다. 운영진의 생각과 달리 공간 이름도 '나무그늘' 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그야말로 주민들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마포대안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 윤성일 운영위원장의 유쾌한 회고가 이어졌다. 또한 공간의 콘셉트를 잡기 위해 마련된 공간 앞에 '공간 계약은 했는데 이곳에서 뭘 해야 하는지 정해주세요'라는 현수막도 걸어 두었다. 주민들의 니즈(Needs)를 알 필요가 있었다.
무언가를 제안하고 풀어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기다
공간이 마련되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그 공간에서 무언가를 해 보고자 하는 욕구들이 넘쳐났다. 하고 싶은 것들을 제안하게 됐고 공동의 관심사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주민들의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모여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카페와 자원의 선순환 활동에 주민들이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는 되살림 나눔가게가 우선 공간의 콘셉트로 정해졌다. 마을의 커뮤니티 카페 <나무그늘>과 되살림 나눔가게 <소금꽃>이 소중한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이 소중한 공간의 탄생을 반기는 주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공간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발도르프 인형을 잘 만드는 주민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나누기 위해 강사를 자처했고, 자녀교육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강좌를 요구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무언가를 제안하고 주민들의 요구가 풀릴 수 있는 통로가 생겼고, 공간 한 쪽에는 편안한 수다방도 되고 회의실이 되기도 하고 스터디 공간이 되기도 하는 동네사랑방 <열린 마루>도 자리 잡았다.
언제고 골목길을 거닐다 들어와 공정무역커피를 마시며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민들 스스로의 생각을 함께 나누다 보니, 마을을 위한 긍정적인 일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자원의 공유, 고민의 공유'가 일어났다. <우리동네 나무그늘>에는 주민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1톤 트럭이 생겼다. 서민의 짐을 나르는 마포 '희망트럭' 이라 불리는 이 트럭은 매우 저렴한 비용을 내면 누구나 마을에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우리동네 나무그늘>에는 생활상담센터가 있어 법률 상담, 노무 상담, 재개발 상담 등 어렵고 힘든 상담이 필요한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해결 방안도 찾아준다. 미리 신청하면 격주에 1회, 상담료 1,000원이면 재능기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7월, 여름밤에 열린 <우리동네 나무그늘>의 첫 번째 작은 음악회 <쓰레빠 찍찍 밤마실 음악회>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며 꾸리는 마을 음악회로 자리를 잡아 매달 한 번씩 주민들에게 소박한 감동을 주고 있다.
<소금꽃 마을축제>를 열다
카페 <우리동네 나무그늘>에 모여 마을 일을 이야기 하던 주민들은 지난해 마포문화재단과 함께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축제 <소금꽃 마을축제> 개최를 통해 마을공동체 문화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됐다. 문화예술에 서툴던 주민들은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성장해 갔고, 마을 곳곳을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예술가처럼 변해갔다.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의 생활예술공방 수업과 문화예술동아리 사업은 마을의 첫 축제의 든든한 토대가 됐다. 아동·청소년이 주축이 된 <드림아이예술동아리>의 합창과 청소년 밴드, 성인이 주축이 된 <인생2막예술동아리>의 난타공연 등 일취월장의 기량을 닦은 주민들은 400여 명이 모인 소금꽃 마을축제 주민공연한마당에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며 축제를 풍성하게 했다. 한서초등학교의 오케스트라 공연, 부채춤, 방송댄스와 용강초등학교의 연극 미운오리새끼 등 마을 내 초등학교도 축제에 참가해 학교와 마을이 축제로 만나 좋은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생활예술동아리 중 도자기 공예와 목공예 활동을 하고 있는 주민들도 축제에 참여하였다. <흙으로 만난 도자기공방> 주민들은 생활자기 60여 점을 만들어 판매수익금 15만 7,000원 전액을 지역에 있는 장애인복지시설에 기탁했다. <폐목재에 새 생명을 목공방> 주민들은 재활용 목재를 사용해 근사한 동네지도 <소금꽃 마을지도>의 밑그림을 그리고 축제 당일에 카페 <우리동네 나무그늘> 벽에 세워 주민들이 흥미롭게 마을지도 제작에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
소금꽃 마을축제는 마을의 24개 단체와 모임이 함께 만들었다. 각자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단체들이 마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모이다 보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고, 또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단체와 모임들이 새롭게 생겨 마을이 더 풍성해졌다. 이 모든 긍정의 흐름 속엔 마을 주민들과 마을 단체들이 스스로 제안하고 만들어 낸 공동체의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염리동 마포대안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은 오는 6월 16일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며 창립총회를 연다.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구와 바람을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치적인 조직'이라는 협동조합의 의의에 걸맞게 새로운 도약을 마을 안에서 준비 중인 것이다. 공동출자 형식으로 마련된 마포대안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은 30여 명의 출자자에서 현재 75명의 조합원으로 늘어났다. 6월 15일을 기점으로 100여 명의 조합원이 구성될 예정이다. 마포대안공간 <우리동네 나무그늘>에 뜻을 함께 하는 주민 출자자 120여 명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한다.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은 혼자가 아닌 함께, 상생의 공동체적 삶을 가져가기 위한 또 다른 마을 속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문의 : http://cafe.daum.net/mapomaru / 02-6408-5775
청파동, 푸른 언덕의 추억골목길 기행 ① 청파동
[서울톡톡]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 라디오에서 들었던 시 한편은 유난히도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몇 번이고 시를 되뇌이며 시인이 느꼈을 뜨거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치열한 삶을 살아온 여류 시인의 가슴 속 세계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머릿속에 남게 된 건 '청파동'이라는 지명 뿐.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지명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서울역 서편 서부역에서 내려 맞은편에 있는 숙명여대 건물을 바라보면 빼곡히 늘어선 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서울시 용산구 북쪽에 위치한 청파동(靑坡洞)이다. 지명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푸른 야산이 많아 '푸른 언덕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조선 세종 때 청파(靑坡) 기건(奇虔)이라는 명신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후자가 설득력이 있다.
