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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5

草霧 2013. 12. 26. 11:11

 

 

 

 

`진짜사나이` 바다와 육지 반응 왜 다를까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25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12.24

 

MBC[일밤-진짜사나이] (사진:뉴시스)

[서울톡톡] <진짜 사나이>는 올해 들어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기사가 나오면 네티즌이 그 기사를 집단적으로 공격할 정도였는데,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옹호 여론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무한도전> 말고는 없었다. 그렇게 절대적 지지를 받던 프로그램인데 서해바다로 간 이후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게시판에 비판적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그러다 휴전선 근방 백골부대로 가자 다시 지지세가 상승하는 추세다. 왜 <진짜 사나이>를 보는 시선이 바다를 놓고 달라졌던 걸까?

애초에 <진짜 사나이>가 인기를 끈 건 순수한 우리 젊은이들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는 젊은이들 말이다. 연예인으로서의 화려함을 완전히 내려놓고 정말 우리네 친구, 동생처럼 군대체험에 임하는 모습은 인간적인 공감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서해바다로 간 이후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이 덜해지고, 대신에 거대한 훈련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그것이 마치 국방부 홍보영상 같은 느낌이어서 '배달의 기수'가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네 친구, 동생들이 주인공이라기보다 국방부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단역으로 동원됐다는 느낌이었다.

또, 처음 전방 부대에 갔을 때는 '조국을 지킨다', '나라를 지킨다'라고 해서 순수한 우리 공동체의 안보를 떠올리게 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어린 청년들의 모습에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노고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순수하게 프로그램을 응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해바다로 간 이후엔 'NLL을 지킨다'는 표현이 대단히 많이 강조됐다. 이것도 모든 국민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말이긴 한데, 국내 정치상 민감한 이슈이기도 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NLL'에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첫째는, 너무나 당연히 지켜야 할 우리의 영토라는 의미. 둘째는, 정치권에서 여야로 갈려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쟁 이슈라는 의미. 이것 때문에 <진짜 사나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겨났다.

예능프로그램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면 반드시 논란이 터진다. '조국을 지킨다'나 '나라를 지킨다'는 표현은 누구나 동의할 만한 일반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야 정쟁에 사용되는 키워드가 예능에 등장하면 시청자가 이를 편하게 볼 수만은 없게 된다. 그래서 '예능이 아닌 군 홍보영상인가', 혹은 '예능이 국내 정쟁에 이용되는 건가'라는 지적이 많아지며 게시판 여론이 냉랭해졌던 것이다.

정말 순수하게 연예인들이 군대체험을 하는 것 같은 리얼리티의 느낌도 많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서해바다로 간 이후에 어떤 상황을 설정하고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마침 게시판에 <진짜 사나이> 속에서 비치는 갑판사관의 성격이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리얼하지 않다'는 느낌이 강화됐다. 하지만 서해바다 이후 백골부대로 갔을 때는 다시 처음의 리얼한 군대체험의 분위기로 돌아갔다. 그러자 시청자의 호평도 다시 돌아왔다.

<진짜 사나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사병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고를 그리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군사문화를 전파하는 경직된 군 홍보영상이 될 수도 있다. 둘 사이의 경계가 매우 애매하기 때문에 정확히 구분할 순 없지만, 어쨌든 시청자는 그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전자의 느낌이 강할 땐 찬사를 보내지만, 후자의 느낌이 강할 땐 순식간에 반응이 차가워지는 것이다. 물론 군 홍보영상 자체가 나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프로그램의 성격이 예능이라는 점이다. 예능에서까지 '배달의 기수'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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