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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에 몰입하는 사람들

草霧 2013. 9. 23. 11:12

 

 

`먹방`에 몰입하는 사람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2

 

하재근(문화평론가) | 2013.09.17

 

 

[서울톡톡] 먹는 방송 즉 '먹방'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말 저녁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는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는 매주 음식을 준비하거나 맛있게 먹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정글의 법칙>에선 해외로 나가 온갖 식재료들을 사냥하거나 채취해서 맛본다. <해피투게더>는 야식을 준비해서 먹는 코너를 새로 만들었다. <맨발의 친구들>은 집밥 고수를 찾아 온갖 음식을 맛보며 1시간을 때운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선 주기적으로 음식의 맛을 상기시키는 대사들이 나온다.

 

이렇게 음식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음식은 방송사 입장에서 저비용 고효율, 즉 적은 제작비로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소재였다.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종 교양 프로그램에선 언제나 맛집 소개나 내 고향 음식 소개 장면이 나왔다. 드라마에선 언제나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랬던 먹방은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리얼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며 예능까지 점령하게 된다. <1박2일>은 복불복 게임과 음식을 번갈아 보여주는 포맷이었는데 시청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특히 강호동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장면에서 최고의 시청률이 나오곤 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아예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식재료 준비하고, 요리해서 먹는 장면으로만 채웠다.

 

이런 포맷들이 인기를 얻자 먹는 장면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화 쪽에선 하정우가 <황해>나 <범죄와의 전쟁>에서 맛있게 음식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됐는데, 이즈음부터 '먹방'이라는 신조어가 광범위하게 쓰였다. 최근 들어선 <아빠 어디가>의 윤후가 잘 먹는 모습으로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먹방 열풍은 연예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음식 먹는 모습을 공개하며 먹방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평범한 사람이 치킨 같은 평범한 음식 먹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것이다. 그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본다고 한다. 한 인터넷 먹방에 하룻동안 연인원 15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뜨거운 인기다.

 

이 정도면 정말 이상현상이다. 먹방이 원래부터 인기가 높은 소재이긴 하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이상할 정도로 먹는 모습에 열광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1차원적 욕망이다. 지성이나 문화의 차원이 아닌 동물적 본능 차원에서의 욕망이다. 인간은 음식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기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음식에 탐닉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먹방이 인기를 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가장 동물적이고 1차원적인 욕망에 빠져든다는 뜻이다.

 

이것은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쓸쓸하고, 허허롭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세상, 일을 끝내면 더 이상 머리 쓰기가 싫기 때문에 먹방이라는 1차원적인 자극에 빠져든다. 쓸쓸한 사람들은 타인이 먹는 모습을 보며, 또 그런 화면과 함께 자신도 무언가를 먹으며 위안을 얻는다. 마음이 허허로운 사람들은 음식으로 그 마음의 허기를 채우려 한다.

 

대중문화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먹는 장면으로 콘텐츠를 채움으로써 손쉽게 시청률을 올린다. 이런 식으로 1차원적인 자극을 활용하는 것에만 안주하면 창조적인 역량이 자라나기 힘들다. 시청자도 복잡한 스토리가 아닌 단순한 자극에만 빠져들다가 문화적 수준이 퇴화될 수 있다. 한국의 문화가 그저 먹는 수준에 고착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너도나도 맛집, 맛있는 식재료를 소개하면서 그 신뢰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맛있게 먹는 장면으로 시청자를 유혹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맛있는 것처럼 과장하게 되는 구조다. 건강에 좋다는 음식들은 과도하게 만병통치약처럼 선전되는 경향도 있다. 예능에서 고열량 가공식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면서 어린 시청자를 유혹하는 것도 문제다.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워낙 사람들의 지지가 뜨겁기 때문에 먹방 열풍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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