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게 세상구경을 물어본다./지식의 피라미드

근현대사 역사탐방 22탄, 문화양념통 민간인 학살 (1947년 ~ 1955년) - 2

草霧 2012. 10. 25. 12:19

 

 

근현대사 역사탐방 22

 

 

문화양념통

 

 

 

민간인 학살 (1947~ 1955) - 2

 

 

 

 

 

http://www.genocide.or.kr/

http://www.coreawar.or.kr/

http://www.ohmynews.com/NWS_Web/Tag/index.aspx?tag=%EB%AF%BC%EA%B0%84%EC%9D%B8%ED%95%99%EC%82%B4

http://www.youtube.com/watch?v=8XsxlEvQ-Uo

http://www.youtube.com/watch?v=EEpQSFdDw2s

민간인 학살 관련 동영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3. 한국전쟁

 

 

 

1) 한국군에 의한 학살

한국군에 의한 작전 중의 학살

1949년 겨울 이후 대규모의 빨치산 토벌

1950년 겨울 함평, 남원, 순창의 공비 토벌 작전

 

거창 양민 학살 사건(居昌良民虐殺事件)

 

 

 

거창 양민 학살 사건(居昌良民虐殺事件)1951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한국군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이다. 공비 소탕 명목으로 500여명을 박산(朴山)에서 총살하였다. 그 후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었으나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 김종원(金宗元) 대령은 국군 1개 소대로 하여금 공비를 가장, 위협 총격을 가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국회 조사 결과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내무·법무·국방의 3부 장관이 사임하였으며, 김종원·오익경·한동석·이종배 등 사건 주모자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얼마되지 않아 모두 특사로 석방되었다.

지리산빨치산토벌전시관

 

 

http://www.doopedia.co.kr/?gs=ws&gd=&cd=&d=&k=&inqr=&indme=&p=1&q=%25B0%25C5%25C3%25A2+%25BE%25E7%25B9%25CE%25C7%25D0%25BB%25EC+%25BB%25E7%25B0%25C7&masterno=7735&contentno=7735

 

 

산청·함양 양민 학살 사건 (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 (山清咸陽良民虐殺事件)195127일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 주민에게 공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군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00.html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07696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225

 

신천군 사건

 

신천군 사건은 한국 전쟁중 일어난 사건으로 195010, 황해도 신천군에서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5천여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신천 학살 혹은 신천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북한에서는 신천대학살이라고 부른다.

신천박물관을 설립

이제는 말할 수 있다-망각의 전쟁편(20024월 방영)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

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입성 소식을 미리듣고 봉기한 지역 우익청년단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다.

작가 황석영 2001<손님> 역사소설을 발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3/08/005000000200308062253088.html

http://www.minjog21.com/news/articleView.html?idxno=799

http://ko.wikipedia.org/wiki/%EC%97%AD%EC%82%AC%EB%AC%B8%EC%A0%9C%EC%97%B0%EA%B5%AC%EC%86%8C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29/2011062900153.html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81409.html

 

19512월 초순 11사단 9연대가 산청, 거창, 함안 지역

태워 없애고, 굶겨 죽이고, 죽여 없애는이른바 삼진(三盡), 삼광(三光) 작전

이승만 정권은 공비 협력자 187명을 군법 회의에 넘겨 처형한 사건이라고 발표와 군법회의 회부

 

 

126함평 불갑산 민간인 학살 사건

 

담양 장성 민간인 학살

http://blog.daum.net/bolee591/16154499

http://mokpombc.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70757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090717081210795

http://mokpo.kbs.co.kr/news/news_01_01_view.html?no=2724351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j3799&logNo=30140480865

 

강화 양민학살 사건(江華良民虐殺事件)

 

강화 양민학살 사건(江華良民虐殺事件)19511월에 인천광역시 강화도 주민들이 조선인민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군에게 학살당한 전쟁범죄이다.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41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15/2011011500747.html

 

 

함평 11사단 사건 [咸平十一師團事件]

 

195011월부터 19511월 사이에 전라남도 함평군 일대에서 공비 토벌을 위해 주둔했던 국군 제11사단 소속 20연대 2대대 5중대가 민간인을 집단으로 총살한 사건.

