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박동현 | 2013.09.26
[서울톡톡] 차도 사이 길게 조성된 공원이라 하여 거리공원. 구로구 소재 거리공원은 특이하게 양쪽으로 4차선 도로가 에워싸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기다란 녹색섬처럼 보이기도 하고, 앞쪽이 유선형처럼 뾰족해 바다에 떠있는 큰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연일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공원을 찾았을 때 희한한 광경을 접했다. 공원 내 줄지어 설치된 벤치에 빈틈없이 앉은 사람들의 손엔 한결같이 책 한 권씩 들려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9월 독서의 달을 떠올리게 하는 진풍경이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인근 지역에 사는 김승민(29)씨는 "추석 연휴 내내 집에서 쉬기만 해 공허한 생각이 들어 공원을 산책하며 기분 전환도 할 겸 책을 들고 나왔다"며 "책 보는 사람이 혼자인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사각 정자 아래에서는 할머니들의 윷판이 펼쳐졌다. '모다!' 어르신 한 분이 소리 높여 외치며, 나무 정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손뼉을 쳤다. 어르신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이 어린이들의 놀이 현장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모두들 허심탄회한 관계로 이웃 정보들을 죄다 공유하고 있단다. 자녀들 언제 시집·장가 가고, 손주들 어디 유치원,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다 안단다. 경조사가 발생하면 함께 참여해 같이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한다. 힘들 일이 있으면 조금씩 힘을 보탠다. 그야말로 이웃사촌이요, 혈연으로 구성된 시골 단란한 마을을 연상케 한다. 도심 속 작은 공원이 매개가 돼 큰일을 하고 있구나 싶다.
공원 내 정자가 몇 곳 있었지만 차지는 모두 할머니들이었다. 정자에서 밀려난 할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벤치에 장기나 바둑판을 올려놓고 불편한 자세로 여가를 보낸다. 그 주위로 빙 둘러서서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이들도 있다. 그 자세로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그래도 같이 장기, 바둑 둘 맞상대가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거리공원의 또 하나의 자랑은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공원 가장자리는 빙 둘러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모두 흙길이라 걷기에 편하고 시골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르신들이 산책하기에 편리해 보였다. 곳곳에 다양한 운동기구도 설치됐다.
공원 중앙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에는 여러 개의 배드민턴 코트가 있다. 한여름에는 남녀노소 줄을 서 대기해야 할 정도로 붐비던 곳이다. 한켠에는 건강지압 보드가 조성돼 이용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거리공원 내에 야외 문고를 설치했으면 한다. 공원 내 잘 가꾸어진 녹색의 신록이 그늘을 제공하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책 읽기에 딱 좋다. 구로구에는 도서관, 문고, 책마을 등만 20여 곳이나 된다. 야외 문고는 많은 책도 필요 없다. 남산 야외 다람쥐문고처럼 공원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조그마한 책장을 서너 군데 설치하고, 시민들과 아이들이 읽기 편한 책 이삼백 권이면 충분하다.
※ 거리공원은 지하철 1호선 구로역(1번 출구), 2호선 신도림역(2번 출구), 2호선 대림역(4번 출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각 역에서 도보 7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