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미술사
은(殷)·주(周) 시대에는 청동기가 발달하였다. 중장하고 화려한작품으로 가득한 이 시대 조형미술의 전통은 그 이후 고대 중국미술의 지주가 되었다.
진(秦)·한(漢) 시대에는 옛 무덤의 벽화와 만리장성이 축조되어 그때의 생활상과 뛰어난 기술을 알 수 있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에는 인도로부터 불교 미술이 전래되어 돈황에 석굴 사원이 축조되었고 불교 조각이 성행하였다. 중국 미술에 있어 돈황의 석굴미술은 동서 문화 교류를 고찰하는 실마리를던진다. 돈황의 석굴은 서역을 지나 돈황에 도착한 소조 미술을 중국 본토에 정착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색의 농담에 의한 음영법이 서방에서 전래되어 중국 회화계에 영향을 주었다.
수(隋)·당(唐) 시대는 불교 미술의 전성기이며 중국 미술의 황금기이기도 하다. 북종화와 남종화가 등장했으며 전통적인 중국조각의 성격이 정립되었다. 당대(當代) 수묵화는 서방회화의 채색대신 먹을 사용하였고, 단순히 대상을 감각적으로 본뜨는 것이아니라 대상의 생명을 본뜨는 정신을 으뜸으로 여기는 근본정신이 확립되었다.
1. 선사시대 (先史時代)
신석기 시대는 석기가 주로 생산도구로 쓰인 데 반해 토기는 주로 생활용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토기의 제작이야말로 본격적인 미술의 창조였다.
중국의 미술은 오늘의 하남성을 중심으로 황하 유역에서부터시작되었다. 시기상으로 보면 은(殷)과 주(周) 시대는 중국의 청동기 문화에해당한다. 은(殷, B.C.1300년경)시대와 주(周,B.C.1000년경)시대는 옥기(玉器), 토기, 동기(銅器)등의 형태가 다양하고 정교하다.
서주(西周) 시대에는 기와가 출현한다. 또 은(殷)시대 후기의 것으로 그릇의 발이라고 생각되는 호랑이, 올빼미 등의 모양을 한 대리석 환조가 있는데 양식화 경향이 강하다. 같은 시기에 코뿔소나 숫양, 송아지, 코끼리 등의 모양을 본 딴 연옥(軟玉)의 소품이나 청동기가 있는데, 이것들은 각 동물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있다.
중국 최초의 우수한 기법과 괴기하고 미려하게 새긴 도안 무늬는 다른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다. 주로 자연신교 사상에서 나타난 구름, 비, 번개, 물결무늬등과 다복안락을 표시하는 괴기하고도 복잡한 무늬와 용,호랑이, 부엉이, 꿩 등의 동물 무늬등은 전아한 고전미를 보여준다.
점을 볼 때 사용했던 동물의 견갑골에 사슴, 코끼리, 원숭이를선각한 회화가 약간 알려져 있는데 거침없는 선으로 이들 동물을 능숙하게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주나라 때에 청동은 길금(吉金)이라고 불렸으며, 그러한 기물들에 새겨진 문자, 즉 금문(金文)은 그 시대의 역사나 예악을 연구하는데귀중한 사료로 쓰이고 있다.
은(殷)나라 때에 칠은 무기류나 목관에 바르는 정도였으나, 서주시대(西周時代)에 이르러서는 칠기(漆器)가 그릇으로 사용된다. 동물 뼈, 뿔, 상아 등도 주걱이나 비녀, 그릇을 만드는데사용되었다.
2. 춘추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른 중국고대의 변혁시대이다.
은(殷)·서주(西周) 시대의 제도를 이어받아, 토단 위에 목조건축이 지어졌다. 높은 토단 위에 몇 층의 목조에 기와를 얹은궁전이 지어졌다. 전국시대에는 동근 통기와의 앞부분에 반원형의 와당을 붙이고, 동물이나 수목 등 다양한 문양을 덧붙이는 양식이 시작된다.
전국 시대(戰國時代)로 내려오면 그 유물에서 출토지도 확산되고 출토자료도 풍부해지는데 특히 동제(銅製) 조각에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들이 다수 나타난다. 우선 하남성 금촌 출토의 말과 매사냥 인물상등을 들 수 있고 하남성 이현에서 출토된 동제인물상이 있는데 단순하고 꾸밈없는 조각이면서도 양감을 보이는점이 주목된다.
