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한국미술

대리석전당에 핀 황금 꽃, 신라전 "한국의 황금왕국, 신라"

草霧 2014. 1. 22. 15:51

 

 

 

 

 

  • 대리석전당에 핀 황금 꽃, 신라전 - <한국의 황금왕국,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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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은정(미술평론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신라전
    Silla, Korea’s Golden Kingdom
    November 4, 2013 – February 28, 2014
    Gallery199, Metropolitan Museum of Art


    갤러리199 전시장 입구 전경


      50번가 82길에 면한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중앙 홀 안내데스크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 우회전. 중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동양미술 전시장이다. 그런데 전시 ‘신라’에 대한 안내가 없다. 씩씩하게 전시장 확인도 않고 곧바로 올라온 멋쩍음을 뒤로 하고 <신라전>이 어디냐고 물으니 아래층이란다. 한국 작품 전시니 한국미술품 중에 있으리라는 추측은 오해였다. <신라전>은 중앙홀을 들어섰을 때 좌측인 그리스·로마 조각들이 즐비한 갤러리를 따라 들어가다 장식미술갤러리에 들어서기 전 우측에 있는 199갤러리, 이른바 특별전시실 중에서도 가장 최고라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금이 넘치는 동방의 이상향, 신라
      하얀 대리석 조각상들 사이로 언뜻 비치는 좁은 문 밖의 사람들을 유혹하는 푸른 빛은 전시장 진입로에 설치된 디지털 화면의 ‘황남대총의 사계’이다. 아름답지만 지리할 정도로 많은 대리석상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자연의 영상은 황금의 나라에 들려보라고 관객에게 바람결 같은 잔상을 보낸다. 시원한 호형(弧形)의 화면은 관람객을 신라의 어느 장소로 이동시킨다. 가로로 펼쳐진 화면은 커다란 무덤을 나무와 꽃, 폭포와 연못과 대비하여 그 크기를 강조하여 실상 ‘당신이 지금 보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일러준다. 거대한 크기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숭고의 감정은 관객이 신라를 경외감으로 바라볼 것을 기대하는 듯도 하다. 커다란 호형의 방을 지나 다시금 ∾ 형태로 이어진 호형의 방에서는 신라의 위치에 대한 안내를 받는데, 단연코 대륙으로서 유라시아의 일부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강조되고 있다. 


    입구의 황남대총 디지털 이미지


      마치 둥근 두 개의 봉분이 붙여진 표주박형 무덤을 돌아보듯 그렇게 들어온 전시장에는 금관과 귀걸이를 비롯하여 불상, 토기와 전돌, 팔부중상이나 석불, 유리잔 등 다양한 신라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으며 동시에 주변국과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들이 작은 전시실 안에 비교적 촘촘히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다.
      시선을 줄 수밖에 없는 장소에는 신라의 지배자가 샤먼과 유사한 성격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게 하는 황남대총 출토 금관과 요대가 자리잡고 있다. 조식형 금관장식과 관모 등은 신라의 의례를 반영하는 자료로 제시되며 동시에 동아시아 국가 중 특징적인 신라의 관식임도 알려준다. 보문동 합장묘 출토 귀걸이는 실크로드를 거쳐 공유된 기술로서 금알갱이를 연이어 놓는 누금기법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특히 접합흔적을 남기지 않는 높은 기술수준을 보여준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누금기법을 재연하는 비디오를 상영하는 화면 앞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 기술의 서구와 신라의 공통점에 대해 흥미롭게 시간을 보낸다. 


    입구에서 들어오자마자 가장 눈길을 끌게 전시된 신라금관과 요대


    보문동 합장분 출토 귀걸이 전시 방식.
    전시벽면과 거리를 두어 입체감을 드러나게 하였다.


     


    경주 월성로 가-13호분 출토 곡옥장식 가슴걸이


     


      금보다 빛나는 미소
      하지만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발길을 멈추는 곳은 빛나는 황금보관 앞보다는 흙으로 빚은 항아리들, 그리고 작은 흙인형 앞에서이다. 배가 부른 신라토기와 고배, 그리고 등잔 등 이형토기들이 밝고 맑은 빛 아래서 투명해보일 정도로 인상깊게 전시된 덕일 것이다. 그것은 비록 그리스 도기보다 정교하지 않지만 기교를 넘어선 친화적인 자연의 맛을 풍기고 있다. 더불어 왼쪽 손을 들어 입을 가리고 웃는 긴 소매옷을 입은 여인의 초승달 같은 눈매는 적확한 조명 덕인지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다. 그 옆에 두 손을 모은 채 팔자수염을 하고 날카로운 눈매를 보이는 관복을 입은 문인, 부리부리한 눈에 구렛나루가 더한 수염을 한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관상은 자그마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 무심한 듯 정교한 표현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여러 토용 중 세 인물이 각기 다른 인종을 보여주는 것을 택한 것은 신라의 국제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보인다.