 

1960520~21한국일보이상문 기자가 나는 시체더미서 살아나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05년 재조사에 들어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2007년 주민 249명이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부는 2009년 처음으로 유족회에 위령제 예산 700만 원을 지원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mallnews&logNo=67313737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nta735&logNo=130017803505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558335

 

 

고창11사단사건[高敞十一師團事件]

 

1950~1951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 고창 지역 공비 토벌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집단 희생 사건의 가해 주체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6중대와 8중대로 확인되었다.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http://www.ktruth.org/)

 

http://cafe.daum.net/bosangbodo/MSkr/18?docid=1OeOM|MSkr|18|20111005173650&q=%B0%ED%C3%A211%BB%E7%B4%DC%BB%E7%B0%C7

http://cafe.daum.net/bosangbodo/MSkr/58?docid=1OeOM|MSkr|58|20111019151835&q=%B0%ED%C3%A211%BB%E7%B4%DC%BB%E7%B0%C7

http://cafe.daum.net/truthpower/AFfC/1?docid=1QND0|AFfC|1|20120622111651&q=%B0%ED%C3%A211%BB%E7%B4%DC%BB%E7%B0%C7

http://cafe.daum.net/truthpower/AFfC/46?docid=1QND0|AFfC|46|20120820184928&q=%B0%ED%C3%A211%BB%E7%B4%DC%BB%E7%B0%C7

 

고창월림사건[高敞月林事件]

 

195010월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 인민군이 고창군 무장면 월림리 지역을 점령한 195010월께 마을의 주도권을 장악한 천씨 일가와 좌익 사상을 가진 이들이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중대장 김용식의 일가 53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공비 토벌 중이던 중대장 김용식은 이 소식을 듣고 가족 살해 가담자와 부역 행위자로 지목된 월림 지역 주민 95명을 보복 사살하였다.

 

창월림사건은 6·25전쟁 중 국군과 남하한 인민군이 후퇴와 이동을 거듭하던 시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예전부터 존재하던 성씨 간의 갈등과 이념 대립에서 비롯된 참극이다. 무장한 경찰 부대가 공비 소탕, 부역자 처벌이라는 공적인 임무 수행을 내세워 비무장·비교전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 살해, 공권력이 불법 남용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는 사건 당시 김용식을 사법 처리하기는 하였으나,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 2007112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고창월림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였다.

 

http://cafe.daum.net/bosangbodo/MSkr/12?docid=1OeOM|MSkr|12|20111005155444&q=%B0%ED%C3%A2%BF%F9%B8%B2%BB%E7%B0%C7%5B

http://cafe.daum.net/bosangbodo/MSkr/12?docid=1OeOM|MSkr|12|20111005155444&q=%B0%ED%C3%A2%BF%F9%B8%B2%BB%E7%B0%C7%5B

http://cafe.daum.net/anticandy/7sBX/820?docid=Hp4V|7sBX|820|20071129104158&q=%B0%ED%C3%A2%BF%F9%B8%B2%BB%E7%B0%C7

 

보도연맹 사건(保導聯盟事件)

 

 

보도연맹 사건(保導聯盟事件),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를 포함해 적어도 20만 명 남짓을 살해했다고 여겨지는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1]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에는 미군도 민간인 집단 학살 현장에 개입했다.[2]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철저히 은폐했고 금기시해 보도연맹이라는 존재가 잊혀져 왔지만, 1990년대 말에 전국 각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시체가 발굴되면서 보도연맹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임이 확인됐다. 현재에도 사건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국민보도연맹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1948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와 국민의 사상을 국가가 나서서 통제하려는 이승만 정권이 대국민 사상통제를 목적으로 194965일에 조직했던 대한민국 반공 단체로, 흔히 보도연맹이라고 부른다.

