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하루를 기꺼이, 기어이 기뻐한다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
유머 감각은 모든 상황에서, 심지어 죽음에서도 균형 감각을 유지하게 해 주지요 -알리스 헤르츠좀머(Alice Herz-Sommer) 《백년의 지혜》 중에서 |
[서울톡톡] 나는 '사람'이 궁금하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바닥이, 그 가없는 비밀이 궁금하다. 그래서 조금은 끔찍한, 아무래도 괴로운, 차라리 외면하고픈 '사람의 일'에서도 끝내 눈을 뗄 수가 없다.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 또 다시 '수용소의 기록'을 뽑아낸 것 역시 그런 잔인한 호기심, 서글픈 의문 때문인지 모른다.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숙제를 거듭거듭 던진다. 역사와 정치는 물론이거니와 그로부터 철학과 문학, 심리학과 사회학이 새롭게 쓰였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잔혹했던 순간이, 역설적으로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성찰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903년에 태어난 알리스 헤르츠좀머는 2014년 현재 112세로 '살아있다'. 마흔 살의 그녀는 프라하에서 베를린 방향으로 6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작은 도시 테레진에 자리한 수용소에 갇혔다. 피아니스트였던 그녀의 죄목은 단순하고도 명확한 하나, 유대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출신의 예술가와 지성인들과 함께 허기와 추위와 질병과 고문과 죽음에 시달렸고, 어머니와 남편을 잃는 슬픔을 겪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 테레진 수용소가 해방되었을 때, 수감되었던 15만 6,000명 중 1만 7,505명이 생존했다. 그곳에 징발되었던 1만 5,000명 이상의 어린이 중 마지막까지 남은 아이들은 100명에 불과했다. 그 1만 7,505명 중 한 사람이 그녀였고, 100명의 어린이 중 하나가 그녀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알리스 헤르츠좀머의 삶이 인상적인 것은 '끔찍한 경험'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지독하게 낙천적이다. 열렬하게 삶을 사랑한다. 그래서 수용소에서도 100회 이상 음악회를 열었고, 내일이면 어디론가 사라질지도 모를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녀의 삶은 녹록치 않다. 집과 재산을 모두 잃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여든이 넘어 아들이 돌연사하는 참척의 고통까지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다. 백 살이 넘어서도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바흐와 베토벤과 쇼팽을 연주하며, 주어진 하루를 기꺼이, 기어이 기뻐한다.
그녀가 칭송하는 유머는 위태로운 삶의 줄타기를 견뎌내는 균형추다. 사방에서 내 뜻과 상관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줄은 자주 흔들리지만, 뒤뚱거리는 채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나마 비척비척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죽음의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생환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때의 유머를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영혼의 무기'라고 부른다. 시시때때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모욕당하며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살아있기에 웃었고, 웃었기에 살아있었다.
삶이 고통스럽기에 웃어야 한다. 고통스러울수록 더 웃어야 한다. 내가 약해서 웃어야 하고, 상대가 악해도 웃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웃는 사람이 강한 것이다. 진짜 승리는 그곳에 있다.
'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 > 도둑질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위 5%의 비법 25… 행정 7급 (0) | 2014.02.07 |
---|---|
서울시 ‘찾아가는 공공 재무컨설팅’ 서비스 본격 실시 (0) | 2014.02.06 |
서울시, '앱 개발 전문가 양성 과정' 24명 모집 (0) | 2014.02.04 |
‘말하는 박물관’ 2월 프로그램 (0) | 2014.01.28 |
최달용, 이용범 - 도시의 기억 (0) | 2014.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