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음의 정신병자/한국미술

운보 김기창 탄생 백주년 기념전 - "예수와 귀먹은 양"

草霧 2013. 12. 5. 10:20

 

 

 

  • 운보 김기창 탄생 백주년 기념전 <예수와 귀먹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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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쓰고 두루마기 입은 예수

    전시명 : 예수와 귀먹은 양
    장 소 : 서울미술관
    기 간 : 2013.10.17~2014.1.19

    ....하느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길릴레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로 보내시어 다윗 가분의 요셉 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는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하고 인사하였다...(중략)...“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중략)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 떠나갔다.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프레스코, 1438-45,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박물관


    루가복음에 나오는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장면이다. 수태고지는 위에 써 있는 것처럼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처녀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고 말하고 마리아가 그것을 받아들인 사건이다.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문화권의 수많은 화가들이-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이 장면을 모티브로 작품을 남겼고 걸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 


    김기창 <수태고지> 비단에 채색, 63x76cm, 1952~1953, 운보문화재단


    운보 김기창의 《예수의 생애》시리즈의 <수태고지>도 전형적인 수태고지와 기본적인 요소가 동일하다. 날개달린 천사-선녀가 내려와 반쯤 오픈된 공간에 있던 처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처녀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그것을 순종하며 듣는다. 전래동화의 삽화에 있어야 할 한복과 한옥과 선녀님의 외양을 하고 예수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표현한 것에서 처음에 느낀 낯선 감정은 30점의 작품을 보는 중에 어느 틈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예수의 생애》연작은 운보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아내의 고향 군산에 피난에 있던 시절에 그린 대표작이다. 부활 한 장면을 빼고 나머지 작품 모두 1952년과 1953년 사이에 그려졌다(부활은 1958년경에 부활절 카드에 쓰일 그림을 독일 선교사에게 주문받은 김기창 화백이 예수의 생애 시리즈에서 부활 장면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추가로 그린 것이다. 실제로 보았을 때 나머지 작품과는 약간의 색감 차이가 느껴진다). 예수의 일대기 중 주요 장면들로 구성된 이 연작은 운보와 친분이 두터운 선교사의 권유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예수의 고난이 우리 민족의 비극과 유사하다고 생각한 운보는 한국적인 표현의 성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이에 몰입했다. 1년 여 만에 이 연작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운보는 백주 대낮에도 예수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고 할 정도로 이 작업에 빠져들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연작의 배경은 조선시대.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 초가, 기와집이 세필의 한국화적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독교의 토착화, 한국적인 정서,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서 그만의 운필과 구성 등에 있어서 특별한 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문화권에서 외래의 종교를 받아들일 때 그 토착화는 불가피하게 이루어진다. 기독교의 경우 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선교 방법으로서 토착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한 바도 많이 있고, 특히 남미에서는 유럽과는 많이 차이나는 기독교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토착화된 기독교 예술의 모습 중에서 기존의 문화 속에 기독교가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아니면 그 지역의 문화가 얼마나 많이 반영되어 스며들었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운보의 그림에서는 ‘모성’으로서의 여성이 눈에 띈다. <아기예수의 탄생>에서도 목동들 대신 아낙네들이 태어난 아기예수를 둘러싸고 있고, <탕자 돌아오다>에서도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 외에 뒤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들을 맞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십자가를 지고>에서도 구도의 반 이상이 여성들이고, 그들의 시점에서 십자가를 진 예수를 바라본다. 


    김기창 <아기예수의 탄생> 비단에 채색, 63x76cm, 1952~1953, 운보문화재단


    김기창 <최후의 만찬> 비단에 채색, 63x76cm, 1952~1953, 운보문화재단

     


    김기창 <십자가를 지고> 비단에 채색, 63x76cm, 1952~1953, 운보문화재단


    언뜻 폴 고갱이 수태고지 장면을 그렸다는 <마리아를 경배하며>도 떠오른다. 토착화된 기독교를 표현했다기보다는 자신의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는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생각들을 표현하는 매체로서 타히티의 원주민들을 사용한 고갱. 어쩌면 운보도 자신이 그릴 수 있는 한국적인 오브제들을 기독교적인 제재에 씌우는 도전 속에서 예술적인 성취를 맛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흉내내기에 그치거나 제재에 잡아먹히지는 않은 것 같다.


    폴 고갱 <마리아를 경배하며> 캔버스에 유화, 113.7x87.7cm, 1891,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예수와 귀먹은 양》展은 운보 김기창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전시로, 예수의 생애 시리즈 외에도 대표적인 그의 작품들, 즉 인물화, 청록산수, 바보산수, 바보화조화 등 다양한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가 일곱 살에 앓은 열병으로 청각을 잃으면서 얻게 된 정적인 세계에서 그 고통을 예술적인 열정으로 승화시킨 과정과 다양한 시도와 변주, 생명력, 스케일, 그의 체취를 맛볼 수 있다. 친일파였던 그의 행적은 잠시 접고.


    김기창 <군해(群蟹)> 종이에 수묵담채, 174x464 cm, 1966


    김기창 <세 악사> 비단에 수묵채색, 64x75cm, 1970

    글 Smar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