이승만 정권의 대국민 사상통제 목적으로 결성

보도연맹원 가입

보도연맹원 학살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우발적인 학살이 아닌 철저히 일관된 명령체계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인 학살이었다.

4.19 혁명직후 제2공화국 정부의 진상조사 노력과 좌절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조사

전남 구례 봉성산, 대전 산내 골령골, 충북 청원 분터골,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등 4곳 유골 발굴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인 국가범죄, 보도연맹원 학살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결과

전국적인 대량학살

20091126일로 잔살화해위원회 조사 종결

청소년 학살

머나먼 과거사 청산

유족들의 법정 소송

학살에 저항한 사람들

충북 영동군 김춘옥, 김노헌 부부

충북 영동의 이섭진 용화지서장

보도연맹 사건에 관한 논쟁

보도연맹에 대해 가장 우려한 부분은 위장 전향 좌파세력들이 유사시에 보도연맹 조직을 이용해 반정부적 활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보도연맹원 학살을 반정부활동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정당화한다. 실제로 인민군 서울 점령 치하 당시 보도연맹원들이 인민재판을 열어 일부 우익인사를 살해했던 것은 사실이다.

영화와 문학에서의 언급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조정래의 역사소설태백산맥,

이창동의 소설 소지(燒紙)

20081월에 노무현대통령은 '과거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양민학살 행위'사과

오늘날, 매년 보도연맹 사건으로 집단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합동 위령제를 열고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9896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0180990&q=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0187047&q=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9841.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261803185&code=94010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9896

http://www.vop.co.kr/A00000276492.html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7607.htm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0140063&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91126115504424&p=yonhap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10&newsid=20091126165721724&p=nocut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209867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202460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140034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3940521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4#

http://www.kbs.co.kr/end_program/1tv/sisa/manhistory/vod/1264317_968.htm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073663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022408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986536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0180990&rtes=y

 

 

국민방위군 사건(國民防衛軍 事件)

 

 

 

국민방위군 사건(國民防衛軍 事件)은 한국전쟁중 195111·4 후퇴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12~2월사이에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 가운데 아사자, 동사자가 약 9만에서 12만여 명에 이르렀던 사건을 말한다.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인해 예비병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자, 중공군 및 조선인민군에 대항하고자 제2 국민병을 편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국민방위군이다. 최초에 대동청년단 단장 김윤근을 육군 준장에 임명한 뒤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추가로 병력을 모집하였다. 부사령관에는 중국 독립운동가 출신 윤익헌이 대령으로 특별 임명된 뒤 보직되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에게 군수보급, 물자를 지급해야할것을 고급 장교들이나 간부들이 이를 부정 착복, 횡령하여 수많은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이 아사하거나 동사하는 사태가 속출하였다.

 

첫 부대 소집

죽음의 행렬과 고위간부들 예산 유용

비리에 대한 제보

사건에 대한 책임처벌과 정치적 영향

국회의 발표

정치인들의 자금 수수

 

그때까지 각종 청년단체의 총무부장을 역임하며 수완을 발휘했던 부사령관 윤익헌이 사령관 김윤근을 대신하여 방위군 운영을 실질적으로 담당하고 있었다. 이는 김윤근과 윤익헌이 모두 인정한 사실이다. 국민 방위군 참사는 방위군 부대의 운영을 이승만의 친위조직인 대한청년단과 그 청년단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청년방위대에게 맡겼기 때문에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징집된 이들은 명부도 없고 군번도 없고 무기도 없고 군복도 없는 군대. 일명 '죽음의 대열', '해골들의 행진'이라 불린 바로 그런 군대가 국민방위군이었다. 명부도 없으니 몇명이 동원되었고,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죽었는지는 오늘날 현재에도 정확히 모른다. 추측상으로 정부의 공식기록인 '한국전란1년지'에는 천수백명 사망으로 돼 있지만, 당시 소문으로는 5만명 내지 10만명이 죽었다고 알려졌다. 중앙일보 간행의 '민족의 증언'에 따르면 '50만명의 대원 중 2할가량이 병사나 아사했다'고 정리되어있고, 부산일보 간행의 '임시수도 천일'에는 사망자가 5만여명으로 정리되있다. 역사학자 중에서는 이승만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유영익 교수조차 이 사건을 “9만명가량의 군인이 동사,아사,병사한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방위군 사건을 계기로 군입대 기피현상이 증가하였고, 이승만 내각의 신뢰도는 급격히 실추하게 된다.

