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지식의 피라미드

근현대사 역사탐방 20탄, 세기의 라이벌 문화양념통 2편 김구

草霧 2012. 10. 20. 12:19

 

 

 

근현대사 역사탐방 20

 

문화양념통

 

 

이화장경교장 (1945) -2

 

 

세기의 라이벌

 

세기의 라이벌, 역사탐방 20탄을 들어가며,

세기의 맞수를 통하여 현재 대통령선거와 이념논쟁을 살펴볼까한다. 소시민의 시각으로 공정하게 서술하며, 모든 내용과 사진은 포털 다음 백과사전· 포털 네이버 · 위키백과에 인용하며, 블로거들의 이야기를 링크하고자 한다.

 

위 내용은 총 5편으로 구성되었으며, 서론으로 1한국의 미국군정기편으로 국내외 사상과 시대흐름을 정리하였다. 본론에는 2편 민족주의자 김구, 3편 친미주의자 이승만, 4편 세기의 충돌 김구와 이승만 관계으로 구성하여 각 인물들과 상징되는 장소를 알아보자 한다. 결론은 5역사탐방 로 일반인이 쉽게 유적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위치와 관련 사적지를 기록하고자 한다. 또한, 부록으로 18대 대선후보의 대선출마 장소를 수록하였다. 이 따스한 가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길 기원한다.

 

광복절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역사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nmany0203&logNo=30141938159

http://blog.daum.net/greatestman/6637532

http://blog.daum.net/anisia/12706536

http://blog.ohmynews.com/chookk7/152790

http://cafe.daum.net/buchonjapan/O0HP/1?docid=1HCEQ|O0HP|1|20090826161705&q=1945%B3%E2%20%C0%CC%C8%C4%20%B1%D9%B4%EB%C1%A4%C4%A1%BB%E7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N&qid=020Lx&q=1945%EB%85%84%20%EC%9D%B4%ED%9B%84%20%EA%B7%BC%EB%8C%80%EC%A0%95%EC%B9%98%EC%82%AC&srchid=NKS020Lx

 

 

 

민족주의자의 승리와 좌절 그리고, 부활

 

김구 [金九]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3g1478b

 

일제침략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내며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후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여 통일민족국가건설운동을 전개한 반외세 민족주의자이다.

 

김구(金九, 1876829(음력 711) ~ 1949626)는 대한제국의 교육자이자 종교인이며, 한국의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동학농민운동에 참가, 승려로 활동 이후 기독교에 귀의. 양산학교, 보강학교 교육자로 교편, 해서교육총회 학무총감으로도 활동했다.

 

 

 

1919년 이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의원, 경무국장, 내무총장, 국무총리 대리, 내무총장 겸 노동국 총판 등을 지냈다.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의 동경 의거, 윤봉길의 훙커우 의거 등을 지휘하였다.

 

 

192612월부터 1927년까지, 1930년부터 1933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이후 19403월부터 194733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광복 이후에는 임시정부 법통 운동, 이승만, 김성수 등과 함께 신탁 통치 반대 운동과 미소 공동위원회 반대 운동을 추진, 1948년 남북 협상에 참여했다.

 

김립 암살, 안공근 암살 배후 의혹, 송진우 암살 배후, 장덕수 암살 사건, 1948년 반()이승만 쿠데타 기도 의혹, 김성수의 암살 기도가 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3g1478b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A%B5%AC_(%EB%93%9C%EB%9D%BC%EB%A7%88)

http://cafe.daum.net/cultureSpice/Hvz3/263

http://cafe.daum.net/cultureSpice/Hvz3/252

http://cafe.daum.net/cultureSpice/Hvz3/257

http://cafe.daum.net/cultureSpice/Hvz3/253

 

동학농민운동 참가 (1893 ~ 1895)

산채 은신과 고능선의 가르침 (1895~1896)

만주 김이언 의병단 활동 실패와 귀국

치하포 사건과 수감 생활 (1896 ~ 1897)

개화와 죄수 교육 (1897 ~1899)

공주 마곡사 승려 활동 (1898 ~ 1899)

애국계몽운동 (1900 ~ 1910)

