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草霧의 산책하기

건강한 먹을거리 찾아 떠나는 여행, 섬진강

草霧 2013. 10. 5. 11:01

 

 

 

 

건강한 먹을거리 찾아 떠나는 여행

 

섬진강 반짝이는 물결 따라 금빛 가을과 만나다여행정보

이른 새벽 도착한 곳은 섬진강변 하동의 작은 마을 신기리다.


담을 넘어 길섶까지 가지를 뻗친 나무에는 먹음직스러운 감이 잔뜩 달렸는데 몇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익은 열매를 뚝뚝 떨궈 내고 있다. 마을 앞 강변 선착장에는 이미 마을 사람 몇이 모여 재첩잡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올라탄 작은 배에는 재첩 채취 도구와 집에서 싸온 단출한 도시락 따위가 함께 실렸다. 강 중간 즈음에 도착한 배는 시동을 끄고 강물 속으로 사람들을 부려 놓는다. 강 한가운데인데도 수심이 가슴께까지밖에 오지 않는다. 저마다의 허리춤에는 커다란 고무대야가 끈으로 연결돼 있고 손에는 길이가 2m는 족히 돼 보이는 기다란 끌개 모양의 '거랭이'를 들었다. 이것을 이용해 바닥을 살살 긁으면 모래는 빠져나가고 재첩들만 남는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재첩잡이 방식이다. 섬진강에 기대어 사는 6개 어촌계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첩을 잡는 곳은 오직 신기리뿐.

 

다른 곳은 다 그물 달린 배를 이용해 훨씬 수월하게 잡는다.


하동 사람들이 '갱조개'라 부르는 재첩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오래전 하동의 어머니들은 이른 아침 설설 끓여낸 재첩국을 머리에 이고 읍내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칫국 사이소!'를 외쳤다. 재첩을 채취하고 재첩국을 내다팔아 살림에 보태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시상에 이것맨키로 맛있는 게 또 있겄나. 재칫국도 끓이묵고, 이것저것 넣고 조물락거리 회도 무쳐 묵고 부치개도 부치 묵고 하재."


재첩잡이에 한창이던 마을 주민이 재첩자랑에 나선다. 신기리 사람들은 재첩 중에서도 하동 재첩이 제일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이곳 재첩이 모래 속에 살아 윤기가 흐르고 국을 끓이면 국물이 사골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난단다. 개펄 속에 사는 재첩은 맛도 없고 냄새도 난다고 덧붙인다. 재첩 철은 4~6월 사이의 봄과 9~11월 사이의 가을, 두 번이다. 

섬진강 반짝이는 물결 따라 금빛 가을과 만나다 

 

산란을 위해 영양분을 축적하는 벚꽃 필 무렵의 봄 재첩이 더 맛나다고 하지만 가을 재첩도 맛에 있어선 뒤지지 않는다. 한 번에 8,000마리의 새끼를 낳기에 '재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래전부터 재첩은 조개류 중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아 왔다. 고작 손톱만한 크기지만 영양가는 다른 조개에 비해 몇 배나 많다. 최근 몇 년 사이 값싼 중국산 조개가 섬진강 부근까지 밀려왔다고 해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도 나왔지만, 여전히 섬진강에서 생산되는 재첩 양은 적지 않다. 재첩은 보통 국으로 끓여 먹거나 몇 가지 채소에 삶은 재첩을 넣고 초장을 얹어 회로 먹거나 비빔밥으로 먹는다. 알이 굵고 살이 졸깃한 섬진강 재첩만 사용해 재첩국과 재첩회를 내는 곳이 하동읍내에 여러 곳 있다.

19번 국도 따라 가을산책

이른 아침 쌍산재의 정원을 산책하다 바람 속에 꽤나 서늘한 기운이 묻어 있음을 느낀다.

지난밤 스며든 이 오래된 고택은 여행자를 위해 방을 하나 내주었다. 지리산 자락 아래 마산면 상사마을에 자리 잡은 쌍산재는 300년, 6대째 내려오는 고택으로 2만여 평이나 되는 너른 뜰을 가졌다. 안채와 사랑채 뒤쪽 소국 곱게 핀 돌계단을 올라 대나무 숲과 동백 숲을 지나면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면서 별채와 서당채, 경암당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일부러 천천히 아침의 산책을 즐겼는데 마침 밤나무,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들 때문에 마음이 더없이 흐뭇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시작해 충청북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남해까지 이어지는 451km의 19번 국도 중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구례~하동 구간의 45km에 달하는 이 길은 유홍준 교수가 꼽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이제 곧 온통 붉은 단풍 옷으로 갈아입을 지리산 계곡 중 으뜸이라는 뱀사골과 천년고찰 실상사, 그리고 춘향의 도시 남원을 지나 구례에 발을 들여놓는다.

 

쌍산재

1 최참판댁 2 실상사 3 심원마을 4 화개장터

지난봄 노란 산수유 꽃으로 물들었던 산수유마을을 지나 뱀처럼 요동치는 737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지리산 750m 고지, '하늘 아래 첫 동네'라 불리는 심원마을에 닿는다. 재미있는 건 마을에 일단 들어서면 차를 세울 수가 없다는 점이다. 주차장이 따로 없는 데다 덜렁 예닐곱 가구가 다인 주민들 대부분이 집을 민박이나 음식점으로 운영하기때문에 '손님'이 아니면 주차할 곳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백숙이나 산나물밥을 잘하는 집이 몇 군데 있으니 점심을 먹으며 찬찬히 마을 구경을 해도 좋겠다.

섬진강 문학의 길을 따라

은모래 반짝이는 섬진강의 한없이 너그러운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화개장터로 간다. 마침 연중 가장 풍요로운 수확의 철을 맞은 주말의 오후인지라 작은 시골장터는 마치 터져나갈 듯 북적인다. 시장은 아무래도 떠들썩해야 제맛 아니던가.

김동리의 소설 '역마'에 등장하는 화개장터는 지리산 화전민들이 채취한 온갖 산나물과 하동 일대의 너른 평야에서 길러낸 곡식, 남도 어부들이 가져온 바닷것들이 모여들던 번성한 시장이었다. 현대화 작업에 의해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볼 것 많고 살 것 많은 재미난 시장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 최 참판 댁은 화개장터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해 27년 만에 총 5부로 완성된 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선생의 대작으로 현대문학 10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다. 소설 속 윤씨부인과 별당아씨가 기거했던 건물들이 고증을 통해 복원돼 있고 흰 수염 길게 기른 '최 참판 어르신'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황금빛 악양들판의 아름다움도 놓치기 아깝다. 반듯한 드넓은 초록의 전답에 유명한 소나무가 그림처럼 섰고 언덕 아래엔 온갖 가을 들꽃이 눈 내린 듯 활짝 꽃을 피웠다. 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