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문화평론가) | 2014.01.21
[서울톡톡] 방송인 에이미가 성형부작용을 호소하자, 현직 검사가 직접 해당 병원장을 만나 의료 과실에 대해 보상하도록 한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제의 검사는 과거 에이미를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힘을 써줬다'고 한다. 그 검사는 결국 변호사법 위반 및 공갈 등 혐의로 구속되고 말았다. 현직 검사가 이런 혐의로 구속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사태다.
이 사건은 해당 병원장이 프로포폴 투약 후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휴대폰에서 검사가 보낸 메시지가 발견되어 드러났다고 한다. 여러 가지 자극적인 소재들이 겹친 한 편의 막장드라마와도 같은 이야기여서 큰 화제가 됐다. 게다가 단순한 연예계 화제를 넘어 사회이슈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신문사에서 이 사건과 관련된 사설을 내기도 하고, 정치인도 관련 논평을 할 정도다. 일종의 국민적 공분이 나타나고 있다.
일반 서민에게 검사는 어렵고 멀기만 한 존재다. 고압적인 이미지도 강하다. 그런 검사가 에이미에겐 왜 그렇게 친절했을까? 이것은 마치 공권력이 유명한 사람만 특별히 배려해준 것 같은 모양새다. 검사에게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하는 일반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적 공분이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인이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은 그런 과정에 질려 지레 포기하고 만다. 그런데 검사는 병원장에게 간단하게 보상을 받아냈다. 그만큼 권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런 권력을 유명하거나 힘 있는 사람들끼리만 향유한다는 느낌, 일반 국민은 철저히 소외되어있다는 느낌. 이미 그런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데 이번 에이미 해결사 검사 사건이 더욱 국민감정에 불을 질렀다. 이렇게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에 신문사에서 관련 사설까지 내며 우려했다고 할 수 있다.
특권층의 '해결사'가 아닌 온 국민의 해결사 돼야...
영화 <변호인>이 마침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외친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이런 상식의 외침에 천만 관객이 감동한 것도 앞에서 언급한 현실과 관련이 깊다. 명분상으론 권력의 주인이지만 현실적으론 권력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국민들. 의료상의 사고를 당했지만 병원 측에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보상도 못 받았던 국민이나 검사의 고압적인 태도에 실망했던 국민이라면, 이번 에이미 해결사 검사 사건에 분노가 클 것이다. <변호인>은 우리가 바로 권력의 주인이며 국가의 근본이라고, 그러니 박탈감을 느낄 이유도 권력에 대해 거리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고 격정적으로 외친다.
이른바 '사모님 청부살인' 사건도 2013년에 국민감정을 크게 자극한 일이었다. 여대생을 청부살인한 가해자인 유력가문 '사모님'이 수감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일반 사람에겐 너무나 고통스럽고 건강을 해치기까지 하는 수감생활이 사모님에겐 마치 요양생활 같았다. 이런 일들이 자꾸 터지면 권력에 대한 소외감, 국민적 분노가 쌓여갈 수밖에 없다. 분노를 자극하지 않으려면 에이미든 사모님이든 검사님이든, 유명인과 상층부 인사들이 보다 처신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분노가 집약된 것이 바로 '을'의 정서인데, 다수 서민의 공감을 얻어야 하는 대중문화계는 자연스럽게 을의 정서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 이민호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드라마 <시티헌터>는 상층부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것이 한국과 중국의 차이를 말해준다. 중국은 권력비리를 대중문화가 파헤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한다. 한국은 권력에 대한 분노를 대중문화가 표현하는 수준까지는 발전했다. 이런 표현이 잘 되면 <변호인>처럼 흥행이 터진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아예 분노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까지 권력이 공평해지는 일일 게다. 검사는 특정인의 해결사가 아닌 온 국민의 해결사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