 

또한 사태를 일으킨 신성모, 김윤근, 윤익헌 등은 독립운동가 출신이라는 점에서 한민당과 민국당계에 일부 존재하던 친일파들에게 공격의 명분을 주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통령 이시영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승만에게 호의적이었던 한민당과 민국당계 인사였던 조병옥, 윤보선, 김성수 등은 이승만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된다.

진실화해위 진상조사

 

국민 방위군 사건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또 하나의 대형 인재참사이자, 군 고위 간부들의 총체적인 부패함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당시 방위군에 징집되어서도 약간의 뇌물을 바치기만 하면 얼마든지 그 죽음의 행렬에서 빠질 수 있었다고 한다.

 

국민방위군 징집자들이 국가권력에 의해서 직접적인 학살을 당한 것은 아니었으나, 군 고위 간부들이 이들에 대한 처우와 관리의 실태를 보면 사실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또 다른 형태의 민간인 학살이라고 해도 될 만큼 국민방위군 참사는 그 규모가 크고 끔찍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통역장교로 있었던 리영희가 이때 참상을 목전에서 보고 겪었다고한다. 리영희에 따르면 '미군 고문단 장교와 함께 무리하게 보급품을 빼서 그들을 도왔다.'고 한다. 이어 리영희는 “6·25 전쟁 죄악사에서 으뜸가는 인간 말살행위였다고 회고했다.

 

단 한달여의 행군 끝에 9만 명이 목숨을 잃고도 아무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던 희대의 사건 국민 방위군 참사는 한국전쟁 기간 중 보도연맹 사건과 더불어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1568853

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0&gid=523808&cid=307136&iid=252154&oid=055&aid=0000189104&ptype=01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090854041&code=940202

http://www.doopedia.co.kr/?gs=ws&gd=&cd=&d=&k=&inqr=&indme=&p=1&q=%25B1%25B9%25B9%25CE%25B9%25E6%25C0%25A7%25B1%25BA+%25BB%25E7%25B0%25C7&masterno=22027&contentno=22027

http://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23883

http://kilsp.jinbo.net/publish/2001/010618.htm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5922&yy=200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0623016

 

, , 우익 단체에 의한 부역 혐의자 학살

한국전쟁처럼 전선이 계속 이동하고, 점령 담당 세력이 바뀌는 내전의 상황에서 군과 경찰, 좌우 양 민간인 간의 보복적 충돌은 거의 피할 수 없다.

 

1950928일 서울 수복 후, 이승만의 적 치하에 부역한 자를 적발할 것<대한 경찰전사>에는 반정부 감정 포지자로서 분류, 이러한 보복적 살해와 재산 탈취 예방을 위하여, 121일 국회의 사형(私刑) 금지법 공표하였으나, 그러나 미군정 그레고리 핸더슨은 당시 미 재판 처형자가 약 1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1·4후퇴 이후 경찰의 주도로 이루어진 불법적인 부역자 처벌의 대표적인 예는 고양 금정굴 학살 사건이다.

