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도둑질하기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

草霧 2013. 12. 30. 11:26

 

 

 

진리의 바닷가에서 놀았던 소년, 무엇을 발견했을까?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

 

김별아(소설가) | 2013.12.27

 

 

 

물가의 아이(사진:와우서울)

 

나는 세상에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바닷가에서 노는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은 진리라는 거대한 대양이 펼쳐져 있고,
가끔씩 보통 것보다 더 매끈한 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질을 찾고 즐거워하는 소년 말이다.

- 뉴턴(Isaac Newton)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자 근대이론과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뉴턴은 그 이름 자체로 거대하다. 24세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26세에 자기 방식의 반사망원경을 발명했으며, 46세에 캠브리지 대학 대표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장관과 왕립학회 회장을 거쳐 마침내 68세에는 영국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아 아이작 뉴턴 경(Sir)으로 불리게 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결혼생활의 범상한 즐거움은 포기했지만 이미 살아생전에 최고의 연구자로서 부와 명예를 한껏 누렸다(물론 말년에 주식투자의 실패로 '부'는 몽땅 날려버렸다는 뒷얘기가 있지만).

또한 뉴턴은 그 시대 사람으로서는 대단히 장수했다. 18세기 후반 유럽의 평균수명을 대략 35세로 추정하는 연구 결과로 미루어보면, 85세까지 살았던 그는 거의 '살아있는 전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스스로 표현한 자신은 원로(元老)나 대학자가 아닌 소년, 어리고 어리석은 채로 천방지축 좌충우돌하는 어린아이다.

소년은 바닷가에 서 있다. 짜고 비린 바람이 자분치를 흔들어 뺨을 간지럽힌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햇볕 아래 등이 발갛게 익어간다. 그는 바다에 홀려 있다. 사십육억 년 전 이미 생성된 바다, 지구 표면의 70퍼센트 이상을 뒤덮고 있는 바다, 그러나 아무도 못다 파헤친 비밀로 가득한 바다. 소년의 가슴이 우둔우둔 세차게 뛴다. 처음 만나 한눈에 반한 연인들처럼 홀린 듯 소년이 바다를, 바다가 소년을 바라본다. 대단한 놀이 도구나 물놀이 장비는 없다. 어쩌면 친구마저 없어도 좋다. 바다 그 자체가 거대한 놀이터이며 알뜰한 벗이다. 소년은 온종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닷가를 헤맨다. 그리고 발견한다. 수많은 돌들 사이에서 더 매끈한 돌, 어지러이 흩어진 조개껍질들 중에서 더 예쁜 조개껍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던 그 보석 같은 아름다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진실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노인이 아닌 소년으로 살아야 한다. 경험이 많은 만큼 교활해진 노인이 돌과 조개껍질을 캐내기 위해 등에 살갗이 벗겨지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리 없다. 오직 자신이 낯선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소년만이 그토록 시시하고 사소한 재미에 몰두할 수 있다. 재미와 즐거움! 그것을 제외하고 무시한다면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은 지루한 고행에 불과하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노인과 소년이, 노회함과 호기심이 물리적인 나이로 변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뉴턴은 무려 여든다섯 살을 먹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반짝였다. 영원한 소년으로, 두려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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