이야기야 어찌됐든 청파동의 '푸른 언덕' 이미지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 1970년대 이후 개발 붐을 타고 현대식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청파동의 풍경은 점차 바뀌어간다. 특히 숙명여대 캠퍼스와 인접한 청파동3가는 하숙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연립주택과 빌라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옛 골목의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다만 청파동1가에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오래된 집들이 많이 남아 골목길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잊혀져 가는 골목길의 흔적 지하철을 이용해 청파동 골목길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서부역에서 내려 6차선 청파대로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는 방법과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갈월 지하차도를 지나 골목길로 가는 것인데, 서부역의 옛 정취도 느껴볼 요량으로 첫 번째 방법을 택했다. 청파대로를 중심으로 다시 청파길, 새싹길, 감동산길, 미나리길, 배다리길 등 정겨운 이름의 골목길들이 모세혈관처럼 뻗어 나가는데, 이 길을 걸어 올라가면 미로처럼 얽힌 청파동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청파동 골목길의 첫 인상은 비교적 단정했다. 자동차가 쉽게 지날 수 있을 정도의 반듯하고 넓은 골목길이 이어지는데다 곳곳에 새로 지은 빌라들이 유난히 많아서 개발 이전의 골목길 정취와는 사뭇 달랐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과 한옥, 무허가 판자 주택들이 섞여 특이한 풍경을 연출했다던 1970년대 풍경은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대신 저마다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유난히 많아졌는데, 모두 같은 건축업자의 손길을 거쳤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보자 하니 옛날 집들 찍으러 오셨나본데, 청파동1가 쪽으로 가 봐요. 내가 거기 사는데 거긴 오래된 집들이 많아 주말에 젊은 분들이 많이들 오시더라고..."
서운한 마음으로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던 필자의 심정을 이해한 것일까. 어디선가 나타난 아주머니 한분이 말을 건넸다. 청파동에 자리를 잡은 지 어느덧 40년째에 접어들었다는 아주머니는 개발 바람을 타고 동네 풍경이 참 많이도 바뀌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집을 다시 짓고 싶어도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거나 입지 상 공사가 쉽지 않은 곳들만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나마 그런 풍경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옛 골목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만리시장길과 청파동길을 사이에 두고 허름한 주택들이 만들어 낸 좁은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눈높이 보다 낮은 작은 창문들, 성인 남성이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작은 대문, 집집마다 드리워진 대나무 발이 소박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오토바이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듯한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찌하다보니 여기서 60년 넘게 살았어. 그래도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고 이 정도면 만족해. 무엇보다 동네가 참 조용하고 좋아. 개발 얘기들 하는데 우리는 이대로가 좋아. 그냥 여기서 편안하게 남은 시간 보내고 싶어." 백발이 성성한 올해 82살의 어르신이 낯선 여행자에게 소박한 바람을 털어놓았다.
비교적 반듯하게 이어지는 골목길을 지나 청파동에서 지대가 가장 높다는 새싹길에 들어섰다. 청파동과 서울역 일대, 그리고 저 멀리 남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 아래 한옥과 다세대 주택, 빌라 등이 조화를 이루며, 각기 다른 시대의 색깔을 뿜어낸다.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과 닮았다고나 할까. 한참 동안 서서 풍경을 음미했다. 무엇보다 한눈에 보이는 남산의 풍경이 참 좋았다.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이곳에선 한적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니, 연인과 함께 나만의 아지트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골목길마다 마주하는 삶의 흔적 청파동 여행의 묘미는 여러 갈래의 골목길을 지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색다른 풍경이다. 낡고 허술한 간판과 울퉁불퉁한 계단, 주택 담장마다 드리운 나무들은 마치 갤러리를 돌며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청파 초등학교 옆에 나란히 마주앉은 허름한 문구점과 주민센터 앞의 세탁소 간판은 고풍스럽기까지 하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삶을 이어온 이곳의 주인장들이야 말로 문화를 지켜가는 진정한 장인들이 아닐까.