 

고양 금정굴 학살 사건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10/08/0200000000AKR20121008169400060.HTML?did=1179m

http://www.bybook.co.kr/shop/shopdetail.html?brandcode=005013000219

http://imuyol.tistory.com/17

http://news1.kr/articles/468821

http://blog.daum.net/ks7777/16140963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080915222714535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7391106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astawyf&logNo=7014715702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huijiao&logNo=110118737327

 

태극단

파주, 강화의 갑곶 나루터 민간인 학살

 

http://cafe.daum.net/genocide21/EGdW/1?docid=zGqh|EGdW|1|20050601201717&q=%B0%AD%C8%AD%C0%C7%20%B0%A9%B0%F9%20%B3%AA%B7%E7%C5%CD%20%B9%CE%B0%A3%C0%CE%20%C7%D0%BB%EC

http://cafe.daum.net/genocide21/EFIe/1?docid=zGqh|EFIe|1|20050528220007&q=%B0%AD%C8%AD%C0%C7%20%B0%A9%B0%F9%20%B3%AA%B7%E7%C5%CD%20%B9%CE%B0%A3%C0%CE%20%C7%D0%BB%EC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4190492

http://cafe.daum.net/flowergrden/FkHY/43?docid=VEl7|FkHY|43|20041130124013&q=%B0%AD%C8%AD%C0%C7%20%B0%A9%B0%F9%20%B3%AA%B7%E7%C5%CD%20%B9%CE%B0%A3%C0%CE%20%C7%D0%BB%EC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gong92&logNo=40051569939

 

부역자 학살은 강화의 경우 대한 정의단, 일민주의 청년단, 민주청년 반공 결사대, 향토단 등이 조직되었으며, 이들이 이후 수복이 되자 강화 치안대, 국군 환영 준비 위원회, 비상시국 대책회 등으로 발전했다. ‘적색분자의 악행과 동태 조사’,‘6·25 당시 부역 행위를 하다 북괴군과 후퇴하여 달아난 가족들의 동태를 살핀다.’는 항목이 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gong92&logNo=40051569939

http://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492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0018&CMPT_CD=P0001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791883

 

나주군 봉황면, 장흥군 장평면, 담양읍

19507월 말 일명 나주 부대로 불리던 경찰 부대 사건

 

http://nasanha.egloos.com/10919887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odcr61&logNo=140025434086

http://blog.daum.net/jkcbl/3223577

http://blog.daum.net/hesu8187/4511530

http://cafe.daum.net/jeonnamundong/NGZz/102?docid=1Aprq|NGZz|102|20120212113933&q=%B3%AA%C1%D6%20%BA%CE%B4%EB

http://cafe.daum.net/allofthebaguio/SDBg/4294?docid=1FVT3|SDBg|4294|20120805104733&q=%B3%AA%C1%D6%20%BA%CE%B4%EB

http://mokpombc.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5760

 

해남, 완도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일제 시기부터 소작쟁의가 많았던 전남 지역이다.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지역을 점령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보복 학살이 많이 발생했다. 지역 사회에서 지주와 소작인, 양반과 상민의 신분 차별, 씨족적인 대립과 갈등이 중첩되어 진행되었다. 9·28 수복 후 임시 치안대 횡포와 암묵적인 정치적 분위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mallnews&logNo=8450067

 

2) 북측에 의한 학살

전쟁 초기 북은 남한점령정책의 일환으로 반혁명세력의 숙청을 도모, 숙청의 대상은 주로 지주, 경찰, 공무원들이다.

대부분의 학살은 보복적 차원에서 이루어져다. 보도연맹의 가족들이 도망가지 못한 우익들에 대해 보복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증언이 있다.

1950720일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서 자행된 학살

인천상륙작전 이후 반혁명분자에 대한 적당히 현지에서 처리지령

대전형무소 학살

1950927전북 옥구의 학살

http://korea318.com/client/board/view.asp?sEtpTp=BA06&sEtpnum=4489

http://blog.daum.net/mam4rang/3409

http://www.jungan60.com/index.php?document_srl=1498&mid=3_aksvud&order_type=desc&page=4&sort_index=readed_count

 

 

3) 미군에 의한 학살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No Gun Ri Massacre)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영어: No Gun Ri Massacre)은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 사단 7 기병 연대 예하 부대가 1950726~ 729일 사이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서 폭격과 기관총 발사를 시작하여, 민간인들을 학살한 전쟁 범죄이다. 노근리 학살사건을 실제 경험했던 유가족들로 구성된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회에서는 사망자 135, 부상자 47명 모두 182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400여명의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10여명이었다.