주제는 궁전에서 열리는 연회나 오락, 사냥, 전쟁, 귀신 등으로 주로측시형(側視形)의 표현을 하며 측면상의 여자 및 봉황, 용을 먹으로그린 전국시대의 비단그림이 유명하다.
또 가죽 허리띠를 잠그는 구(鉤)와 거울이 많이 제작된다.
3.진(秦)·한(漢) 시대
한나라는 서양의 로마 제국과 같이 정치와 군사에서는 강하였으나 문화와 예술에는 앞 시대의 모방에 치우쳐 독창력이 적었다. 이시대에는 다양성의 통일이 조화된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양식을 낳았는데, 재현적 기법과 상징 및 추상화 과정이 혼합된 것 이다.
위수의 남쪽에 아방궁과 같은 대 건축을 한 것을 비롯하여 여산의북쪽 기슭에 대규모의 시황제 왕릉을 축조하고 만리장성 대 토목공사를 벌이는 등, 엄청난 규모의 대역사가 주목된다. 장려한 궁전에는 돌로 만든 소와 고래, 구리로 만든 기린과 용의 조상으로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진(秦)·한(漢) 시대에는 묘당의 화상석(畵像石)이나 토기,동경(銅鏡)등 시대성을 살필 수 있는 미술품이 전해지고 있다.
표현된 내용들은 신화와 역사적 사실, 고사, 일상생활, 유교적 주제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산둥 지방의 화상석에 표현된 인물이나자연 묘사는 그야말로 고식의 미를 한껏 보여준다.
이시대의 미술은 한나라와 수·당의 전환기로서 서역적 요소가 적어지고 중국적 요소가 풍부한 과도기의 성격을 가졌다. 중국의역사가 정착기로 접어든 시기는 이 시대이며, 페르시아, 간다라 등 서방 문화의 영향까지 받아 미술의 성격이나 양식에도 많은 변화를가져왔다.
불교 석굴이 외래 문화의 영향에 의해 발생된 것도 이 시기이다.
석굴의 조각이나 회화 중에는 제작 당시 건축의 외관이나 세부를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특히 원강(雲崗), 룽먼(龍門), 둔황(敦煌)등대규모 석굴불이 유명하다. 이 석굴불을 통하여 불교 조작과 불교벽화 부문에 서 많은 유품을 남기고 있다.
이 시대에는 현실을 초월한 노장의 사상이 유행하여 사실(寫實)을 초월한 추상적인 동양화의 선을 강조하였고, 산수화를 발전시켰다.
이 때의 회화는 기존의 원시적인 상하법을 대신하여 대상을 내려다보는 부감법이 성립하고, 깊이 있는 공간 구성이 가능해졌다. 공간 처리가 분명해지고 인물도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시작한다. 아직 전경, 중경, 후경 사시에 자연스러운 진행이 없고 크기나 비례가 잘 맞지 않으며 인물들에도 개성 표현이 없는 등 고풍스러운 표현을 간직하고 있다. 주제상으로는 기존의 유교와 도교에 새로 들어온 불교가 주 배경이 되며 신화적인 색채는 퇴조한다.
그는 신기론(神氣論)이란 화론(畵論)을 펴 사혁(謝赫)과 함께 동양 회화의 원류가 되었다.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畵品錄)」이란화평(畵評)에서 회화의 근원이 되는 육법(六法)을 논하였다. 송병(宋炳)의 산수화는 고개지에 비해 솔직하고 간명하며, 그가발견한 '지척천리(咫尺千里)'라는 투시 원근법은 서양보다천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위(魏)·진(晋) 시대의 서예는 예서에서 해서로 이동하는 전환기였다. 동진(東晋)에서는 행·초서가 성하였고 왕희지 부자가서체를 완성하였다.
중국의 수(隋, 581∼618)는 비록 3대 38년만에 단명한 왕조였으나, 오랫동안 남북으로 갈라졌던 중국의 통일을 추진하고 후세까지 남는 대사업을 시작하여 뒤이은 당의 번영에 기반을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당의 수도인 장안에는 수나라 때 조성된 대흥궁 외에 삼내(三內)라하여 세 군데의 궁전 즉 태극궁과 황제가 상주했던 대명궁 그리고 홍경궁이 있었다.
