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한국미술

히로시 스기모토 - "영원(永遠)속에 담긴 유한한 시간"

草霧 2013. 12. 12. 12:33

 

 

 

 

  • 히로시 스기모토-영원(永遠)속에 담긴 유한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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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린(독립 큐레이터)

    전시명 : 히로시 스기모토_사유하는 사진
    장 소 : 삼성미술관 리움
    기 간 : 2013.12.5-2014.3.23

    70살 노장의 사진은 영원(永遠)을 사진 속에 박는다. 일본 현대 미술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인 히로시 스기모토(1948~)는 사진의 유산이 빛을 발하는 마지막 세대의 작가이다. 히로시 스기모토는 전통적인 사진의 촬영 방식과 인화 방식을 고수하면서 미술, 역사, 과학, 종교,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주제를 포착한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미지 속에서 시간을 초월하여 내용과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을 사진을 통해 포착해내는 것을 ‘결정적 순간’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히로시 스기모토는 찰나적인 시간을 딛고 서서 영원(永遠)속에 담긴 유한한 시간을 사진에 담는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삼성미술관 Leeum에서 오는 3월 5일까지 소개되는 전시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 2층 블랙박스 공간에서 마련된 <가속하는 부처(Accelerated Buddha)>연작은 소멸되어가는 것, 또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을 기억하고 그 심원을 탐구하는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특히 그중에서도 <부처의 바다001(Sea of Buddhas 001)>(1995)는 13세기 초에 지어진 교토에 위치한 한 사찰의 천수관음보살 1001개를 48장의 사진에 담은 연작으로 3채널 프로젝션 영상을 통해 보여주어 정신성이 사라진 시대에 남은 유물이자 예술작품을 통해 삶 그 너머에 있는 의식의 기원과 예술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히로시 스기모토 <가속하는 부처> 전시설치사진 © Hiroshi Sugimoto


    기원에 대한 사진적 탐구는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그의 다양한 대표작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다풍경(Seascapes)>(1980~)은 그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주한 바다의 풍경이자 태고의 풍경이다. 오로지 수평선만이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가르고 시간의 흐름이나 특정한 장소의 특징이 사라진 불멸의 풍경만이 생명의 기원으로서의 바다를 관람객에게 바라보게 한다. 


    히로시 스기모토 <에게 해, 필리온 Aegean Sea, Pilion> Gelatin silver print, 111.9x149.2cm (152.4x182.2cm_framed)


    잊혀져버린 기억의 근원으로서의 바다의 풍경은 다시 우주의 기본 5원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전통탑의 형태로 만든 <5원소(Five Elements)>안에서 내면의 풍경으로 침투한다. 각각의 바다는 물질만능과 화려한 외양의 모습에 압도당해 버린 현대인의 삶 속에서 마지막 남아있는 성소이자 안식의 장소로서의 바다를 담아낸 것이다. 색도 시간도 사라져버린 압도적인 추상의 풍경 속에서 끌어온 그의 사진이 위치하는 곳이다. 

    이밖에도 본 전시에서는 <디오라마(Dioramas)>(1975~), <극장(Theaters)>(1975~)을 비롯하여 독일 구겐하임 컬렉션의 커미션으로 진행된 <초상(Portraits)>(1999) 작업 및 W.H.F 탈보트의 유산을 이어받아 ‘사진’과 ‘정전기’를 결합한 인공번개 이미지를 담은 <번개치는 들판(Lightning Fields)>(2006~) 등이 함께 소개된다. 히로시 스기모토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통해 순간 속에 반짝하고 사라진 삶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지역을 초월해 영원 속에 명멸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해볼 수 있다. 


    글/ 박경린(독립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