진상 규명

민간조사

AP통신의 탐사보도

노근리 사건 특별법

신원

2003630,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

2008년 역사공원 건립

증언

노근리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위원회

노근리쌍굴다리

작은 연못영화 2010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159.html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92825.html

http://www.doopedia.co.kr/?masterno=734570&contentno=734570

http://www.nogunri.net/html/kr/index.html

 

 

 

 

미군 남원양민 학살사건 (美軍 南原良民 虐殺事件)

 

19451117일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사건. 미군 남원양민 학살사건은 해방 정국에서 미군에 의해 최초로 일어난 한국 양민 학살사건이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야포 美軍爆擊事件]

 

6.25전쟁 당시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에서 미군폭격으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 6.25전쟁 당시 여수시 남면 안도리 이야포 해상에서 미국 공군 전폭기에 의해서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으로서 아직까지 종결이 되지 않은 사건이다.

 

195083일 미군의 불법적인 안도리 폭격의 희생자들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부산에서 남해안 도서로 소개되어 피난민 배에 탑승 중인 민간인이었다.

 

1950725일 충북 연동군 황간읍 노근리 학살

195083일 낙동강 왜관교와 덕숭동 다리 폭파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91014041900614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91014123500960

http://nogunri.org/625/62534.htm

http://gall.dcinside.com/list.php?id=news&no=3257523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91014053800606

http://djchildbook.org/zboard/view.php?id=free1&no=341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에 의한 학살 문제가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자 국제민주여성동맹과 국제민주법률가협회의 대표가 진상 조사를 위해 파견되었다.

정전협정 진행 중, 1953727일까지 북한지역에 대해 무차별 폭격

 

 

4. 학살이 이루어진 배경

1)군사작전으로서의 학살

흰 옷 입은 사람들은 모두 죽여라’,

의심나는 사람들은 모두 사살하라

전투 지역에서 발견되는 모든 민간인은 적으로 간주하라

1950년 겨울에 주로 일어났다. 이른바 견벽청야’, 즉 자신의 성은 견고하게 지키되 포기해야 할 곳은 철저히 파괴하여 적이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작전에 따라 유격대의 거점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작전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2)처형으로서의 학살

 

3)보복으로서의 학살

 

4)구조적 배경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사회주의적 국가 건설과 자유주의적 국가 건설 노선의 대립, 반제반봉건주의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친일보수 세력 간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5)군사문화의 전통

일본 군사문화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일제강점기 때의 경찰과 군인이 미군정에 의해 다시 기용되어 한국군의 주축을 형성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방 이후 한국군의 핵심을 구성했던 장교들은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았다.

 

6)극단적인 이념적 담론

남북한에게 모두 상대방을 반민족 집단’, ‘괴뢰로 몰아붙이는 극단적 담론은 정치적 갈등과 폭력을 적대적으로 증폭시킨 문화적 배경을 제공하였다. 남북 모두 사용한 민족담론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전통적인 가족공동체를 이념적 문제와 결합시켜 극단적이고 단순한 이념의 양극화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극단적 담론 구조는 김일성과 이승만 모두 즐겨 사용한 반란’, ‘부역이라는 용어에서 잘 드러난다. 전통적인 가족주의, 혈연주의와 연관되면서 연대책임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5.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에 대한 평가

민간인 학살은 넓은 의미로 보면 잔혹 행위이자 살인이다. 하지만 국가가 국민에게 공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했다는 의미에서 다른 범죄보다도 더 큰 책임이 있는 문제이다. 특정 집단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대 범죄 행위에 속한다.