신민회, 안악 사건, 105인 사건으로 수감 생활과 망명 준비 (1910 ~ 1919)

임시의정원 의원경무국장 (1919)

 

 

의정원 의원 재선과 내무총장 시절 (1920 ~ 1921)

임시정부 국무령·국무위원 (1926~1929)

일본 요인 암살 활동(1930~1932)

한인애국단 결성, 이봉창 의거와 이즈모호 폭파 미수

의열단과 윤봉길 의거

만주철도 폭파미수

장진구와 주애보, 수배, 피신 생활 (1932~1933)

옥관빈 암살(1933)

광복군 창설 (1933~1937)

안공근과 결별 , 안공근 암살 사건

중일 전쟁 중의 활동 (1937~1939)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1940~1944)

한국독립당와 주석 재선 (1944~1945)

194593일 임정 국무회의 명의 당면정책 14개조발표

광복초기 정치활동(1945~1946)

113일 귀국

최창학이 기부한 죽첨정(경교장)에서 정치활동 시작

194512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영회 참석

194512월 순국선열추념대회 주관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를 조직과 반탁 결의와 송진우와의 공방전

신탁의 중립주의, 한국민국당의 송진우피살사건

김성수, 조소앙과 함께 반탁운동 개시와 총파업

조선공산당이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 지지

신탁통치 반대 운동 (1946)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에 선출 (1946)

미소공위 반대 운동 (1946)

임정 정치공작대와 백의사 폭탄투척

이승만과의 경쟁

반공주의우익 진영의 주도권을 놓고 그와 경쟁관계에 있었다. 미국의 한인 교포 노동자들과, 청년층 지식인들이 정치자금과 후원금을 송금한 이승만과 비교할 때 정치자금이 부족했던 그는 화교 무역으로 정치자금 마련을 모색한다.

조선일보의 방응모와도 연대하여 경제적 후견인

화교 무역 시도와 실패

20만 달러의 '해프닝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중국국민당 사이에는 모종의 계획 추진과 실패

임정법통과 임시정부의 재편성 (1947)

1947118일 김구의 주도로 우익진영은 전국반탁학련 반탁궐기 1주년을 기념, 대대적인 반탁데모를 계획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촉성중앙회의 공격 (, 국민당)

김구가 위원장으로 있는 반탁투쟁위원회

19471월 반탁독립투쟁회 결성, 반탁투쟁회 위원장 선출과 국민의회를 결성

19473월 임시정부 국무위원 보선, 이승만을 주석, 김구는 부주석으로 추대

반탁, 임정 법통 운동 (1947)

6.23 반탁시위은 한국독립당에서도 일부가 이탈하여 신한민족당과 민주한독당을 결성, 이승만과 김구만 고립, 1947623일 반탁 시위 주도

 

 

한독당의 김구와 김성수등과 우익 진영 단결 노력와 장덕수의 반대

이승만, 한민당과의 합작 실패

장덕수 암살사건

대한학생총연맹 발족

이승만과의 결별

국민회의'한국민족대표단' 구성

<삼천만 동포에게 읍소함>이란 제목으로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반대 성명을 발표

김규식과 공동으로 남북협상을 제안

건국실천원양성소

재판정 출두와 이승만은 장덕수의 암살범을 김구라고 확신했고, 경교장 측 지원요청 거절로 결별

남북 협상으로 선회 (1948)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1948419일 북행길

남북협상 참여

430일 평양,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과 함께 열린 '4김 회동'에 참석

조만식과 남북협상의 실패

1948721일 김규식과 함께 통일독립자 촉진회 결성과 북한·좌익과 선을 긋고자 끊임없이 노력

1948·순 사건 관련 윤치영과 극우세력 공방전

어머니 곽낙원 정릉가족묘지에 안장

경마대회 시상 중 이승만상, 김구상이 즉석에서 생겼다.

