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세상 쳐다보기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5) 이사를 마치고

草霧 2013. 11. 25. 19:51

 

 

 

겨울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우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5) 이사를 마치고

 

시민기자 이승철 | 2013.11.22

 

햇살좋은 아파트 화단의 단풍

[서울톡톡] 모두 다 주었거늘/바람아, 아직/무엇이 더 남았다고/시린 가슴 헤집으며 울부짖느냐

가볍게 훌훌 벗고 떠남이/이렇게/홀가분한 것을/남기려고 쌓으려고 애쓰지 마라

툭툭 털어 버려도/미련은 남는 법/창백한 손끝으로 펼쳐든 하늘에는/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별들이 총총. (이승철의 시 '겨울나무')

겨울 햇살이 참으로 따뜻하다. 여름엔 너무 무더워 피하기만 했고, 가을엔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던 햇볕이었다. 그런데 싸늘한 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계절이 되고 보니 새삼스럽게 따스한 겨울햇살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 햇살 덕분에 양지쪽의 단풍잎들은 아직도 붉은 빛깔이 곱다.

응달진 곳에 서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벌거벗은 모습이다. 아직 잎이 지지 않은 나무들도 잎을 떨어뜨리며 겨우살이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무성한 잎을 그대로 달고서야 혹독한 계절을 어찌 견디며 버틸 수 있겠는가. 영하 2~3도를 오르내리는 초겨울 추위에 활엽수들은 저마다 월동준비가 급해졌으리라.

며칠 동안 바쁘고 힘들었다. 10여 년 넘게 살아온 넓은 집에서 좁은 집으로 이사하느라 애쓴 때문이다. 입술까지 부르튼 거울 속의 표정이 조금 어색하고 낯설다. 지인들은 포장 이사하는데 뭐가 그리 힘들었느냐고 하지만 이사가 어디 단순하게 살림살이를 옮기는 것만으로 끝이던가.

이사하기 보름 전쯤부터 살림살이 줄이기에 나섰다. 짐을 줄이지 않으면 좁은 집으로 이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불필요한 군더더기 살림도구들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우선 서재와 문간방에 있던 두 개의 책상 중에서 조금 낡은 것 한 개를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아내가 조금 섭섭해 했지만 서재책상을 함께 쓰기로 합의를 했다.

책도 200여 권을 줄였다. 근래 몇 년 사이 소장도서가 오분지 일 정도로 줄었다. 시대가 바뀌어 어딜 가나 가까운 곳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많이 생겼고, 또 인터넷 영향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어떤 짐보다 무거운 책을 꼭 소유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시력이 약해져 독서량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이삿날 풍경. 버려진 재활용품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옷도 참 많이 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유행과 구매욕 때문에 사들여 입지도 않고 쌓여 있던 옷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많이 버린 것은 소소한 살림도구들이었다. 부엌에서 조리용으로 한두 번 쓰고 방치되었던 각종 조리기구들과 그릇들은 왜 그리 많은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별로 사용치 않을 것 같은 그릇들을 골라내노라니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그릇이며 도구들도 많았다.

그렇게 골라낸 옷이며 살림도구들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과 딸들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버리고 줄인 살림살이가 어쩌면 작은 트럭으로 한 대분은 되었을 것 같다.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을 버릴 때마다 아쉬움도 많았다. 당장 사용을 하지 않지만 언제 또 다시 사용할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도 그랬고, 우선 아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한 것은 나이 들어 갈수록 과감히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소외되고 공허해지는 감정 때문에 아집과 욕심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이기적인 아집과 소유욕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인생 말년을 살아가는 노인들이 유념해야할 꼭 필요한 덕목이다.

욕심을 떨쳐버리고 짐을 많이 줄인 것은 역시 잘한 일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해 면적이 삼분지 일이나 줄어든 집에 이사하여 겨우겨우 짐정리를 하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깝다는 욕심 때문에 버리지 않았다면 감당할 수 없는 짐에 눌려 훨씬 어려운 살림살이가 되었을 것이다.

봄에 새싹이 돋아 여름내 싱그럽고 무성했던 나무들. 그러나 가을을 지나면서 화려한 단풍과 열매를 남기고 그 무성했던 잎들을 훌훌 벗어 던지는 겨울나무들, 저 나무들은 벌거벗은 홀가분한 몸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희망찬 새봄을 맞을 것이다. 낙엽 지는 초겨울의 나무들을 보면서 노년의 인생살이 지혜를 다시 생각해 본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칼럼은 이번 35회로 끝을 맺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조금은 더 알찬 내용의 칼럼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동안 제 칼럼을 사랑해주시고 애독해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승철 시민기자 이승철 시민기자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간편구독 신청하기   친구에게 구독 권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