 

한국전쟁 전후의 모든 학살은 주로 공권력에 의해 주도된 것이고, 사적 보복의 양상을 지니는 경우도 국가의 묵인, 결국 전쟁이라는 정치적 환경, 경찰과 군의 실질적 후원 아래 이루어졌다. 여기서 잔인성은 좌우익의 갈등의 심도, 권력의 폭압성 등과 비례한다. 이승만 정권의 극도의 위기의식, 월남자를 비롯한 남한의 기득권 세력의 공포와 위기의식, 남한을 점령했다가 패주하게 된 인민군의 다급함, 지방 좌익의 복수심, 피해 입은 경찰, 우익 가족의 원한 등이 맞물려 학살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6. 남은 문제들과 과제

1) 정부의 기본입장 정립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

2) 국회차원에서의 특위구성과 특별법 제정

진실화해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 眞實和解委員會 ] (2005~2010)

3) 국가의 정보 공개

4) 국가의 공식적인 사죄, 피해자 명예회복

 

7. 참고 문헌

강정구,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 역사비평사, 1996

강정구, [한국전쟁 민간인학살의 양태 분석]

고양금정굴양민학살사건 진상규명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양금정굴양민학살사건 진상보고서]

김동춘, [전쟁과 사회], 돌베개, 2000.

김주환엮음,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 청사

권영진, “625살상 다시 본다” [역사비평] 1990년 봄호

서중석, [조봉암과 1950년대()] 역사비평사, 1999.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다 죽여라 다 쓸어버려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주한미군 범죄백서 : 끝나지 않은 아픔의 역사 미군범죄], 개마서원

강정구(동국대학교 사회학과) 한국전쟁 양민학살의 양태분석 p.3~ p.18

http://www.yangmin.or.kr/ - 양민학살경상남도대책위

http://report.jinju.or.kr/massacre/ - 양민학살 진상규명

http://www.ebo.co.kr/case - 노근리 양민학살 진상 사건 모음집

http://www.yosuicc.or.kr/ 여수지역사회연구소

http://www.genocide.or.kr -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http://hanee.pe.kr - '하늬영상' 기록영상집단

MBC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2001.4.27 1편 보도연맹, 2001.5.5 2편 보도연맹

MBC (미디어 비평) 2002. 3. 22 금요일 외국 언론이 기사의 척도인가?

EBS (시사다큐 움직이는 세계) 2002.3.27. BBC 특별 다큐멘타리 :노근리 보고서 (Kill`em all)

SBS (뉴스추적) 2001.7.6 잊혀진 학살

강정구, <좌절된 사회혁명: 미점령하의 남한·필립핀과 북한 비교연구>(열음사, 1989)

강정구, <분단과 전쟁의 한국현대사>, 역사비평사, 1996

고 마태오 신부, {, 조국과 민족은 하나인데}, 서울: 중원문화, 1988

국제민주법률가협회, "미국의 범죄에 대한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조사단의 보고서". 김주환엮음,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 청사, 1989.

권영진, [6·25살상 다시 본다], {역사비평} 1990년 봄호

김낙중.김남기, {굽이치는 임진강: 민족통일의 갈망을 안고 임진강을 건너간 한 젊은이의 열정과 고난} (서울: 삼민사, 1985), 169

김성칠, 1993, <역사 앞에서> 창작과 비평

김익렬, "4·3의 진실"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2> 전예원 , 1994에 부록에 수록

김주환엮음,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전쟁}, 청사, 1989.

김진계 구술.김응교기록 보고문학, {조국: 어느 '북조선 인민'의 수기} 상권, (서울: 현장문학사, 1990)

김창후, "19484.3항쟁 봉기와 학살의 전모"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비평} 계간 20, 1993년 봄,

노가원, {남도부}(), 월간 말, 1993,

반핵평화운동연합, {손병선 의장 모두진술}, 서울, 1992,

안종철, {여순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 여수지역사회연구소 편 {여순사건 실태조사 보고서 제1: 여수지역 편} 1998.