194811월 미·소 양군 철퇴 후 통일정부 수립이 가능하다는 담화 발표 말년

백범학교, 창암학교 설립

1949626일 서울의 자택인 경교장에서 안두희 총격 저격(암살)

 

 

75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

백의사와 신성모 국방장관, 채병덕 육군총참모장, 장은산 포병사령관, 김창룡 소령, 김병삼 대위, 김태선 서울시 경찰국장, 김성주 서북청년단 부단장, 정치브로커 김지웅 등이 가담하고, 홍종만, 안두희 등이 하수인이었다는 견해가 있으나 배후는 미궁

대통령 이승만 추도사

19488월 정부수립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장

조가(弔歌)는 시인 이은상

행진곡은 쇼팽의 장송행진곡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뒤에 대한민국장)에 추서

저서로 백범일지》《도왜실기· 백범어록

 

김신

김인과 안미생

김효자

백범김구기념사업회 조직

1960년 고정훈 등에 의해 한민당과 이승만 계열에 의한 암살의혹이 제기

김창숙 등에 의해 시해 진상규명운동

1963년 서울특별시 남산에 동상

19908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국통일상 추서

1998년 백범기념관이 준공

20021022일에 건립

2007115, 2009년 상반기 중 발행될 10만원권의 도안 인물 선정과 논란

2008년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 교과서에 항일 테러 부분이 논란

2009626일 소지품인 회중 시계, 유묵 작품 3, 인장(印章) 3점 및 피살 당시 착용한 혈의(血衣)가 등록문화재 439~442호로 등록

 

1948, 염동진과() 이승만 쿠데타 기도 의혹

1945, 안준생 암살 사주

1939, 안공근 암살 사건 의혹

1922, 김립 무고 (김립 암살 사건) 의혹

1947~1948, 염동진과 만주 폭격 계획 의혹

송진우, 장덕수 암살과 김성수 암살 기도 의혹

김학규와 이승만 암살 계획 실패 의혹

2003김완섭과 쓰치다 조스케와 민간인 살해 논란

1947년 이승만과의 결별 과정과 김구 단정론 철회와 남북협상론

주애보와의 관계

 

 

194510월 선구회(先毆會)라는 단체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를 지목하는 설문조사 결과에 18%가 김구를 지목하였다.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 2위로 집계되었다. 최고의 혁명가 4위였다. 19467월 조선여론협회가 초대대통령에 적합한가를 조사한 설문결과에는 전체의 10.5%를 확보했다 한다. 1948623일 재조사한 결과 2위를 하였다.

 

 

미국은 그를 파시스트로 보고 있었다. 무자비하고(ruthless), 파렴치한(unscrupulous) ,기회주의자(opportunist)로도 묘사하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이봉창, 윤봉길 거사를 성사시켜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린 것을 높이 평가된다. 김구는 이념을 내세워 분열시키는 냉전세력을 비판함과 함께 민족통합을 통한 완전독립국가를 모색했다는 점, 민족과 인류의 현실을 고려하여 문화국가가 되기를 주장했다는 점 등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반탁투쟁과 반공주의 확산에 기여한 뒤에, 뒤늦은 행동이었다는 부정적인 시각들도 존재한다.

 

1999년 한겨레21이 실시한 '20세기 정신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설문조사에서 백범은 가장 많은 사람이 꼽은 인물이었다. "사상가라기보다 정치지도자에 가까운 백범은 역사 속에서 민족자주를 위한 실천을 치열하게 전개한 점에서, 많은 응답자들로부터 한국 민족주의의 정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1946년 초 김일성을 살해하려 할 만큼 극단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이후 많은 지도자가 있었고 군대 편성 계획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실현시킨 이는 김구 뿐“ "조선에서 멀리 떨어진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만들어 낸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혼란스러웠던 중국에서 정치적 난민에 가까웠던 한인 사회를 유지하고 임시정부 등 독립 운동의 기반을 갖춘 것은 김구의 면모를 보여 주는 사례

 

이승만과 김구는 민족의 쌍벽이었고 민족진영 인사들은 두 영도자를 모시고 반석위에 놓인 것과 같은 안도감과 신뢰감을 가지고 무조건 두 분이 영도하는 대로 마음놓고 따랐던 것이다.

