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 없는 자치재정의 실상과 허상지방재정 위기 바로 보기 2- ① 전문가 칼럼 | 2013.09.23 이재은(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전 한국지방재정학회장) [서울톡톡]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4.19혁명 이후 실현되었던 온전한 자치는 군사쿠데타로 지방의회가 해산되며 30년간 어둠에 묻혀있다 1991년 부활되었다. 이때 자치를 설계하면서 오랜 집권체제의 단맛을 본 중앙의 정치인 관료들은 주민직선이라는 형식적인 자치만 허용했을 뿐 자율적인 권한도 재원도 제대로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치단체의 사무는 계속 늘어만 갔다. 이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세출규모가 엇비슷하다. 그런데 자치단체장들은 돈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 시민이 보기엔 권한도 많고 세출규모도 큰데 왜 서울시장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돈 더 달라고 하소연하는지 답답할 것이다. 시민들은 분권 없는 자치재정의 허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 어부와 가마우지의 관계 한국의 지방자치는 껍데기만 자치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중앙정부가 돈줄을 꽉 움켜쥔 채 지방정부를 국가의 입맛대로 통제하는 집권체제가 강고하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중앙정부 바라기에 머물러 있다. 학술적 용어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관계가 중앙집권체제로 고착되어 있어서 지방은 세출의 자치도 세입의 자치도 온전하게 허용되어 있지 않다. 강가에서 가마우지 목에 줄을 매달아 고기잡이하는 어부(중앙정부)와 가마우지(지방정부)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실상은 이러하다. 즉 국민이 1년 동안 내는 세금이 전부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대략 80만 원은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국세로 내고 20만 원(20%)은 취등록세, 재산세 등 지방세로 낸다. 그런데 국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세금을 사용할 때는 지방정부가 60만 원(60%)을 쓴다. 지방세 20만원 이외에 국세로 걷은 40만원을 지방교부세나 국고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에 이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치단체 중에는 자기 지역에서 걷은 세금으로 공무원 봉급도 지불하지 못하는 단체가 수두룩하다. 이처럼 돈줄은 중앙정부가 꼭 틀어쥐고 때로는 용도를 지정해서 때로는 용도를 자유롭게 돈을 풀어 지방을 중앙정부의 지침에 맞게 통제하고 있다. 해마다 예산을 편성할 때 주민들의 요구를 파악하여 세출항목별로 배분할 수 있어야 세출의 자치가 보장된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법령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게 사무를 위임하거나(특히 기관위임사무) 또는 실시의무를 강제하는 각종 사무․사업 등이 많은데 이것들은 주민의 요구와 관계없이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게다가 각종 기관이나 시설의 설치, 인원의 배치도 중앙정부가 정하기 일쑤이고 공무원의 직급이나 인건비도 중앙이 표준을 정하여 제시한다. 물론 완전하게 지방에 일임하면 방만하게 재정운용을 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주민과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풀뿌리민주주의 정신이다. 세입, 세출 모두 중앙정부의 철저한 통제하에... 세출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입도 중앙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지방세의 세목선택, 과세표준이나 세율 결정권한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최근에 보듯이 지방세의 세율인하를 중앙재정당국이 제멋대로 결정한다. 자치단체장의 각종 협의회가 있음에도 이들과 사전에 협의하는 예는 거의 없다. 대체로 일방통보에 그친다. 기관위임사무에 대한 보조금을 결정할 때도 국가사무임에도 지방자치단체가 걷은 지방세와 세외 수입을 보태어 집행하라고 한다. 이것을 지방비부담의무라고 한다. 과거에 관치 지방행정이 실시되던 때의 제도와 관행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경직적인 중앙집권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바람직한 자치행정, 자치재정을 구현하기 어렵다. 2000년대 들어와 지방으로부터 분권개혁을 요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치분권, 행정분권, 재정분권, 주민분권 이것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네 측면의 분권이다. 각 지역은 나름의 전통과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 보다는 자율성을 갖고 지역마다의 특성을 반영하여 정책을 결정할 때 주민이 행복해진다는 믿음이 지방자치 실시의 이유이다. 그런데 과거 경직적 권위주의에 젖은 소수의 권력집단은 자신들의 이념이나 정책이 일사분란하게 전국적으로 확산 실현되기를 원한다. 이들은 지방은 중앙에 예속된 존재이고 지배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 시장화,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화 등 사회경제적 여건이 급변하는 21세기의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를 대등- 협력관계로 변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역할이 점점 약화되는 속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주된 역할이 되고 있다.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펼치는 것이 핵심이다. 북유럽 등은 오래 전부터 분권체제 구축 21세기로 넘어오는 세기 전환기에 선진국들도 분권개혁을 추진해왔다. 거품경기가 붕괴하면서 사회안전망이 취약해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은 1995년부터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분권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EU가 출범하면서 주민의 삶에 직결된 사무·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해온 유럽국가들, 특히 프랑스는 개헌을 통해 철저한 분권국가를 천명하고 있다. 스웨덴,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분권체제를 구축해오고 있다. OECD보고서 <분권화와 세계화>는 지방정부에게 자주세원을 보장하고 중앙정부는 어느 지역이든 최소한의 균질한 공공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재정조정제도를 통해 재원을 보장해주는 것이 지역발전의 열쇠라고 지적하고 있다. 집권체제의 폐해를 시정하고 분권체제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세출의 자치와 세입의 자치를 제약하는 중앙정부의 통제의 고리를 제거하는 재정분권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치재정은 여당과 야당의 이념투쟁의 대상이 아니다. 자율-참여-책임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행복한 진정한 자치재정이 실현되도록 시민들이 앞장서서 분권개혁을 촉구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