견고한 석재 구성으로 웅장한 얼굴과 체격이 특징이다.
초당 전기에는 장안에서 만들어진 명문이 있는 석불좌상이 있는데 동그스름함과 부드러운 당대의 특징이 나타난다.
석굴의 조각이 아직 남아 있고, 목조각, 도상(陶像), 소상(塑像)등이발달하였다.
북조계의 화가가 남조의 양식을 흡수한다는 화북 중심의 통합이었다.
수에 이어 대제국이 된 당은 외국 미술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제적 색채가 풍부한 화풍을 낳았다. 전기에 전래된 헬레니즘의 흐름을 섭취한 굽타조 양식의 인도미술과 사산조양식의 이란 미술이 중국인에게 형사(形寫)라 불리는 새로운자연주의와 표현 기법을 가져다주었다.
이 시기는 중국 회화의 독자성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이며 중국미술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인물, 도석, 산수, 화조가 많이그려졌으며 각기 개성적인 표현을 하게되어 각각의 유파로 발달하게 된다. 즉 남화, 북화의 개념이 확립된다.
당나라 시대에 처음으로 수묵화풍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은 남종문인화의 출발을 뜻한다. 초당(初唐)의 대표적 화가인 염입본(閻立本)은
「역대제왕도(歷代帝王圖)」 「직공도(職貢圖)」로 유명하다.
이사훈(李思訓)은 북화의 시조이며, 귀족적 묘법으로 금벽청록(金碧靑綠)의 산수로 유명하다.
당나라 시대의 미술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공예이며 그 중당경(唐鏡)과 같은 금속공예가 유명하다. 도자기 공예가발달하였고 특히 당삼채(唐三彩)가 유명하다. 유약의 변화에의하여 기물에 나타난 도안의 묘미는 현대 회화의 비구상적 표현양식과도 공통된 점을 보이고 있다.
북송시대는 오대(五代)의 문화를 이어받아 요(遼)와 대립하고, 남송시대는 양자강 이남의 문화를 주체로 하여 금(金)과 병립하였다.
원래 중국의 회화는 도교적이거나 불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송대에는 이러한 불교 도덕에서 해방되어 자연으로 돌아가 순수한 회화로 독립하게 된 시기이다.
선종의 진출로 인하여 예배불상을 중시하지 않는 국가의 불교정책에 힘입어 북위(北魏)로부터 수와 당에 걸쳐 번성했던 석굴과 석불의 조상(造像)은 거의 없어졌다. 송 시대 조각의 특색은 당시불교의 서민성을 보이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유행하였다. 친근감있는 휴머니즘의 표현으로서 현실적인 여성미를 나타내었다.
송(宋), 요(遼),금(金) 시대의 조각은 완전히 당(唐)의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우아함과 자유스러운 수법이 다소 늘어났으나 웅대함과 숭고함을 상실하여, 점차로 비속하고 섬약함에 빠졌다.
중국에서는 '육조(六朝)의 서(書), 당(唐)의 시(詩), 송(宋)의화(畵)'라는 말이 있다. 화원이 융성한 것은 송조가 최고였으며, 한림 도화원을 설치하고 화인을 우대하였다. 북송말의 휘종과 남송초의 고종은 궁정예술가를 양성하여, 송나라의 예원을 크게 번성시켰다. 문인화예술 풍조가 유행하여 소동파(蘇東坡)와 미불과 같은 이름높은사람이 나타났다.
신흥 이상주의는 기성 형식에 거리낌 없이 마음의 이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문인·사대부·승려 등 재야의 비전문적 화가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수묵 담채화풍의 화자와 사군자,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를 아울러 성립해 나갔다. 그들의 화풍은 자연을단순하게 추상화하여 수묵화의 형식으로 이상적 세계를 개척하려했다.
이러한 양대 양식은 원말사대가를 거쳐 이사훈(李思訓)과 왕유(王維)를 시조로 하는 이른바 남북 2대 화파를 형성하게 된다. 이성의 뒤를 이어 범관, 곽희, 허도녕과 같은 화가들에 의해 더욱 다양한 화북 산수화가 나타났다.
곽희(郭熙)는 11세기 산수에 능하였으며 고원, 심원, 평원의 삼원 화법을 주장하였다. 이는 중국 회화에 있어서 원근법의 시초이다.
