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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읽을 권리

草霧 2013. 5. 30. 10:23

 

 

 

명작을 읽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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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당신의 삶에 말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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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지음

출판사 어바웃어북 | 2011.08.29.

형태 판형 A5 | 페이지 수 324

정가 1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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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윤정

저자 한윤정은 학창시절부터 소설과 영화를 좋아했다. 서사의 세계가 주는 풍부한 시야가 삶의 단조로움과 세속의 기준이 부여하는 좁은 시야로부터 한 개인의 정신을 자유롭고 성숙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그 반동 때문인지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역시 강했다. 두 가지 힘의 견인 속에서 작품에 나타난 현실의 양상을 찾아내거나 문화가 사회의 진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협동과정에서 공부했다. 1991년 경향신문 편집국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전국부를 거쳐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다시 쓰는 한반도 100’ ‘책 읽는 대한민국’ ‘번역가의 책 읽기등을 연재했고, 논문으로는전지구화 시대의 한국영화에 나타난 트랜스내셔널리티 연구등이 있다. 사회적 가치와 문화예술의 영역을 신문 독자에게 전달하는 문화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는 명작을 읽을 권리가 있다!

명작을 읽을 권리는 숨어 있는 명작을 찾아내거나 이 작품이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작품, 작가, 사회, 독자의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숨은 뜻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역사, 이념, 가치관, 작가의 삶 등을 살펴본다. 또한 이를 다시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명작을 읽을 권리란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향유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 책은 작품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 때에 비로소 명작이 탄생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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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당신과 공명하는 순간, 명작이 탄생한다.

명작을 만드는 것은 당신의 몫이기도 하다.

당신에게는 명작을 읽을 권리가 있다.

괴테와 같은 대문호의 소설이나 채플린과 같은 거장이 만든 영화가 명작’(masterwork)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들의 작품은 시공을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관객)와 비평가로부터 명작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만인에게 명작이라 해도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비평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로부터 달갑지 않은 평판을 받은 작품이 유독 어떤 이에게는 커다란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어떤 작품에서건 자기만의 보석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매우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나만의 명작을 갖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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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숨어 있는 명작을 찾아내거나 이 작품이 왜 명작으로 불리는지를 알려 주는, 이른바 나의 명작독법에 관한 지침서이다. 작품, 작가, 사회(배경), 독자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함의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또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역사, 이념, 가치관, 작가의 삶 등을 살펴보고, 이를 다시 독자의 삶에 투영해 보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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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자신에게서 가치 있는 광물을 채굴하고자 다가오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풍부한 광맥과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반짝거리는 금, 영롱한 수정, 혹은 금강석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보석의 존재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한낱 사금파리 조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세상만사처럼 작품에서 어떤 것을 얼마만큼 얻느냐는 각자에게 달려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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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명작을 읽을 권리란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향유하는 것을 뜻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읽기에는 정답이나 오답이 있을 수 없다. 단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르게, 특별하게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결은 독자의 삶과 공명할 때 비로소 큰 울림을 낸다. 바로 그때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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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을 읽는 권리를 향유하는 두세 가지 방법

이 책은 작품을 읽는 방식으로 크게 네 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작품을 쓴(만든) 작가의 삶을 중심으로 읽는 방식이다. 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의 창작행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이 예술작품이 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흥미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해 세상에 내놓는다. 작가 개인의 삶과 정신사의 편력, 그가 살았던 당대의 정치적·사회적·사상적 조류를 파악하면서 작품을 보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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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작가의 삶을 조명하기

이처럼 작가의 삶을 작품과 대비시켜서 읽는 방법을 작가론이라 하는 데,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을 때 작가론의 관점은 빛을 발한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다음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다.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다시 전쟁터로 달려갔고 이 때의 경험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들어있다. 의사였던 아버지처럼 어렸을 때부터 낚시를 즐겼던 그는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에서 산티아고라는 늙은 어부와 커다란 청새치의 85일에 걸친 대결을 통해 삶의 열망과 실패, 그래도 끝내 버릴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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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지지하며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을 1984동물농장과 같은 저작에서 풀어놓았다(33). 이 밖에도 유년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던 작가 오정희가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쓴 단편 중국인 거리(22), 6·25전쟁 세대인 김은국과 최인훈의 소설순교자광장(296) 등도 작가의 삶이 작품에 직접 투영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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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가의 삶만으로 쉽게 와 닿지 않는 작품들도 꽤 있다. 이 경우, 해당 작품과 관련이 있는 다른 작품을 함께 읽어볼 것을 이 책은 권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특히 그러하다. 작가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반영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댈러웨이 부인과 이를 모티브로 울프의 삶을 다룬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를 함께 배치해 다룬다.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를 읽은 뒤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다면 난해한 울프의 문체들이 훨씬 친절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스티븐 달드리의 영화 <디 아워스>까지 함께 한다면, 울프의 삶과 작품은 어느새 읽는 이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디 아워스그리고 영화 <디 아워스>까지 무려 세 편의 명작이 당신의 삶에 말을 거는 것이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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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작품을 서로 되비춰보기

