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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6

草霧 2014. 1. 7. 20:11

 

 

 

`등골 브레이커`, 누구 탓인가?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6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12.31

 

 

한 마트에서 펼친 `캐나다구스` 할인전 (사진:뉴시스)

[서울톡톡] 최근 1년여 만에 '등골 브레이커'란 말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작년에 노스페이스 패딩 점퍼가 대단히 비싼데도 불구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그것 때문에 부모의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해서 나온 말이 '등골 브레이커'였다. 하지만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그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이젠 초고가 패딩의 유행이 끝났다고들 여겼다.

그런데 올 겨울엔 캐나다구스와 몽클레어라는 수입 브랜드 패딩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다시금 등골브레이커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백화점은 물론이고 대형쇼핑몰마다 캐나다구스나 몽클레어 할인전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20~4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으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한다.

문제는 가격이다. 40% 할인으로 매진된 패딩의 경우, 그렇게 할인했는데도 100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과거 '등골 브레이커' 논란을 일으킨 노스페이스 패딩은 그 가격이 30~70만 원 선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유행 패딩의 가격이 100만 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선 청소년들이 만든 패딩 계급도가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엔 30만 원 짜리가 '찌질이'로 분류되고, 50만 원대 제품이 '일반인', 110만 원 이상부터 '등골 브레이커', 170만 원 대 제품이 '대장'으로 분류되어 있다. 유행 패딩의 가격이 너무나 빨리 치솟고 있기 때문에, 내년엔 얼마나 비싼 제품이 새로운 '등골 브레이커'로 등극할지 걱정이 앞서는 상황이다.

고가 패딩을 향한 열망 때문에 아이들이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다. 지난 달엔 한 청소년이 친구 집의 창살을 부수고 침입해 70만 원 짜리 패딩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가 붙잡혔다. 일진들이 만든 '패딩탈취단'도 있다고 한다. 한 아버지가 자녀에게 고가 패딩을 사주기 위해 새벽일에 나섰다가 사고로 숨진 일도 있었다.

패딩에서 시작된 청소년 명품 열기는 다른 부문으로 파급돼 요즘엔 헤드폰도 50~60만 원 짜리 제품이 유행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 가방도 수십만 원짜리 제품이 유행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한국 청소년 사이에서 유명 브랜드를 향한 열망이 나타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당시 조다쉬 청바지를 필두로 해서, 나이키, 아디다스, 프로스펙스 등의 브랜드가 부각되며 청소년을 유혹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유명 브랜드 제품의 가격이 몇 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90년대에 10만 원 짜리 청바지, 30만 원 짜리 점퍼 등이 물의를 빚었지만, 그런 브랜드를 입고 다니는 학생은 열 명 중의 한두 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훨씬 비싼 제품들을 대단히 많은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상황이다. 유명 브랜드를 걸치지 않은 학생은 왕따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수많은 어른들이 청소년의 '등골 브레이커' 열풍을 개탄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청소년을 그렇게 키운 건 어른들 자신이다. 아기 때부터 어머니들이 명품 유모차 경쟁을 벌이면서, 겉으로 드러난 상품의 위세로 자신을 과시하는 사고방식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10살도 안 돼 아직 명품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명품옷이며, 명품가방을 안기는 것도 결국 어머니들이다.

한국의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교육제도는 경쟁지상주의 체제다.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점수 경쟁만을 하며 자라게 되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게 옷 가격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쟁교육은 아이들에게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보다 남들에 대한 비교우위를 더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세뇌시켜 결국 아이들을 명품과시병 환자로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점수비교만을 당하며 큰 아이들은 자존감이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내적인 가치가 아닌 외적인 상품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태도를 만들어낸다. 결국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강요한 경쟁교육이, 부모의 허리를 휘게 하는 아이들의 '등골 브레이커' 집착증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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