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霧의 세상구경을 시작합니다./도시 상상하기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

草霧 2013. 5. 31. 00:00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문화와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서울 성곽 역사 기행

<!--[if !supportEmptyParas]--> <!--[endif]-->

홍기원 지음

출판사 살림 | 2010.10.22.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364 | ISBN

정가 | 12,470

<!--[if !supportEmptyParas]--> <!--[endif]-->

문화와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서울 성곽 역사 기행

서울 성곽은 조선 시대뿐 아니라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이승만 시대, 박정희 시대,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의 흔적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의 저자 홍기원은 서울 성곽을 따라 직접 걸으며 남긴 기록들을 담았다. 숭례문을 지나 인왕산을 오르는 구간, 북악산을 넘어 낙산으로 향하는 구간, 동대문을 지나 장충단으로 돌아서는 구간, 남산의 숨결을 느끼며 다시 숭례문으로 향하는 구간의 네 구간으로 나누었으며, 각 코스는 도보로 약 2~3시간이 소요된다. 성곽을 걷는 도중에 만난 역사의 흔적들을 다양한 사료들과 함께 보여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문화와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서울 성곽 역사 기행

<!--[if !supportEmptyParas]--> <!--[endif]-->

6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서울 성곽의 진면목

성곽 속에 깃든 민초들의 거친 숨결과 가슴 아픈 우리 역사를 읽는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600년의 왕도 서울을 에워 돌며 굽이치는 파란만장한 역사

서울 성곽은 단지 성곽이라는 물질적 형태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서울 성곽은 조선 시대뿐 아니라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 해방 후 이승만 시대, 박정희 시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역사의 흔적이 담겨 있는 커다란 그릇이다. 그 그릇 속에 우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세월의 영욕과 시대의 부침이 물결치고 있으며, 또한 한 많았던 우리 선인들의 고단했던 삶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그러므로 서울 성곽을 따라 걷는 답사 길인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는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매듭을 단단히 붙들어 주는 기록이자,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그득 담겨 있는 손때 묻은 보따리가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역사의 더께 뒤에 가려진 서울 성곽의 진면목을 읽는다

한때 순교자의 문으로 불리던 서소문은 도시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일제에 의해 헐린 채 생명을 다했다. 도성의 동남문이었던 광희문은 일제강점기에 문루가 무너져 내렸고, 뒤이은 박정희 정권 시대에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는 와중에 아예 본래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런가 하면 500년을 넘게 이어 온 서울의 얼굴 숭례문은 2008년 안타까운 화재 사고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서울 성곽은 그 무수한 역사의 시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서울 성곽은 등하교 시간마다 학생들로 북적이는 학교 담을 따라 끈질기게 피어났고, 새롭게 복원된 시민 공원 둘레로 이어졌으며, 인왕산과 북악산, 낙산과 남산의 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되살아났다.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는 이처럼 퍼덕퍼덕 살아 꿈틀거리는 서울 성곽 그 자체다.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역사적 정체성을 심어 주려는 목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지금껏 존재 자체도 모르고 무심결에 지나쳐 버릴 수 있었던 소중한 역사의 흔적을 가슴속으로부터 일깨워 주는 값진 선물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밀한 발걸음으로 촘촘히 엮어 내는 서울 성곽 도보 답사 길