작품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살펴볼 때 더욱 흥미로운 관점은 텍스트 간의 상호 영향이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다. 작품이란 삶의 모방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른 작품의 모방이기도 하다. , ‘모방이라는 창작 기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창작의 근본 기조였다. 창작자로서의 작가의 존재가 두드러진 오늘날에도 모방은 오마주, 패러디, 다시쓰기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중요한 창작 수단으로 변주되고 있다. 명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한 작품은 다른 작품의 메아리이며 선배 세대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한 응답이다. 작품과 작품이 서로를 되비추는 방식을 통해 특정 작품은 더욱 확장된 범위에서 보다 정교하게 읽힌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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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본 소설가 미즈무라 미나에는 자신의 장편 본격소설의 서문에서 스스로의 작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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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서서 서양 문명의 지배가 온 세계에 확대되고, 서양소설이 잇따라 일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이래 의식 했든 그렇지 않든 일본의 많은 소설가는 서양소설에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자기 언어로 써 보고 싶다는 모든 예술의 근원에 깃든 모방의 욕망에 사로잡혀 일본 근대문학을 꽃피워 갔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시도는 일본 근대문학의 큰 흐름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 큰 흐름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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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소설을 일본어로 다시 쓰기는 비단 일본 근대문학의 관습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문학의 공통적인 과제였다. 중국의 루쉰이나 한국의 이광수도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처럼 서양소설의 형식에 자국의 경험과 정서를 담아내면서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자리매김 됐다. 이런 문학사의 흐름을 의식한 미즈무라는 모방을 자기 소설의 기법으로 채택했다. 그녀는 영국인들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애소설 중 하나로 꼽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일본식으로 각색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본격소설이다. 본격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앞서 읽었던)폭풍의 언덕을 떠올리지만, 본격소설폭풍의 언덕을 베꼈다는 도덕적 고려는 하지 않는다. 두 작품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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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시대와 역사를 반추하기

작품을 작가의 자기표현으로만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거기에 사회적 맥락을 끌어들이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작품은 어느 경우에나 시대의 거울로서 그 시대의 고유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을 현실의 반영으로 보는 것은 매우 오래된 미학적 전통이기도 하다. 위대한 예술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라는 모방이론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작돼 근대까지 꾸준히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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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통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됐다. 유물론자들은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영역인 상부구조와 물질적 토대인 하부구조를 나누고, 상부구조에 속한 문학과 예술은 사회적 현실이라는 큰 골격 내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게 사회적 현실은 작품을 생산하는 분명한 배경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관계가 일방통행인 것만은 아니다. 작품은 현실에 의해 창조되는 동시에 의식을 변혁시킴으로써 현실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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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작품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것은 작품 바깥의 객관적인 현실을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라 작가가 사회를 인식하는 방식, 거기에 작용되는 관습과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는 담론 분석이 될 수밖에 없다. 특정 시대에 특정 작가가 자기 시대를 읽어내는 방식은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되짚어볼 때 그 가치와 함께 한계와 모순까지도 드러낸다. 가령 신역사주의자들은 작품 속의 역사적 맥락을 꼼꼼하게 짚어봄으로써 주류의 역사 속에 가려진 하위집단(마이너리티)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이중의 읽기를 시도한다. 작품과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함께 고려함으로써 숨은 그림이 드러나는 것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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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나온 지 50년 만에 리메이크된 영화 <하녀>는 작품을 통해 시대를 읽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207). 영화 속 하녀라는 신분을 통해 1960년대의 한국사회와 2010년의 한국사회의 계급성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에는 웬만한 집에서도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여성을 하녀(식모)로 쓸 수 있었지만 오늘날 주인에게 종속된 하녀의 존재가 가능한 집은 재벌가라는 점이 주인집을 더욱 상류층으로 올려놓는다. 김기영 감독의 원작이 집안을 파멸시키는 악녀(이른 바 팜므 파탈)로서 하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녀의 내적 동기나 배경을 생략한데 비해, 임상수 감독의 리메이크 작품은 공고한 계급구조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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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농민(소멸하는 삶, 소멸하는 계급 _178), 페미니즘과 결혼(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 방정식 _227), 지역성(경계지대에 사는 불안한 소녀들 _22, 어둡고 깊은 자본주의 골짜기에 관한 기억 _276), 세대성(민주화 세대의 후일담 _286, 베이비 붐 세대의 영화 _306) 등 제도와 가치관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작품의 결은 한층 섬세하게 전달된다. 또한 아톰(248), 디즈니의 공주들(217), 뱀파이어(266), 춘향(257)과 같은 작품 속 캐릭터들은 시대를 달리하며 새로운 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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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나(독자, 관객)를 집어넣기