청파동 골목의 느낌은 봄바람처럼 따스하다. 높은 건물이 없어 골고루 햇볕이 잘 들고 오래된 주택가 담장 너머에는 어김없이 나무가 늘어져 초록의 기운을 더해준다. 집과 집 사이를 수놓은 빨래들과 스티로폼 상자에 정성껏 심은 채소, 낡은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삭막한 도시 풍경을 극복하는 생활 소품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집값이 떨어진다며 빨래를 밖에 내걸지 말라던 현수막을 내걸었다던 어느 아파트 부녀회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는 깨끗하게 보일는지 모르겠으나, 사람보다 건물의 가치를 위해 삶의 흔적마저 애써 지워야 하는 씁쓸한 현실에 한동안 가슴 아파했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청파동에서 만난 생활의 흔적들은 서민적이라기보다 삭막한 도시에 사람의 온기를 더하는 멋, 그 자체다. 진정한 멋은 자연스러움을 존중하고 추억을 나누는 것이라 믿기에.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는 동네
청파동 골목길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저 멀리 계단을 수놓은 희미한 그림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연어 '비란이'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타일을 붙여 표현한 공공 미술 작품. 시간이 흘러 빛은 바랬지만 그 역동성은 우리들의 고단한 삶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청파동 언덕 너머에서 내려다 본 숙명여대 캠퍼스엔 푸르름이 가득하다. 수다를 떨며 삼삼오오 캠퍼스를 누비는 여대생들의 모습이 무척 싱그럽다. 도시화로 푸른 언덕의 추억은 저 멀리 사라졌지만, 대신 그 자리는 삶의 흔적으로 채워졌다. 골목길을 걸으며 그 흔적 하나하나를 발견하는 과정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매력적이다.
서울의 골목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빽빽한 고층 아파트와 반듯하고 넓은 대로가 골목길 풍경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청파동 골목길 풍경도 머지않아 없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오래된 이야기가 담긴 골목길을 걸으며 이를 추억하는 건 그래서 더 소중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⑮ 가정의 달
[서울톡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가 있었다. 그는 어떤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까 고민하다가 목사를 찾아가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일까요?" 목사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다시 승려를 찾아가 물었다. 승려는 '자비'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새색시에게 물었다. 그녀는 '사랑'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는 '평화'라고 말했다.
"믿음, 자비, 사랑, 평화, 그런데 이것들을 어떻게 한 폭의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단 말인가?"
화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온 그를 어린 자녀들과 아내가 정답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자녀들의 눈을 들여다보니 그 눈망울에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깊은 믿음이 아로새겨 있었다. 아내의 눈동자에는 자녀들과 자신에 대한 자비와 깊은 사랑이 서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가정에 아늑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옳거니 바로 이것이구나, 가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야." 화가는 거침없이 그림을 그렸다. 사랑이 넘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현재 우리 가정의 모습은?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이 어린이 날, 8일은 어버이 날, 20일이 성년의 날, 21일이 부부의 날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정만큼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세상살이 고달픈 삶을 쉴 수 있는 곳도 가정이요, 쓰라린 아픔과 상처를 서로 보듬어주고 치료해주며,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도 가정이다. 국가와 사회를 지탱해주는 근간이자 경제의 기본단위도 가정이다. 잘 사는 나라, 건강한 사회를 이루려면 먼저 가정이 바로 서야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수많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네 가정 가운데 하나는 1인 가구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50%는 부부나 부자, 모녀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 2인 가구다. 이혼에 의한 가정파탄으로 조부모와 손자 손녀가 가정을 이룬 조손가정도 많다. 더구나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해체도 심각한 수준이다. 어느 조사기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23.4%밖에 되지 않았다. 한편, 개나 고양이등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여긴다는 청소년들이 57.7%나 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잘못된 가족구성원들의 정서가 가정폭력이나 노인과 아동학대, 이혼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혼에 따른 위자료와 자녀 양육비, 따로 사는 자녀를 만나는데 사용되는 비용이 연간 2조 9,94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 치료비만 해도 1년에 평균 6,117억 원이 들어간다. 50대 이상의 황혼이혼율이 벌써 7년째 증가하고 있다. 노령인구의 20%가 돌봄을 받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노년을 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가정을 바로 세우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가정이라는 생활공동체가 무너지면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받는다. 한 해 8,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버려지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또한 미혼이나 이혼으로 인한 1인 가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가 사회적 현상에 따른 새로운 가족 형태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택이나 세제, 사회보험 등 전통적인 가정형태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현행 사회제도는 다양한 형태의 가구를 적절하게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가정들이 깨지지 않고 건실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한경쟁과 황금만능, 출세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낸 인간성 상실을 회복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해와 용서, 그리고 협력에 바탕을 둔 가족 상호간의 유대와 관계 증진을 위한 사회문화 조성이 시급하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행복은 건강한 가정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공감대가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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