 

 

김구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기 정체감이 약하였으며, 유학·동학·불교·기독교 등을 두루 편력하는 사상적 방황을 경험하긴 했지만 전통적 가치인 유학적 또는 의병적 신의를 중시하는 완고함을 지닌 행동지향형의 인물이었다고 평가하였다. , 그가 무분별한 반공주의 확산에 기여했다고 보았다. 격렬한 반탁은 모든 반대세력에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라는 예기치 않은 정당성을 얹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김구는 독립운동에 족적을 남겼지만 민족만 주창했을 뿐 건국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해방 정국에서 미아가 된 저항민족주의자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이해하고 격렬한 반탁투쟁을 선도해 이른바 반탁 쿠데타까지 나아갔다. 반탁투쟁은 해방공간 좌우대립구도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결국 남북 분단으로까지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테러리즘 논란

20085월 출간된 뉴라이트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에서 그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여 물의를 빚었다.

 

권위주의적인 행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정치적 실패에 대한 비판

이범석은 그가 '끝까지 대의명분론을 주장하면서 민족통일을 관철하고자 하여 국제정세를 외면하다시피 오직 소신대로 나간 분이 백범 선생이다. 그런 까닭에 이박사는 마침내 현실의정치가로 일어섰고, 백범 선생은 이상의 정치가로 주저앉게 됐다'고 비판했다.

 

 

윤치영은 그는 김구 단정 수립 반대를 호되게 비판했다. 또 김구 생전에 그가 임정의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200316대 대통령 노무현은 그를 '실패한 정치인'이라 비판하였다. "과거에는 김구 선생이었으나 정치적으로 성공을 못해 그 뒤 링컨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이승만과 김구의 비교

이승만과 김구 모두 구한말에 과거에 응시해 낙방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었다. 낙방 후 이승만은 개신교, 김구는 동학과 인연을 맺었다. 이승만은 친미국 노선으로 갔고, 김구는 친중국 노선으로 갔다. 훗날 국민당 장개석의 중화민국은 국공내전에서 패퇴하여 몰락한 반면, 미국의 세계적 패권은 더욱 강화되어 갔다. 미국은 비교적 다원체제 였던 만큼 이승만과 미국의 갈등은 미국의 어느 한 부분과의 갈등이었을 뿐, 큰 흐름은 친미노선을 선택한 이승만에게 유리하였다. 강준만은 미국의 패권장악과 중국의 몰락을 이승만의 승리와 김구의 패배 요인으로 보았다. 이승만에 비교해서 웅변력이 떨어졌던 김구는 대중 선동에 있어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김구는 경마장을 즐겨 찾았는데, 1946년 모친 곽낙원여사의 시신을 중국에서 운구하여 정릉뒷편으로 이장할 때 기마단이 운구를 호송했기 때문이다. 운구 호송을 고마워한 김구는 계속 경마장을 찾았다고 한다. 이승만도 부인 프란체스카여사와 함께 수시로 경마장에 들렀다. 경마가 있는 날이면 3층 귀빈실은 항상 북적거렸다. 마사회에서는 이들을 극진히 예우했으며, 예정에 없던 상장이나 상배를 마련하여 레이스를 하기도 했다. 한편 이승만과 김구가 자주 찾는것에서 '이승만상', '김구상'이 유래했다고 한다.

 

 

김구는 이승만과 서로 매우 친분이 두터웠다. 공석에서도 김구는 이승만한테 '형님'이라는 소리했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좋았다. 그러나 김구가 장덕수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었을 때 이승만이 도움을 거절한 일로 이승만과 김구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장덕수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어 법정에 증인 자격으로 서게 된 김구는 자신이 법정에 서지 않게 해달라고 이승만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승만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승만이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국민회의는 방관하면서 한민당과 연대하며 독자적으로 '한국민족대표단'을 구성하자 김구는 크게 분노하였다. 19471222일 김구는 단독정부 절대반대와 '한국민족대표단'의 해산을 주장하였다. 이승만과 김구의 연대에 비판적이던 한민당은 이 사건을 정치적인 호재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김구의 항의로 한국민족대표자회와의 합동작업이 재개되었지만 한민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장덕수가 암살되었을 때 이승만은 김구를 배후로 지목했고 그후 김구는 검찰에 연행되어 수모를 당한 후로 이승만과의 결별을 결심했다. 윤경빈에 의하면 훗날 '단독 정부 수립 운동'이냐 '남북 통일 정부 운동'이냐 노선을 두면서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고 증언하였다.