성곽 돌에 새겨진 작은 흔적 하나에도 전문가다운 날카로운 감식안을 들이대는 저자의 솜씨는 예사롭지 않다. 또한 각 장마다 들어 있는 답사 코스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풍부한 사진 자료 및 약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안내자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열정, 치밀한 시선과 정성스런 손길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저자의 진심이야말로 책을 읽는 독자의 가슴을 적시기에 충분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책 성곽을 거닐며 역사를 읽다의 서울 도성 역사 걷기는 가족 산책길로 적당한 거리인 도보 2~3시간을 소요 시간으로 잡고 모두 네 구간으로 나누었다. 숭례문을 지나 인왕산을 오르는 구간, 북악산을 넘어 낙산으로 향하는 구간, 동대문을 지나 장충단으로 돌아서는 구간, 남산의 숨결을 느끼며 다시 숭례문으로 향하는 구간이 그것이다. 모든 답사 구간이 때로는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 때로는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에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우리 성곽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 해 주는 길이다. 저자와 함께 그 길을 다 걷고 나면 어느새 서울 성곽의 4대문과 4소문이 역사의 더께를 털고 한층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환상적인 시간 여행 속으로 한 발 한 발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겨 볼 차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서울은 조선왕조의 궁궐과 서울 성곽이 있어 600년 왕도인 것을 자랑한다. 1396년에 착공된 서울 성곽은 이후 세종 때와 숙종 때 보수 공사가 있었지만 총길이 18.2km의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바람을 거치면서 10.5km만 남고 나머지는 길로 뚫리거나 건물이 들어섰다. 그 성곽과 사라진 자취에는 600년 역사의 장면들이 서려 있다. 나는 언젠가 이 길을 증언하는 답사기를 써야 한다고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한국문화유산답사회에서 활동하며 나와 깊은 인연을 맺은 저자가 나를 대신해서 충실한 성곽 길라잡이를 펴냈다. 이제 나는 부담 없이 그의 안내를 받으며 서울 성곽 길을 걸어 볼 참이다. _유홍준(전 문화재청장,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저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대한상공회의소 인도 쪽에서는 볼 수 없지만 서울역 쪽에서 차를 타고 남대문을 끼고 돌면 도로에도 페인트로 표시된 서울 성곽 자리가 보인다. 그 페인트 표시가 서울 성곽이 지나간 자리라고 알아차리는 서울 시민은 과연 몇이나 될까?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서울 성곽 길을 따라가다 보면 복원이 불가능한 구간에 대해 이곳이 성곽이 지나간 자리라는 표시를 곳곳에 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서울 성곽 표시는 교통표지판처럼 통일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헷갈리지 않고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여기는 페인트로 표시하고, 저기는 화강암 판석으로 표시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화강암 막대로 표시한다면, 디자인 서울이 아니라 디자인 부재서울이 될 수밖에 없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대한상공회의소 담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면 기계 맛 물씬 나는 하얀색 복원 성벽 아래에 놓인 거무튀튀한 옛 성곽 돌을 만날 수 있다. 옛 성곽 돌을 만났지만 반가움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찾아든다. 200512월 지금의 대한상공회의소 건물을 신축하면서 2~3단 정도 남아 있던 서울 성곽 돌을 들어내고 공사가 끝난 다음 본래의 자리에 복원했다. 그런데 옛 성곽 돌을 들어내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포클레인으로 마구잡이 공사를 한 흔적이 성돌 가장자리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포클레인에 치인 성곽 돌은 모퉁이가 깨져 나가고 곳곳에 이가 빠진 흔적이 보인다. 복원 당시 시멘트를 함부로 써서 훼손한 흔적도 많다. _pp.25-26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새로 조성된 낙산 북쪽 서울 성곽 탐방로는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이 구간은 세종 때 축성한 것 중 가장 힘 있고 아름다운 성곽을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숙종 때 성곽은 정방형 돌을 쌓아 올린 것이라 조형적 변화는 별로 없고 단순하다. 하지만 세종 때 사용한 돌은 규모가 일정치 않은 장방형이기 때문에 변화무쌍하다. 그 진면목이 이곳에서 드러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낙산 북쪽 서울 성곽 탐방로를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북한산 보현봉부터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악산이 까마득히 보이는 걸 보면 내가 저렇게 먼 곳에서부터 걸어왔구나 하며 뿌듯한 마음이 일기도 한다. 중간에 새로 조성된 낙산 북쪽 서울 성곽 탐방로와 삼선1동주민자치센터 앞을 거쳐 올라오는 소방 도로가 나란히 달리는 길은 60미터 정도다. 그러다 짚으로 올린 짚지붕 정자가 있는 주머니공원에서 낙산 성곽과 소방 도로는 헤어진다. ……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낙산은 해발 125미터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이다. 산의 모양이 낙타와 같아서 낙타산, 낙산, 타락산이라 불렀다. 낙산은 주산인 북악의 동쪽에 위치하여 좌청룡에 해당한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숲이 우거졌고, 깨끗한 수석과 약수터가 있었다. 특히 낙타 유방에 해당하는 곳에 약수가 있었는데, 낙산 서쪽 산록 지역으로 쌍계동(雙溪洞)이라 불렀다. 성현의 용재총화를 보면, 쌍계동은 암석이 기이하고 수림이 울창하며 맑은 물이 흐르는 절경으로 삼청·인왕·백운·청학과 더불어 도성 내 5대 명승지로 꼽혔다. _pp.163-165

<!--[if !supportEmptyParas]--> <!--[endif]-->

새로 난 남산산책로를 따라 남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남산산악회 체력단련장 입구에서 시작한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남산 성곽을 타고 넘게 되어 있다. 남산 성곽 안쪽 울창한 숲을 따라 낸 산책로이기 때문에 걷는 즐거움이 그만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서울타워 주차장 아래에 있는 남산 서울 성곽은 언제 가도 분위기가 좋다. 남산 정상에 오르면 서울타워는 꼭 올라가 보는 게 좋다. 서울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팔각정을 돌아서 나간 남산 서울 성곽은 남산 서쪽 능선을 타고 옛 남산식물원 쪽으로 뻗어 내려간다. 남산케이블카 타는 곳에서 계단길을 좀 내려가면 포토아일랜드다. 거기가 남산 잠두봉인데 조선 시대 남산에서 도성 안 제일 전망처였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옛 조선신궁 자리였던 옛 남산식물원 자리, 남산 분수대,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성곽 유허가 남아 있지 않다. 아동광장 아래로 내려가면 소월로 축대에서 남산 서울 성곽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소월로에서 남대문을 쳐다보며 도성이 굽이쳐 달리던 시절을 연상하던 즐거움은 이제 사라졌다. 복원 가림막 뒤로 숨은 남대문의 모습이 가슴 아플 뿐이다. _p.293

