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채경민 | 2013.12.16
[서울톡톡] 백제의 고성 풍납토성 안쪽에 위치한 까닭에 붙여진 이름 '성안마을'. 최근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기 웹툰 작가 강풀의 작품들이 곳곳에 벽화로 그려지면서부터다. 감성적 소재와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이 20여 점의 벽화로 다시 탄생하면서 스산했던 골목엔 온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하철 5호선 강동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성안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강풀만화거리' 표지판을 따라 좌측으로 난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안내판과 함께 커다란 벽화가 방문객을 맞이했다. 순정 만화 시리즈의 걸작으로 꼽히는 <당신의 모든 순간>의 마지막 이야기가 담긴 벽화 속에는 주인공들의 행복한 순간이 알록달록한 색채로 표현돼 있었다. 때마침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이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 본격적인 마을 탐방에 나섰다. 큰 길을 따라 비좁은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뻗어있는 전형적인 오래된 동네였지만, 마을의 첫 인상은 깨끗하고 단정했다. 주택 대부분이 깔끔하게 보수 공사를 마친 탓에 허름하고 낡은 주택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10여 년 전 논과 밭이었다던 너른 공터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하지만 제각기 형태가 다른 집들과 골목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점집들은 토속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골목길 담벼락을 따라 수놓아진 벽화는 마을과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 냈다.
따뜻한 마을 만들기
벽화거리 조성이 시작된 건 올해 3월부터다. 강동구가 공모한 '따뜻한 마을 만들기' 사업 대상지로 성안마을 등 3곳이 선정됐다. 하지만 벽화마을의 명암(明暗)을 충분히 고려해 작업은 최대한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벽화 전문가들은 두 달여에 걸쳐 마을을 답사하고, 주민들을 만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특히 작품을 선정하는데 있어서도 다양한 요소가 고려됐는데, 오랜 시간 강동구민으로 살면서 작품의 배경으로 강동구 곳곳을 채택했던 강풀 작가의 작품을 골랐다. 또 벽화 채색 작업 과정에 지역 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참여해 애착심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골목마다 스며있는 희망의 풍경
성안마을 벽화 거리의 특징은 주제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대게 작가들의 작품을 이곳저곳에 그려놓은 다른 벽화 마을과는 달리 그림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스토리'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이를 위해 마을을 언덕과 평지 구역으로 나누고 벽화 배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을 입구에서 들어서면 <당신의 모든 순간>과 <바보> 벽화를 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벽화들은 앞으로 전개될 벽화들의 예고편이다.
언덕구역의 벽화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고백하고, 춤추고, 이웃과 가족을 만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벽화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성내동 성안마을을 처음 만나는 것처럼 벽화 속의 등장인물들도 낯선 이에게 밝은 인사를 건넨다.
평지로 향하는 좁은 내리막길에서는 강풀 만화에서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나비와 배추꽃이 벽면 가득히 펼쳐진다. 그리고 그 길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던 꽃과 눈, 별들이 흩날리는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평지구역에 들어서면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마음을 전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과, 낡은 자동차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장면들이 어우러져 화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붕어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그림들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그림은 잿빛 시멘트 공간에 따스한 온기를 더한다. 30여 분 남짓 골목길을 걷는 내내 한편의 순정만화를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두 세 번씩 오가며 작품을 꼼꼼히 바라보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벽화 보러 오셨구나. 벽화가 생기면서 마을 분위기가 좋아졌어요. 볼 때마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그렸기에 더 깨끗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은 붓질 하나가 마을 분위기를 이렇게 바꿀 줄은 몰랐었죠."
■ 강풀 만화거리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강동역 4번 출구로 나와 파크랜드 강동역점을 끼고 좌측으로 진입하면 바로 골목이 나타난다. 자가용을 가지고 간다면 골목이 좁아 주차가 어려우니 천호역 공영주차장으로 진입, 강동역 출구 방면에 주차하면 편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