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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 무렵엔 발등에 오줌 싼다

草霧 2013. 6. 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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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 무렵엔 발등에 오줌 싼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16) 망종

 

시민리포터 이승철 | 2013.06.04

 

 

[서울톡톡] 6월 5일은 1년 24절기 중 하나인 망종(芒種)이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옛 속담이 있다. 그리고 때를 놓쳐 아쉬움을 나타낸 말로 "스물 넘긴 비바리"와 "망종 넘은 보리"라는 말도 있다. 조혼 풍습이 있던 옛날엔 스물을 넘긴 처녀는 노처녀로 대접받았다.

 

그럼 보리는 왜 망종 전에 수확해야 한다고 했을까? 수확 시기가 지난 보리는 줄기가 약해져 쓰러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논에 모내기하는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국토 면적이 좁고 특히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다. 더구나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많지 않았던 옛날엔 식량자급을 위해서 논에서도 2모작을 해야만 했다.

 

동남아시아 각국 등 열대 지방에서는 2모작이나 3모작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4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2모작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논에서 2모작이 가능한 작물이 보리와 벼다. 보리는 추위에 강해 겨울에도 생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가에서는 가을에 벼 수확을 마친 논에 보리 씨앗을 뿌렸다. 그 보리를 바로 요즘인 망종 무렵에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여 2모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내기하는 시기는 수확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내기하는 시기가 늦으면 벼 수확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온난화 영향으로 요즘은 모심는 시기가 많이 빨라졌지만, 옛날에는 모심기에 적절한 시기를 망종 무렵으로 잡았다. 그래서 2모작을 하는 논에서는 보리를 수확하고 곧바로 모내기를 해야 하는 아주 바쁜 시기가 바로 망종 무렵이었던 것이다. 망종이라는 말은 보리나 벼이삭 등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수확하고 심기에 좋다는 뜻에서 붙여진 절기 이름이기도 하다.

 

 

농경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태양 중심의 양력이 아니라 달을 기준으로 한 음력을 사용하며 24절기를 생활기준으로 삼았다. 보리 수확의 한계점으로 삼은 망종은 입춘, 우수로 시작하여 9번째에 해당하며, 소만과 하지 사이에 있는 절기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여진 이름인데 특이한 것은 음력의 기준인 달이 아니라 태양을 기준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 15° 이동했을 때를 청명, 그 다음은 곡우 등으로 15° 간격으로 구분하여 24절기를 나눈 것이다. 따라서 90°인 날이 하지, 180°인 날이 추분, 270°인 날이 동지이고, 춘분에서 하지 사이를 봄, 하지에서 추분 사이를 여름, 추분에서 동지 사이를 가을, 그리고 동지에서 춘분 사이를 겨울이라 하여 4계절의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서양(양력)에서는 7일(1주일)을 생활단위로 했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24절기를 기준한 15일을 생활단위로 살았던 것이다.

 

망종 절기 풍속은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하여 보리를 많이 재배했던 남쪽 지역에서는 "망종 무렵엔 발등에 오줌 싼다"고 할 정도로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호남지방에서는 '보리 그슬음'이라 하여 풋보리를 베어다 그슬려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다음해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또 풋보리를 베어 밤이슬에 적셨다가 다음날 먹으면 허리 건강과 병치레 없이 한 해를 지낼 수 있다고 믿는 풍속도 있었다. 보리 베기, 모심기 등 힘든 농사일로 인한 요통과 각종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풍속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또 충청도 등 중부 이남에서는 망종 날 천둥 번개가 치면 그 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망종 날 풋보리 이삭으로 죽을 끓여먹는 풍습도 있었다. 아직 다 여물지 않은 풋보리를 골라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긴 후에 솥에 볶아 맷돌에 갈아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리수확을 하고나면 보릿고개를 넘기며 굶주림에 시달렸던 가난한 농민들도 비록 꽁보리밥이지만 한동안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구나 모내기를 하면서 풍년농사를 꿈꾸는 농민들은 가난의 시름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다. 먼저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는 파릇파릇 뿌리내린 벼들이 싱그럽게 자라는 모습도 농민들의 마음을 넉넉하게 감싸 주었다. 작고 앙증맞은 패랭이꽃들이 곱고 예쁘게 피어나는 시기도 이때쯤이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허기졌던 가난한 농민들이 모처럼 배불리 먹고, 논두렁에서 막걸리 한 사발에 흥을 돋우던 시절이 바로 요즘 망종 무렵이었다.

 

 

 

패랭이꽃
                                     시: 이승철
칭칭 쾡자깽! 칭칭 쾡자깽!
논둑길에 울리는
농악대 풍물소리

막걸리 한 사발에
식었던 흥이 솟고
무논 가득 자란 벼들
풍년가도 드높다

어깨 춤 한 가락에
시름이 녹는 모정 마당
돌려라
열두 발 상모를
패랭이꽃이 피었구나.

이승철 시민리포터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 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 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 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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