작품은 어떻게 읽혀지는가에 따라 울림 그득한 명작이 되기도 하고, 그저 그런 소품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작품의 운명은 읽는 이(독자, 관객)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반응비평을 확립한 볼프강 이저는 문학적 편견에 오염되지 않은 독자들의 상식에 의해 텍스트의 장점에 대한 모든 주장이 판가름 나야 한다면서 독자를 재판관의 자리에 앉혀 놓았다. 또한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텍스트는 게으른 기계와 같아서 제가 할 일을 독자에게 나누어주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텍스트는 독자로부터 해석을 끌어내기 위해 고안된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코는 독서행위의 일방적 우위를 주장한 게 아니라 작품 창조와 해석의 공통 기반을 지적한 것이다(16). 작품 속 이야기는 독자의 삶에 스며들며, 독자는 작품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투영시킨다. 이처럼 둘의 관계는 매우 흥미로운 카테고리로 연결되면서, 또 다른 플롯을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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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명작을 읽는가

명작을 읽는다는 것은 이 모든 읽는 방법의 시작과 끝, 그리고 교차로에 있다. 작가와 사회, 작품과 독자, 작가와 작품, 사회와 독자는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작가는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거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사회는 작가와 독자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작품은 작가의 산물임과 동시에 독자의 산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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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작가와 독자, 작품과 사회 사이에도 양방향의 화살표가 성립한다.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작가는 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든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항상 작품을 읽을 대상을 상정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작품과 사회 사이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품은 사회를 변화시키며, 사회는 작품을 탄생시킬 뿐 아니라 새롭게 해석할 만한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작품이 존재할 수 있는 모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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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만들어내는 순환구조, 이를 통해 증폭되는 관심의 확장은 읽기란 행위를 더욱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즐거움과 교훈, 지식을 얻고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한 이정표로서 읽기를 계속한다. 이런 삶의 나침반은 항상 등장인물과 플롯이 있는 이야기의 형태로서 주어진다. 단순한 이야기에서 복잡한 이야기로, 여러 층위가 있고 다양한 가치들이 격돌하는 복합적인 텍스트로 옮아가면서 우리의 사고는 더욱 말랑말랑해지고 세상을 포용하는 힘은 더욱 커진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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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싱싱한 나무들로 가득 찬 숲이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수많은 오솔길과 목마름을 달래주는 생명수를 제공한다. 그것은 다양한 관점의 접근을 허용한다. 읽기에는 정답이나 오답이 없다. 단지 각자의 위치에서 다르게, 특별하게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명작을 읽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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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의 주인공 경수 역시 이런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찌질하다. 영화가 참패했는데도 영화사에 찾아가 200만 원의 개런티를 받아 낸다. “나 당연히 받을 거 받는 거야라고 항변하는 그에게 선배인 영화감독은 사람 되는 거 참 힘들어. 하지만 괴물은 되지 말고 살자, 이 작품의 모티브에 해당하는 대사를 던진다. 이후 영화는 경수가 어떻게 처절하게 망가져 괴물이 되어 가는지를 보여 준다. _136산사의 전설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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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인 바틀비의 거부는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체제를 교란시키는 일이다. 그의 지독한 수동성은 능동적인 비판이나 투쟁과는 다르다. 비판과 투쟁이 체제를 인정하는 일인 데 비해 바틀비는 아예 자신을 둘러싼 체제를 무화시킨다. 그는 월급을 받으면 고용주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는 명백한 규칙에서 비켜 서 있다. 건물의 소유주가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는 것, 수용소에서 밥을 주면 먹어야 한다는 일상적 규범 역시 바틀비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는 우연히 끼어든 불순물이며 소속이 없는 제거 대상이란 점에서 자신이 취급하던 배달 불능 우편물과 같은 처지다. 바틀비는 체제의 얼룩이자 잉여로서 체제의 근간을 흔든다. _172지독한 수동적 저항으로 무장한 전사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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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처한 생존 조건은 이들에게 프롤레타리아 계급과는 다른 시간관과 문화를 갖게 만든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단한 변형과 증대 및 진보라는 자본주의적 시간관에 자신들을 내맡긴 계급이라면 농부에게 과거·현재·미래는 변화가 없는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즉 도시의 산업경제에서는 더 발전한 기술과 더 큰 생산성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한다. 그러나 농촌의 삶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별다른 자연재해가 없이 여름을 지내야 가을에 예상한 만큼의 곡식을 거두고 최소한의 식량을 마련해 겨울을 날 수 있는 순환의 반복이다. 이렇게 다른 삶의 조건은 전통에 대한 농민들의 존중과 그들의 보수성을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 농부가 전통을 지키는 이유는 그것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약이기 때문이다. _183소멸하는 삶, 소멸하는 계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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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란 책이 있다. 서점 점원이 착각해 낚시 코너에 꽂아 놓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이 책은 미국 비트세대 작가인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67년에 발표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다. (중략) 죽어간 것은 송어만이 아니다. 송어를 따라서 미국의 정신도, 미국인의 꿈과 희망도 사라졌다. 독재자인 목동은 순응하는 양떼를 몰고 가고, 6학년 학생들은 1학년들에게 송어낚시에 대해 알려 주려다가 교장의 제지를 받는다. ‘는 온천에서 아내와 정사를 하다가 피임을 위해 물에다 사정하는데 허옇게 뭉친 정액 사이로 죽은 송어가 둥둥 떠다닌다. 불임과 죽음의 이미지가 공명하는 장면이다. (중략)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다. 화자의 친구는 구세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쓰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팔아서 번 돈으로 미국의 송어낚시 황금펜촉을 사서 에게 선물한다. 이는 로 하여금 미국의 송어낚시 황금펜촉이 종이에 눌러 만들어 내는, 강변을 따라 서 있는 서늘한 녹색 나무들과 야생화와 송어의 검은 지느러미는 정말이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상상력과 글쓰기를 통해 목가적 꿈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_188저항적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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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속의 젊은 브래드 피트는 금발과 푸른 눈, 싱그러운 미소를 지닌 미국의 아이돌이다. 젊은 로버트 레드포드를 그대로 닮은 그는 완벽한 삶을 가장하면서도 내면의 공황을 견디지 못해 자폭하는 청춘을 연기한다. 