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서울의 맛
얇게 썬 소고기를 갖은 양념으로 무쳐 볶거나 구운 불고기는 한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사랑받는 우리 음식이다. 매년 한식에 대한 외국인 선호도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며 비빔밥, 김치 등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도 손꼽힌다. 글_정희선 교수(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예술대학원)
불고기 3파전, 서울, 언양, 광양 ‘불고기’로 유명한 두 고장이 있다. 바로 경상남도 언양지역과 전라남도 광양이다. 언양은 경상남도에 있던 옛 행정구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14년 울산군에 통합됐다. 광양불고기는 얇게 썬 쇠고기에 간장, 설탕, 다진 파, 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해서 참나무 숯불에 굽는 방식의 불고기이다. 언양불고기는 굵게 채 썬 쇠고기를 배즙, 국간장, 설탕, 다진 파, 다진마늘, 물엿, 참기름, 후춧가루 등을 넣고 버무린 것을 석쇠위에 굽는데, 이때 석쇠위에 물 적신 한지를 깐다. 다 익으면 통깨를 뿌려 낸다. 광양불고기는 일반 간장을, 언양불고기는 국간장(조선간장)을 쓰는 것이 차이점이다. 두 지역과 달리 서울에서는 국물이 자작한 전골형 불고기를 주로 먹는다. 역시 간장, 설탕, 다진파, 다진마늘, 참기름 등으로 양념한 쇠고기를 전골냄비에 넣고 육수를 자작하게 부은 뒤 굵게 썬 대파, 양파, 당근, 당면 등의 부재료를 넣어 끓인다. 바로 이 ‘육수’가 서울식 불고기의 특징을 결정짓는 포인트다. 일반 불고기는 석쇠에 직화로 굽는 방식이지만 서울식 불고기는 전골판에 육수와 함께 익히는 간접 조리 방식을 택했다. 근래에는 이러한 전골형 불고기를 1인용 뚝배기에 담아 뚝배기 불고기라는 메뉴로 판매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불고기의 기원은 보통 고려시대의 맥적(貊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맥적은 양념한 고기를 꼬치에 꿰어 불에 구운 음식으로 고려시대 설하멱(雪下覓)과 조선시대 너비아니로 이어지는 불고기 집안의 시조다. 이 불고기 집안의 식구들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조리되는데 미리 양념한 고기를 직화로 굽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까 불고기의 아버지는 너비아니이고 설하멱은 할아버지, 그리고 맥적은 고조할아버지쯤인 셈이다. 그리고 육수가 들어간 서울식 불고기는 불고기 집안에 막내 쯤 되는 가장 신식 불고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식 불고기의 원조, 한일관 한일관은 서울식 불고기의 원조라고 꼽히는 식당이다. 1939년에 개업해 벌써 70년이 넘은 장수 식당으로 주 메뉴는 바로 이 서울식 불고기와 갈비, 그리고 골동반, 신선로 등의 한국 전통음식이다. 한일관은 원래 서울 종로에 위치해 있었으나 피맛골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현재 본점을 신사동으로 이전한 상태다. 한일관의 창업주 고 신우경씨는 1939년 개업 당시 너비아니와 장국밥을 판매하다가 이후 손쉽게 조리해 빨리 먹을 수 있도록 개량해 ‘서울 불고기’를 만들었다. 석쇠에 하나하나 구워야 하는 너비아니와는 달리 서울식 불고기는 미리 양념한 불고기와 부재료, 육수를 부어 끓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손도 덜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식 불고기의 진짜 매력은 다른데 있다. 고기양이 적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기에 양념 외에 다른 부재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다른 불고기와는 다르게 당면, 채소가 들어가서 양이 푸짐해진다. 게다가 국물이 있기 때문에 밥을 비벼먹을 수도 있다.
불고기에 담겨있는 한국적 식문화 서울식 불고기는 한국식 조리방식과 식습관을 잘 반영한 음식이다. 고기를 굽기 전 소금과 후추 등으로 간단히 양념하고 구운 뒤 따로 만든 소스를 곁들이는 서양식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미리 양념해서 재워둔 고기를 구워서 소스 없이 먹는다. 종종 한식에서 불고기를 양념에 재우는 것을 서양의 마리네이드 방식과 비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양념과 마리네이드는 용도가 다르다. 마리네이드는 생선과 고기의 나쁜 냄새 없애는 것이 주목적이며 거기에 약간의 맛을 더하는 정도이지만 한국식 마리네이드는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는 향신채인 파, 마늘과 간을 더해주는 간장이나 소금, 그리고 음식에 향을 더하는 참기름과 깨소금이 더해진 종합 양념으로 따로 더 간을 하거나 소스를 곁들일 필요가 없다. 또 하나 독특한 것은 한식에서는 거의 모든 쇠고기 요리에 동일한 양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잡채나 탕평채에 들어가는 약간의 쇠고기에도 이 불고기 양념을 사용하며 갈비구이, 찜에도 비슷한 양념을 사용한다. 이를 ‘갖은양념’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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