여수지역사회연구소 편 {여순사건 실태조사 보고서 제1: 여수지역 편} 1998.

정은용,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다리, 1994.

정진상, [한국전쟁과 계급구조의 변동],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창립10주년기념논문집, {계급과 한국사회}, 한울, 1994, 118).

정희상,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소: 6.25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발굴르뽀] (서울: 돌베개, 1990).

제민일보 4·3취재반, <4·3은 말한다 2> 전예원 1994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엮음, {주한미군 범죄백서: 끝나지 않은 아픔의 역사 미군범죄} 개마서원, 1999

한국일보 편, {증언 김일성을 말한다유성철·이상조가 밝힌 북한정권의 실정}, 한국일보사, 1991

홍동근, {미완의 귀향일기} (서울: 한울, 1988), 119

커밍스와 할리데이, {한국전쟁의 전개과정}, 태암, 1990,

부산정치파동 [釜山政治波動]

인민재판 (人民裁判)

태백산맥 (소설)

피카소의 한국전쟁

<한국에서의 학살>(1951)

 

 

 

<전쟁과 평화>(1954)

 

 

부록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

 

1999, 베트남과 공동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설립

 

1. 퐁니퐁넛 양민학살 사건

 

 


 

1968212일 해병 청룡사단 제2대대 6중대가 베트콩의 마을로 오인 마을을 포격한 사건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0/021003000200011150334040.htm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03706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04698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47&aid=0000101106

 

2. 고자이 양민학살 사건

 

1966226일 베트남 빈딘 성 의 떠이선현 고자이 마을 주민들이 대한민국 맹호 부대에 의해 대량학살 당하여 380명이 죽은 사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2819

http://m.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1109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90823/1p948n09.html

 

3. 빈호아 학살

 

 

 

1966123일부터 6일까지 한국군에 의해 430명의 마을 주민이 학살을 당한 대량 학살 사건

http://www.peacemuseum.or.kr/article/?no=422

http://www.youtube.com/watch?v=1tQtgo4hKsM&feature=feedf

http://www.haebyeong.com/?mid=history&page=1&document_srl=4463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writeDate=20110215&writeDateChk=20110215&menuCd=2001&menuSeq=58&kindSeq=1&menuCnt=

http://www.rokmcnews.net/spec/822

http://peaceground.org/zeroboard/zboard.php?id=studies&page=1&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BC%F6%C7%C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52&PHPSESSID=e92b474dddbd6a1ef27ed66314ecae0c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215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16141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90823/1p948n0b.html

 

4. 하미 마을 학살 사건

 

1968222일 대한민국 해병대의 청룡부대가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에 위치한 하미마을에서 민간인 135명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가매장한 사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70927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000508/1p945801.html

 

5. 타이빈 양민 학살 사건 [Tay Vinh massacre] (타이빈 양민학살 사건)

 

1966년 대한민국 국군 소속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일명 맹호부대)가 베트남 중부 타이빈에서 저지른 대량 학살

 

6. 빈 타이 학살 사건

 

1966109일 한국군이 베트남 남부 송베 성 소속 푸옥 빈 구역의 빈 타이 마을에서 일으킨 학살

 

7. 디엔 니엔-푸옥 빈 학살 사건

 

1966109일과 1010일에 걸쳐 한국군이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 성의 틴 손 마을에서 베트남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

 

2부 끝.

 

 

 

 

1.

충북

노근리 평화공원

 

 

 

 

충북 영동군

 

2.

제주

43평화공원

 

 

 

제주

 

3.

제주

국제평화센터

 

 

태백산맥 문학관

 

4.

지리산

빨치산 토벌 전시관

 

 

경남 산청군

거창사건추모공원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

장준하추모공원

지리산 방곡리 양민학살 추모공원

 

5.

서울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서울시 마포구

전쟁박물관

국립 서울 현충원

국립 대전 현충원

 

 

6.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서울시 중구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