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라는 폭력, `일베에 반대하는` 폭력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8
[서울톡톡] 새해 벽두부터 또 한번 일베 폭풍이 지나갔다. 먼저 크레용팝의 엘린이 일베를 상징하는 손동작을 했다는 의혹이 일었고, 과거 '운지' 발언을 한 김진표의 <일밤-아빠! 어디가?> 합류 소식에 네티즌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으며,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찌릉찌릉'이라는 '일베' 용어로 의심되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공격당했다.
사람들이 일베를 불편해하고, '일베어'라는 신조어가 사용되는 것에 강력히 반발하는 것은 지극히 건강한 현상이다. 일베에선 지역차별, 여성비하, 인종혐오 같은 반사회적 반인륜적 행태가 나타난다.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국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듯한 흐름까지도 나타난다. '민주화'라는 단어가 희화되기도 한다.
백색테러 초기라고 할 수 있는 행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얼마 전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신드롬이 있었을 때, 대자보를 찢은 인증샷이 등장했는데 바로 이런 것이 테러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민주공화국의 공론장에선 누군가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들 경우, 논리적으로 반박해야지 그 주장 자체를 가로막으면 안 된다. 대자보를 찢어버린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이런 것이 용인되다가는 결국 마음에 안 드는 주장을 한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래서 테러 초기, 혹은 전 단계라고 한 것이다.
아기용 젖꼭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출고 전에 자신의 입으로 빨기도 한다는 인증으로 이른바 '찌찌파티'(게시자) 사태가 벌어져, 미국 본사에서까지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 다음엔 호빵 찜통기에 담배를 찐다는 인증샷이 나타나 파란이 일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 보면, 도무지 아무런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옳고 그름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감정을 배설하는 데에만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일베와 일베어 사용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한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알리고,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MBC <기분 좋은 날>에선, 화가 밥로스의 사진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일베식 이미지가 방송된 적이 있다. XTM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SBS에선 정규 뉴스 시간에 그런 사건이 터졌다. 한 유명 대학원 홈페이지에서 학교 상징 이미지가 일베식으로 바뀐 사건도 있었다.
'일베충'이라는 낙인을 찍고, 집단적으로 공격하며...
이런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지는 건 우리 사회 곳곳에 일베식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력하게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연예인들이 이런 유행에 동참하면, 일베어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강력대응해야 한다.
문제는 그 강력대응의 양상이 매우 '일베식'으로 벌어진다는 데 있다. 일베는 약자에 대한 분풀이, 증오, 낙인찍기, 집단공격 등이 나타나는 곳인데, 지금 일베가 싫다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도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일베어와 연관된 연예인이 나타나면 '일베충'이라는 낙인을 찍고, 집단적으로 공격하며 증오를 표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평소 일베에 대한 악감정을 만만한 연예인에게 푸는 것이기 때문에, 약자에 대한 분풀이라는 점에서도 일베와 비슷하다. 결국 일베도 폭력, 일베반대도 폭력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한국 인터넷 문화의 비극인데 크레용팝이 가장 큰 피해자다. 크레용팝을 일베와 엮어서 집단적으로 때리는 것은 최근 1년 사이 네티즌이 가장 즐기는 레저 중의 하나가 되었다. 테러와 다름없는 섬뜩한 레저다.
물론 네티즌이 김진표의 <아빠 어디가?> 출연에 반대하는 것은 경우가 좀 다르긴 하다. <아빠 어디가?>는 순수와 휴식이 핵심적인 코드이기 때문에, 설사 일베가 아니라고 해도 강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람이 출연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논란이 생기면 휴식하며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색깔이 강한 출연자는 <아빠 어디가?>보단 <썰전> 같은 프로그램에 더 어울릴 수 있다.
그런 점을 제외한 연예인 일베어 사태는, 그것이 해당 연예인에 대한 낙인찍기와 증오로 이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너는 일베충이지?'라는 낙인이 마치 '너는 빨갱이지?'라는 낙인만큼이나 폭력적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증오보다는, 일베어 사용의 문제를 알리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해당 연예인은 그런 지적을 받을 경우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으면 된다. 물론 정말 진심으로 반사회적, 반인륜적 의도를 가지고 일베어를 사용한 경우엔 간단히 넘어갈 수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연예인은 아무 생각없이 그저 재미있는 신조어 정도로 일베식 용법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 문제점을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문제 지적을 넘어서 아예 매장해버리려는 흐름까지도 나타나는 게 문제다. 일베식의 낙인, 증오, 집단공격이 아닌, 보다 민주공화국에 어울리는 합리적 이성과 관용이 넘치는 인터넷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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