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밥 먹고 도시여행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따라 순라길 한 바퀴

草霧 2013. 6. 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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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창덕궁, 창경궁을 따라 순라길 한 바퀴

순라길

 

사종민 | 2012.10.02

 

 

[서울톡톡] 서울 종묘에 가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순라길이 있다. 순라는 돌며 살필 순(巡)과 순행할 라(邏)로 순찰하며 경계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내내 벌건 대낮이 아니라 밤에 관원이 도적과 화재를 경계하며 돌아다니는 길이라 하여 순라길 또는 골목을 순행한다하여 순라골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야간 순찰로 예전 통금이 있었던 시절 방범대와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정작 순라길을 가보면 동과 서순라길을 합쳐봐야 고작 1km 남짓하다. "겨우 이 정도를 가지고 순라길이라 하나. 20∼30분 정도면 걸을 수 있는 길을 밤새도록 돌았다니"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요새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고지도를 보면 한결같이 종묘와 창경궁이 한 울타리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궁궐의 맥을 끊기 위해 강제로 창경궁과 종묘를 분리하고 그 자리에 도로를 내버렸지만 원래는 종묘와 창경궁은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야간 순찰 길은 종묘 앞에서 시작하여 창경궁이 있던 명륜동 일대를 한 바퀴 돌아오기 때문에 지금의 몇 배에 해당되며, 더불어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 바깥을 돌기 때문에 무척 긴장하고 꼼꼼히 돌아보았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조선시대 순라군들이 육모방망이를 들고 밤새 도성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흔적이 지명으로 남아 있는 것은 현재 종묘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나 있는 동순라길과 서순라길이다. 주변에 순라군을 관리하는 순청(巡廳)이 있었던 데(18세기 중순에 제작된 도성대지도를 보면 종묘 앞에 순청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서 이름이 붙여졌는데 동순라길은 원남동 151-6번지에서 인의동 90-5번지에 이르는 너비 5.4m~6.6m, 길이 444m의 소로이고, 서순라길은 권농동 113번지에서 봉익동 36-1번지에 이르는 너비 6.1~17.8m, 길이 601m의 소로이다.

 

순청 또는 순라청은 야간 순찰을 맡은 관청으로서, 좌순청과 우순청이 있다. 좌순청의 구역은 종각에서 동쪽으로 혜화문·흥인지문·오간수문·광희문 등이고, 우순청은 종각에서 서쪽으로 숭례문·돈의문·창의문·숙정문 등이었다. 조선 초기에 설치하고 고종 31년(1894)에 폐지하였다.

 

중추부의 지사, 동지사, 첨지사들이 겸임하는 순장과 선전관, 병조 또는 도총부의 당하관들이 겸하는 감군 등의 벼슬이 있다. 순라군은 주로 밤에만 순행하는데 봄과 여름에는 저녁 8시경부터 새벽까지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저녁 7시 경부터 새벽까지 서울 안에 통행을 금지시켰는데, 시간의 차등은 일몰 시간과 관계가 있다.

 

 

순라길은 한 쪽은 종묘를 경계로 하고, 또 한 쪽은 주거지를 경계로 해서 자연스럽게 생긴 선형(線形) 공간이 그대로 길이 된 것으로, 원래는 폭이 2m에도 미치지 못하는 흙길이었다. 창덕궁이 가까워 조선시대에는 이 주변에 양반과 내시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한 내력은 지금도 주변 음식점에서 소고기 특정 부위를 이용한 궁중음식인 '수구레'를 파는 것으로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지적도를 보면 길 주변은 주택이 들어선 대형 필지였던 것이 확인되는데, 이후 1930년대 도시화로 필지가 나누어지면서 조성된 집 건물 벽면과 종묘 담장이 길의 윤곽이 되었다. 한국전쟁 후 한 때 길을 아예 막아 통행을 금지하여 동네 집들의 마당이 되어버렸던 때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신문기사를 보면 이 길에서 종종 강도가 출몰하고 불량배가 무리지어 다니는 등 일종의 우범지대였던 듯하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동순라길은 지금처럼 잘 정비된 도로가 아니고 언덕배기 외진 골목길로 대낮에도 폭력배가 행인들을 위협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곳으로 동네 토박이들은 기억하고 있다.

 

순라길은 1995년 종로구에서 지금의 서순라길을 일방통행 1차로로 새롭게 포장하고 정비하면서 자연 발생의 골목길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역사문화탐방로'로 지정하고 보전에 애쓰고 있다. 행인이 겨우 다닐 수 있었던 순라길에 이제는 차량 진입이 가능하게 되어 서순라길은 인근 귀금속 상가의 세공작업장이 즐비하여 상업가로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그에 반해 동순라길은 한적한 동네 길로 운치가 있다. 최근 서울시는 옛 종묘와 창경궁의 권역을 다시 합치기 위해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데 완료시점에는 순라길이 어떻게 정비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 순라길 찾아가기

 

 

글/사종민(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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