<!--[if !supportEmptyParas]--> <!--[endif]-->

1장 숭례문을 지나 인왕산을 오르다

영원히 기억해야 할 서울 성곽의 자랑스러운 얼굴_국보 숭례문

안타까운 성곽 복원 현장을 걷다_대한상공회의소

순성놀이

한 많았던 역사의 굽이굽이를 지키며_서소문 터

신교육의 요람_옛 배재학당 터

외교 문제로 묻혀 버린 성곽의 흔적_러시아 대사관

최초의 근대식 여자학교_이화학당 터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강인한 생명력_창덕여중

끝내 자리 잡지 못한 비운의 역사_돈의문 터

백범이 이루고 싶었던 꿈, 내가 이루고 싶은 꿈_경교장

최초의 근대적 기상관측소를 가다_옛 경성측후소

꾸미지 않은 세월 그대로의 모습이 반갑다_월암공원

월암공원에서 배우는 서울 성곽 축성 기법

나는 죽을지라도 신보는 길이 살아 한국 동포를 구하라_배설의 옛집 터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_홍난파 옛집

무악동 박완서의 어린 시절 속으로_무악동 소방 도로

서울을 가장 서울답게 볼 수 있는 하늘 아래서_인왕산 성곽 길

나그네의 고단한 발걸음을 달래는 하늘과 바람 속으로_창의문

인왕산 구간 각자 찾아보기

<!--[if !supportEmptyParas]--> <!--[endif]-->

2장 북악산을 넘어 낙산에 서다

자연과 역사의 절묘한 조화란 이런 것일까_북악산 서쪽 구간

백악신사의 흔적을 담은 마루에 올라_백악마루

청운대의 장관에 흠뻑 취하다_북악산 동쪽 구간

오행으로 알아보는 숙정문의 명운_숙정문

이태준의 글 속에서 서울 성곽을 발견하다_성북동 서울 성곽

학교 담을 따라 피어 있는 역사 이야기_국제고, 과학고, 경신중고등학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성곽의 자취를 찾아_혜성교회와 서울시장공관

고갯마루 문루를 타고 넘는 기나긴 역사_혜화문

낙산 성곽에서 만나는 사학자 김성칠의 삶_낙산 북쪽 구간

도심을 수놓은 아름다운 숲길 속으로_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도성 5대 명승지의 화려한 그림자를 찾아서_낙산 정상

활터에서 배우는 조선조 선비들의 공부법_좌룡정

다시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놓으며_낙산 남쪽 서울 성곽 구간

한국 여성사의 발자취를 짚다_옛 이대부속 동대문병원

스스로 지워 버린 스스로의 역사_동대문교회

북악산-낙산 구간 각자 찾아보기

<!--[if !supportEmptyParas]--> <!--[endif]-->

3장 동대문을 지나 장충단의 역사로 향하다

말없이 도성의 동쪽을 지켜 온 자랑스러운 얼굴_동대문

역사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 흘러가는 곳_오간수문 터

사라짐으로써 다시 드러난 역사의 아이러니_이간수문 터

조선 시대에는 어떻게 성돌을 캐고 운반했을까?

동대문과 광희문 사이에서_치성

급격했던 역사의 소용돌이를 받아 내며_하도감 터

해방 이후의 추억을 찾아서_옛 동대문운동장

디자인 서울을 생각하다_서산부인과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도성의 동남문_광희문

주택가에서 찾아보는 성곽의 역사_광희문 남쪽 서울 성곽

걸어서 기분 좋은 길_장충단 서울 성곽

개발 시대의 불도저 소리가 들려오는 곳_타워호텔과 자유센터

독재자가 남겨 놓은 지울 수 없는 탐욕의 흔적_신라호텔

동대문장충단 구간 각자 찾아보기

<!--[if !supportEmptyParas]--> <!--[endif]-->

4장 남산의 숨결과 함께 성곽을 거닐다

성문을 열어 백성을 편리케 하라_남소문 터

생태 탐방로를 꿈꾸며 걷는 길_남산공원길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호젓함 속으로_새 남산산책로

서울의 상징이 되다_서울타워

목멱산의 중심에 서서 나라의 안녕을 빌다_목멱신사

허물없는 친구처럼 넉넉한 품을 내어 주는 곳_남산 풍광

푸른 하늘에 띄우는 간절한 소망_남산 봉수대

잠두봉에서 누리는 최고의 멋을 찾아서_남산 제일 전망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치욕의 역사_조선신궁 터

백범광장에 국회의사당이?_백범광장

일제 말기 가혹했던 황민화정책의 상징을 발견하다_아동광장

과거와 미래의 대화를 꿈꾸며_소월로

남산 구간 각자 찾아보기

  <!--[if !supportEmptyParas]--> <!--[end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