    황룡사 출토 사리기



    신라 토용


    구정동 방형분 기둥 서역인형 신장상

     


      고신라에서 신라로 들어서 새로운 종교의 세계로의 진입 즉 불교의 도래와 함께 전개되는 다양한 불상의 양식을 소개하는 ‘새로운 전통’은 신라가 국제적인 교류가 더욱 활발해진 계기를 확인하게 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불상들은 ‘황금왕국’이라는 주제 아래서 신라의 불상을 국제적인 양식으로 조명하게 한다.


    통일신라 전돌과 삼화령미륵삼존불상 중 보살상


     


    담엄사 팔부중상 중 건달바상과 아수라상


      전시장 한쪽 벽에 독자적인 방을 만들어 배치한 국보83호 반가사유상은 전면 중심으로 전시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처럼 사방을 둘러보기에는 그리 편치 않은 조건이고, 그 앞에 앉아 반가사유상을 사유할 공간도 없다. 하지만 설명문은 충분히 이 조각상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인지에 대해 알리고 있으며, 서서 바라보아도 그 미소를 확인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높은 대좌는 공간구성의 협소함을 상쇄시킨다. 황복사지탑 발견 금제 아미타불좌상, 트리반가가 경쾌해 보이는 통일신라의 불상들 그리고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을 비롯한 판불과 여러 불상들은 신라 불상의 연대기를 완성할 수 있을 정도로 압축적이다. 출구로 이끄는 방에 위치한 보원사지 출토 철불의 거대한 위용은 방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고, 직접 보지 못하는 석굴암 계열 불상의 장대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반가사유상 전시장면


    전시장 마지막 작품인 보원사지철불


      세계를 향한 미술, 과거에서 현재로
      석굴암의 제작과정을 도식화하여 디지털로 보여준 섹션은 5분 이내의 짧고 역동적인 화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신라의 유리 제품은 로만글래스와 유사하며 서역에서 사용된 그릇과도 연관되어 있다. 인도에서 발원한 문양이 장식된 사리기와 스키타이 동물장식 흔적이 남은 황금 그릇과 금동신발의 문양들은 화려하고도 영광스런 과거를 보여주는 듯하다. 계림로에서 발견된 황금칼은 보석이 박힌 다양한 감옥기법과 누금기법으로 흑해연안 국가와의 교역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 칼은 쿰투라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허리에 찬 칼과 유사한 양식으로 실크로드상에서 신라가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음을 보여준다.


    석굴암 디지털이미지를 보는 관객


      전시실이나 작품 설명문 곳곳에서 발견되거나 유추되는 유라시아에서의 신라가 갖는 지정학적 위치성의 강조는 국제적인 장소에서 신라라는 과거 어떤 나라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제공하는 듯하다. 문화사적 의미에서 동서양의 교역을 확인하는 자료로서 신라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이 갖는 독자성은 국제성으로 확산되고 영향관계 안에서 유추된다. 

      전시 전체는 3개의 큰 주제인 <고분에서 출토된 보물>, <수입사치품 및 이국적인 도상> <불교:새로운 전통>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흐름은 국제적인 교유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신라의 황금유물을 통하여 국제성을 강조하는 것은 세계적인 신라의 위치를 확인할 수도 있지만 신라의 독자성은 약회되어 보일 수 있다는 한계도 있음을 감지한다.

      흰색의 우아한 신전같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안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술작품인 그리스 조각상들을 지나 만나는 신라의 미술은 반짝반짝 빛나고 활기차다. 아름답지만 조용하기만한 작품들 속에서 갑작스레 햇빛에 반사되는 모래알처럼 반짝거리는 작품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더욱이 자연이 혹은 과거의 사건이 거대한 움직임을 동반한 속도로 다가오는 디지털 영상들은 죽어있는 것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먼 곳의 것을 가깝게 느끼게 한다. 지금 전시장에서 신라를 빛나게 한 것은 과거의 황금이 아니라 대한민국 기술의 현재인 영상의 힘일지도 모른다.          



    글 조은정(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