또 허도녕의 「추강어정도(秋江漁艇圖)」는 걸작으로 꼽힌다. 그의 그림에서 치솟은 산의 기상과 필력은 화북 산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휘종은 제왕 화가로서 유명하다. 섬세하면서도 강한 필선으로 그린 휘종의 산수화풍은 후기의 대표적 산수화가인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의 예술을 낳은 원류가 되었다.
마원은 이당(李唐)의 화법을 흡수하여 자기류의 화풍을 성립시킨 화가이다. 그의 산수화풍은 일본 산수화에 영향을 주었고, 조선초기 이상좌, 강희안에도 미쳤다. 하규, 이적은 용필과 용묵이뛰어나고 각기 개성적이다.
목계는 문인화의 명수로서 당대의 대표적 화가이다. 선종 승인답게 번잡한 것에서 벗어나 마음 속의 것을 일필로 표현하였다. 그의「소상팔경도」는 기존의 준법이나 필법을 따르지 않고 간결함과 상징성으로 표현하여 한 차원 높은 수묵의 미를 살리고 있다.
회화는 시대 양식으로서 간단하게 추출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함을 보여준다. 이런 양식, 형식의 혼란은 명시대의 절파, 오파, 원파등을생겨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북송 산수화풍의 양식이나 묘사 형식을 적당히 취해 화면을 구성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리고 형태나 기법에 대해지나친 편집 경향만 띄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황공망(黃公望), 예찬(倪瓚), 오진(吳鎭), 왕몽(王蒙)등을 원 때의 4대가가 배출되기 전까지 계속된다.
원사가(元四家)는 오대의 동원, 복송의 거연에 기초를 두고 발전하여 필묵을 중시하고, 서법과 시문을 결합하였다. 이는 원래산수화의 주류로 명·청 양대에 걸쳐 영향이 지대했다.
원나라 시대 도자기의 경향은 전통적 사실풍에서 벗어나 비정통적사의풍(寫意風)으로 흘러갔다.
7. 명·청 시대
그 대표적인 것이 베이징의 자금성이다. 베이징의 자금성과 태묘(太廟)는 명대 초기의 웅혼한 기풍을 잘 보여주고 있으나 많은 건축이 청대에 들어 대수리되었다.
불교 신앙은 일반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는데, 목조천의관음상, 대원 숭선사의 소조 천수관음상, 봉성사의 나한상,칠금목조좌불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15,16세기의 것으로 북경 서산 와불사의 청동 석가열반상, 북경서산 벽사의 소조 좌불오존상, 십팔나한상이 있다. 이 시대에는 명대 초기의 위엄이 친근감있게 변하면서 사실적작풍으로 변한다.
기법은 섬세하나 약하고 주제는 산수는 화조와 사군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독창적인 화법과 사고로 그림을 그린 왕시민, 왕감, 왕휘 그리고 명승으로 그림으로 잘 그린 팔대산인, 석계,석도등이 유명하다.
석도는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실경산수를 많이 그렸다.
황산을 그린 여러 장면에는 실제의 경치에 충실하기보다는회화적으로 아름다운 구도와 먹과 멋진 조화를 이룬 담채등 무한한 변형이 이루어진다.
석도의 친구였던 팔대산인도 분출하는 창의력을 작품에 담았는데 「성난 물고기」나 「두 마리의 까투리」등을 보면 산수보다는 화조, 영모등 분야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그는 필력이 날카롭고 핵심을 잘 포착하여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7. 중국 근·현대 미술 中國 近,現代 美術
임이의 영향은 청말부터 민국 초기에 걸쳐서 상해 화단 전반에나타났으며 오창석의 영향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20세기 전반에 전통 화풍을 새로운 시대에 접목시긴 화가로는 제백석(齊白石)과 황빈홍(黃賓虹)이 있다. 북경의 화단에서 명성을 얻은 제백석은 팔대산인과 석수, 오창석등의 감화를 받으며 독특한 화풍을 수립하였다.
미술학자이기도 했던 황빈홍은 당송 시대 회화의 깊은 맛을 살린 산수를 그렸다.
이밖에 20세기 전반의 동향으로는 노신(魯迅)의 제창으로 이루어지는 목각화 운동, 대중과의 의사 소통을 주안점으로 한 새로운 중국 회화로의 방향도 주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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