 

 

백범일지 윤문(1947, 국사원)

김구의 저서 백범일지의 교열과 윤문은 이광수가 하였다.

나의 소원

 

도왜실기(1932, 엄항섭 정리)

 

백범어록(2008, 도진순 주해)

 

 

남북협상 참여 목적

1940년대 이후 김구의 남북협상 참여는 통일과 조국애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김구의 남북협상 참여 과정이 정치적 전술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승만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모든 정치적 전망이 사라진 시점에서 새로운 정국 반전을 노린 것이라는 것이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을 신탁통치로 이해하고 격렬한 반탁투쟁을 선도해 이른바 반탁 쿠데타까지 나아갔다. 반탁투쟁은 해방공간 좌우대립구도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결국 남북 분단으로까지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김구는 백의사등을 통해 대북 타격정책을 일관되게 수행했다. 3.1절 경축식 폭탄 투척사건 이후 김구는 북한에서 불구대천의 원수로 낙인찍혔고, 북조선은 이후 그를 매도하였다. 해방공간 내내 반공, 반소로 일관한 김구의 남북연석회의 참가는 이승만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모든 정치적 전망이 사라진 조건에서 취해진 정치전술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외교 문제

외교 문제에 소홀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택휘는 중국 공산당과의 협력 부재나 당시 강대국인 소련에 대해 배타 정책을 쓴 것은 외교적 투박함이라고 지적했다. 신용하는 중국 국민당과 군사 협력 관계에 있었던 상황에서 백범이 공산당과 공식 관계를 모색하기는 어려웠다당시 장제스(蔣介石)를 설득해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명문화한 것은 백범 외교의 진가라고 반박하였다. 한시준도 백범이 광복군의 연합군 OSS부대 참가를 주도한 것은 승전 후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하려 한 것이라며 이는 백범이 외교에서 상당한 전략을 구사했음을 보여 준다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을 통해 미국과도 외교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반론도 있다.

 

애국가에 대한 관점

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일부 개사했다는 소문때문에 애국가의 채택을 놓고 임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작사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그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일종의 독재체제로 이해하였다. 1947년 발표한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김구는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또한 임시정부의 존재를 좌파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역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아나키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원인이 됐다. 1938년 이후 장졔스가 국공합작 분위기에 편승하기 위해 김구와 김규식, 김원봉을 소환하여 합작, 협력하라고 하자 좌파의 임정입각을 수용하게 된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외세지향적인 사고방식으로도 생각했다. 1919년 임시정부 이동휘로부터 공산주의혁명에 동참해달라는 권고를 받았을 때는 소련 등 외국 세력에 기대는 것이라며 참여할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여순 사건에 대한 관점

김구는 여순 사건을 반란, 테러로 규정했다. 1028일의 공개 담화에서 김구는 '순진한 청년들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였으며', '반도(공산주의자)들의 목적은 북한 정권을 남한에 연장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규정했다. 관련 담화에서 김구는 '여수, 순천 등지의 반란을 '집단 테러 활동'으로 규정하고 "부녀와 유아까지 참살하였다는 보도를 들을 때에 그 야만적 소행에 몸서리처지지 않을수 없다"고 발표하였다.

 

광복군 [光復軍]

국민대표회의 [國民代表會議]

남북협상 [南北協商]

노병회 [勞兵會]

대한민국임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면학회 [勉學會]

한국국민당 [韓國國民黨]

전국연합진선협회 [全國聯合陳線協會]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한국유일독립당촉성회 [韓國唯一獨立黨促成會]

 

http://www.kimkoo.or.kr/02diary/sub.asp?pagecode=m02s01t05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A%B5%AD%EA%B0%80%EB%B3%B4%ED%9B%88%EC%B2%98

http://www.kimkoomuseum.org/

http://kimkoo.or.kr/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8101041511&code=92030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041001155137&Section=01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4/05/001065000200405101843248.html

http://berkeleyopinion.com/276?top3

http://thinkdifferent.tistory.com/4549?top3

http://blog.daum.net/cognos57/15969992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2&articleId=67397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2&articleId=66015

http://blog.daum.net/ljs2000y/1596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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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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