그런 폴의 캐릭터는 짧은 역사 속에서 청교도 특유의 높은 도덕적 이상주의와 이에 모순되는 팽창주의(인디언 학살, 흑인노예제)라는 극단적 양면성에 이끌려 온 미국을 상징한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런 두 가지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의 상징이다. _192숲과 강에서 삶의 본질을 목도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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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이 집안을 파멸시키는 악녀로서 하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녀의 내적 동기나 배경을 생략한데 비해 리메이크 작품은 공고한 계급구조로 눈을 돌린다. 은이의 허벅지에 난 커다란 화상 자국은 선명한 하층계급의 상징이며, 그녀가 주인 남자와의 관계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끼거나 그의 딸 나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장면은 지배계급의 부도덕성이나 무감각과 대비되는 인간적 면모로 그려진다. 은이가 자살하는 순간 소화용 스프링클러가 바로 작동할 만큼 주인 가족들의 보호막은 확실하다. 하녀의 죽음 앞에서 황급히 집을 빠져나간 이들은 그 악몽을 잊기 위해 미국으로 가 그곳에서 일상을 이어간다. 결국 갈수록 비인간화하고 무뎌지는 감성만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중략) 리메이크한 <하녀>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의도했던 견고한 계급구조는 우리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거실의 샹들리에이건 건설현장의 크레인이건 하층계급은 막다른 지점으로 기어오르는 일을 거듭하고 있고, 지배계급은 떨어지는 자들로 인해 혹여나 자신들의 견고한 대리석 바닥과 높은 평판이 상처날까봐 노심초사 한다. 소외되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몸부림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전히 고요하기만 하다. _215가정파괴범에서 계급사회의 희생양으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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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란 신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백설공주나 오로라, 에리엘, 자스민은 원래 공주로 태어났지만 나머지는 왕자 혹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강한 남자와 결혼함으로써 후천적으로 공주가 되거나 공주처럼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아름다운 그녀들은 각자 다른 종류의 고난을 겪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착하고 친절한 마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앞에 ~’ 하고 왕자가 나타나면 행복은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중략) 디즈니사는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외에도 40편의 애니메이션을 더 만들었으나 이 회사 수입의 많은 부분은 공주들이 벌어들였다. 영화 상영으로 인한 수입뿐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져 어린 소녀로부터 그 소녀의 어머니까지 전 세계 많은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월트 디즈니가 직접 설계한 플로리다 올랜도 디즈니랜드의 폐장 행사에서 화려하게 피날레를 장식하는 공주들의 퍼레이드는 디즈니가 얼마나 공주들을 자신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_217정치적 올바름을 향해 진화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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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매력과 비애에 가장 먼저 눈을 돌려 대중의 관심을 끌어낸 이는 시인이자 나중에 영화감독이 된 유하였다. 그는 두 번째 시집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 압구정동 특유의 소비문화와 거기에서 느끼는 자신의 페이소스를 솔직하고 대담한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로서 강남의 존재를 증명했다. (중략)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어둡다. 강남의 화려한 고층건물과 아파트숲 사이에 자리 잡은, 강남경제를 떠받치는 투명한 착취구조는 갈수록 깊고 어두운 골로 파여진 크레바스를 양산한다. 구찌 가방을 모셔놓은 쇼윈도 속 조명에, 날렵하게 빠진 포르셰 헤드라이트에, 그리고 성공을 보장하는 유명학원 네온사인에 취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춤을 춘다. 또한, 크레바스 사이에 갇힌 사람들은 바로 그 불빛 아래 그림자에서 소외감으로 몸부림친다. 현실에서든 문학에서든 영화에서든…… 강남은 그런 곳이다. _285어둡고 깊은 자본주의 골짜기에 관한 기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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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비슷한 말이지만 개념상 차이가 있다. 공간이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곳인 반면, 장소는 개인의 기억과 흔적이 남아있는 특정한 곳을 가리킨다. 대개 현대의 대도시는 공간이지 장소가 아니다. 시간의 때가 묻은 장소는 누추한 청산 대상으로 전락해 개발과 재개발의 거센 물결을 피할 수 없다. 기억과 흔적이 담긴 집과 골목, 거리가 사라진 공간에는 성냥갑 같은 아파트나 초고층 건물 들이 들어선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점차 공간적 제약이 사라지는 첨단의 삶은 장소의 실향민을 만들어낸다. 그러하건대 근대화 자체가 장소 상실의 역사를 의미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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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사라지는 장소는 예술 속에서 기억된다. 예술은 시간을 보존하며, 장소의 아우라를 간직한다. 사진과 미술도 그렇지만, 소설이나 영화 같은 서사예술은 공간에 깃든 당대의 생활상을 기록해 놓은 일종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정희의 단편소설 중국인 거리와 정재은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50년의 시간차를 두고 바라본 인천이란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소녀들의 성장기가 담긴 두 작품에서 인천이란 다층적인 공간은 다양한 이야기의 결을 제공하면서 장소 특정적인 예술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_22경계지대에 사는 불안한 소녀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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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화자(話者)의 시선에 늘 어른거리는 건 중국인 거리의 이층집 덧창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젊은 남자의 창백한 얼굴이다. 무표정하고 노란 중국 남자의 얼굴은 삶의 비애와 공허를 담고 있다. 전쟁 직후의 폐허, 그 중에서도 가장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인천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작가는 1950년대를 살았던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수놓듯이 꼼꼼하게 묘사했다. 비유와 상징, 복선, 공감각을 동원한 작가의 단단한 문체는 마른 미역이 물에 풀리면서 엄청나게 불어나는 것처럼 단편의 짧은 분량이면서도 당대의 모습을 독자의 머릿속에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_26경계지대에 사는 불안한 소녀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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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현실이다. 물론 그 현실은 진짜 현실이 아니라 상상 속의 현실이다. 그런데 진짜 현실 역시 그것이 발생하는 순간,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사라지고 기억의 공간으로 접어든다. 또 기억이란 언제나 적당히 윤색되기 마련이어서 진짜와 상상의 경계는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 직접 겪었던 일보다 허구로 접했던 일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거나 개인의 사고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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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서사와 현실의 세계가 구분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소설과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식의 경계 넘나들기는 창작자들에게도 찾아온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창작활동을 하는 환경 자체가 작품의 소재가 된다. ‘자기반영적 예술이라고 불리는 이런 작품들은 독자나 관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예술 주변의 세계를 소재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동시에 예술이 발 딛고 서있는 기반을 검토함으로써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갱신하는 신선한 자극을 준다.

