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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우물 은행나무 이야기

草霧 2014. 2. 10. 11:57

 

 

 

서울 도심에 440년 된 은행나무와 우물이 있다 ?

 

성주우물 은행나무 이야기

 

서울 도심에 440년이나 은행나무와 우물이 있다 ?

 

   불가의 ‘염궁문(念弓門)’이라는 말이 있다. 수행자의 마음이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가 보다. 바쁜 일상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수없이 지나 다녔던 우리 가양동에 400여년의 역사의 향기와 아름다운 이야기를 간직한 ‘성주우물과 은행나무’가 있었다니..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3번 출구에서 한강쪽으로 3분 정도 직진하다가 2번째 골목에서 우회전하여 50m 정도 걸어오면 오른쪽 편에 작은 공원을 볼 수 있다. 비교적 잘 다듬어진 이 소공원(小公園)의 언덕에는 노거목(老巨木)인 ‘은행나무’가 있고 그 아래쪽에는 옛 ‘ 성주(城主)의 우물터’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약 440년된 노거목(老巨木)으로서 이 동네 유지들이 1996년 1월 13일에 이 나무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였고 바로 옆에 ‘성주(城主) 우물’이 있어서 ‘성주우물 은행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 줄기 하단에 큰 동공이 생기고 죽어가는 상태여서 이 나무를 살리려고 ‘성주우물 은행나무 보존회’를 결성하였고 1,200만원이라는 큰돈을 모아 외과적 시술을 한 결과 비교적 건강하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나무는 암나무로서 수고 약 20m, 지하고(枝下高) 약 4m, 뿌리목줄기 둘레 5.5m, 가지는 동으로 15m, 서로 7m, 남북으로 8m에 이르며 특히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동네 어르신들에게 ‘무더위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여름철 은행나무 모습>   < 보호수 지정 팻말>      <겨울철 은행나무 모습>

  이 은행나무는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400여년 넘게 이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다. “옛날 한 선비가 이곳을 지날 때 큰 구렁이가 까치 새끼를 덮치는 것을 보고 활을 쏘아 그 구렁이를 죽이고 새끼를 살렸다. 그런데 그 날 밤, 선비의 꿈에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당신은 내일 한강을 건널 때 큰 풍랑이 일어나 배가 뒤집혀 죽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낮에 당신이 죽인 그 구렁이는 바로 내 남편으로 함께 승천(昇天)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제 남편을 잃고 말았다. 오늘 밤에 한산사 종소리를 듣지 못하면 나는 영영 구렁이로 끝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종소리를 듣게 되면 당신은 무사히 강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선비는 아무 탈 없이 한강을 건넜고, 어제 밤 꿈속의 일이 생각나서 한산사로 올라갔다. 한산사의 종 주위를 살펴보다가 머리로 종을 치고 죽어간 까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치악산의 까치전설과 비슷하며 지금도 인근에 그 선비가 건넜다는 공암진(孔岩津) 나루가 있다.

  또한 영조 16년(1740년)에 65세의 나이로 ‘양천 현령’으로 부임한 ‘겸재 정선’이 현령 재임 중에 남긴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에 그려져 있는 명목(名木)이다. 지금도 인근 주민들은 이 은행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여기고 존중하고 하고 있으며 이 나무 아래에 촛불을 켜고 치성(致誠)을 드리는 일이 흔히 있다고 했다(양00 할머니, 75세). 그리하여 강서구에서는 1988년 4월 18일자로 ‘구(區) 보호수(서16-9)’로 지정하였다.

  이 은행나무 언덕 아래에는 ‘성주(城主)우물터’가 있다. 옛날 어떠한 가뭄에도 마른 적이 없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샘물로서 이 고장을 다스리던 수령을 ‘성주(城主)’라고 불렀던 시대에 성주가 사용하면서 ‘성주(城主)우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성주 우물터 모습 >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은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우리나라의 연간 강수량은 1,245mm 정도로 세계평균인 880mm보다 많은 나라이다. 하지만 강수량의 2/3가 여름철에 집중된 까닭에 봄과 가을에 가뭄이 드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식수와 생활용수의 대부분과 일부 농사용 물까지를 우물에 의지했다. 경복궁 안에도 본래 24개의 우물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우물은 생명(生命), 정화(淨化), 농경(農耕), 왕권(王權) 등의 상징성을 가진 곳으로 물자를 교환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마을공동체의 중심공간이었으며 우물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 끼리는 ‘두래패’을 결성하여 노동 나눔의 문화센터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은 상수도 보급으로 인하여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나는 일은 옛 추억이 된지 오래다.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서있는 老巨木인 은행나무와 공동체 삶의 중심공간이 되었던 우물이 함께 있는 ‘가양동의 소공원’, 앞으로도 잘 보존되고 관리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현재 구청에서 ‘성주우물 은행나무’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가 설치되어 있지만, 은행나무의 까치전설과 옛날의 우물이 우리 조상들의 삶에 어떠한 역할을 했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담은 안내판을 추가 설치한다면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소공원’으로서 인근 주민들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