_100작품은 현실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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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란 삶과 가장 가까운 모습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 동시에, 일상과 완전히 같지는 않은 어떤 차원을 보여준다. 서사는 거칠고 난삽하며 동시다발적인 삶에 선형적인 질서와 의미를 부여한다. 나아가 삶은 서사의 형태로서 우리에게 기억되며 사후적으로 그 의미를 깨닫게 만든다. 우리 삶의 파편적인 시간들은 서사라는 실위에 한 줄로 꿰어지는 구슬과 같다. 이야기는 잿빛 삶에 색깔을 부여하고 변형이나 가정, 객관화, 거리두기를 통해 절망과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야기에 매료되는 건 이 때문이다. _109작품은 현실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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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더 높은 시의 경지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었다. 시는 진실과 정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만족의 상태가 아니라 작고 슬픈 것들에 대한 연민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 속에서 비로소 시가 들리고 시가 읊어지며, 마침내 시가 써지는 것이다. _121시가 내게로 왔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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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는 동시대의 일상을 세심하면서 신랄하고 낯설게 보여 줌으로써 특별한 사건이 없이도 관객들에게 정서적 충격을 던져 왔다.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은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일기장에조차 적기 어려운 속물성에 젖어 있다. 째째하고 구차스럽고 모순적이고 부끄러운, 그렇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소시민적 모습이 홍상수의 캐릭터가 지닌 흡인력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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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명작, 또 다른 명작을 낳다

경계지대에 사는 불안한 소녀들 _중국인 거리 / 고양이를 부탁해

지극히 평범했던 어느 해에 관한 추억 _from 1984 To 1Q84

고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여성들 _댈러웨이 부인 / 디 아워스

용서를 구하는 두 가지 방법 _서편제 / 밀양

본격소설의 시대가 지나가다 _폭풍의 언덕 / 본격소설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세 번의 만남 _인연 / 순애보

청춘의 열병이 만들어낸 장르 _호밀밭의 파수꾼 / 개밥바라기별

집을 떠나야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을까 _오즈의 마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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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 명작, 텍스트와 이미지로 태어나다

작품은 현실이다 _ 소설 / 올리브나무 사이로

시가 내게로 왔다 _일 포스티노 /

책의 마법에 걸리다 _책 읽어주는 여자 / 더 리더

산사의 전설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다 _부석사 / 생활의 발견

수도자와 소년의 아름다운 인연 _오세암 / 마르셀리노의 기적 /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정념의 요리, 사랑의 요리 _/ 바베트의 만찬

사랑의 끝에서 죽음을 만나다 _성에 / 감각의 제국

지독한 수동적 저항으로 무장한 전사들 _먼 그대 / 필경사 바틀비 /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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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 명작, 이념과 가치관에 고뇌하다

소멸하는 삶, 소멸하는 계급 _워낭소리 /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

저항적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_ 미국의 송어낚시 / 월든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꾼다 _은어낚시통신 / 49호 품목의 경매

가정파괴범에서 계급사회의 희생양으로 _하녀의 운명

정치적 올바름을 향해 진화하다 _디즈니의 아홉 공주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사랑 방정식 _결혼은, 미친 짓이다 / 아내가 결혼했다

나의 국적은 자이니치’ _박치기 /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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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4 명작, 시대와 역사를 건너다

서구 근대에 무릎 꿇은 아시아의 비애 _‘아톰20세기

시대의 욕망을 되비추는 거울 _춘향의 영화

혐오스런 이교도에서 금지된 사랑의 아이콘으로 _드라큘라의 변신

어둡고 깊은 자본주의 골짜기에 관한 기억 _강남형성40

상처와 환멸, 희망의 문학 _민주화 세대의 후일담

한국전쟁이 남긴 심오한 질문 _순교자 / 광장

격동의 역사를 살아 온 고단한 삶의 주인공들 _베이비 붐 세대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